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엔딩 및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놉> 스토리
영화 촬영에 훈련된 말을 제공하는 목장의 조련사 OJ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그는 말들을 아끼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놀이공원을 운영하는 주프에게 말들을 팔면서 간신히 목장을 운영해 가고, 할리우드를 꿈꾸는 여동생 에메랄드는 항상 밖으로 놀러 다니며 큰 도움이 되어주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밤, OJ는 목장에서 이상한 일을 겪고, 하늘에서 이상하게 움직이는 물체를 보게 된다.
그것이 UFO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는 에메랄드와 함께 UFO를 촬영하려고 하는데……
<겟 아웃>, <어스>의 조던 필 감독은 늘 표면적인 이야기 속에 다층적인 상징과 의미를 숨겨놓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호러로 장식된 거대한 우화라고 할 수 있죠.
<놉> 역시 마찬가지, 아니, 그 상징들의 복잡함과 비중에 있어서는 역대 최고를 자랑합니다.
까놓고 말해 <겟아웃>은 미국의 인종차별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메시지와 알레고리가 직접적이라 대충 이해할 수 있는데, <놉>은 보이는 대로만 보면 딱 영화의 절반밖에 못 봅니다.
영화가 끝나면 다들 핸드폰을 켜고 “놉 결말 해석” “놉 의미” 이런 걸 찾는 풍경이 꽤나 웃펐음…
보이는대로 보기

일단 보이는 대로 보면…. 뭐, 호러 영화입니다. 이 영화와 표면상 제일 비슷해 보이는 영화는 <죠스>입니다.
보이지 않는 재난을 마주하는 공포, 그리고 상대의 정체가 드러난 후 주인공들의 결연한 행동들.
이 단순하고 강력한 플롯에 조던 필 감독은 특유의 세련되고 쫀득한 연출을 더했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을 뚫고 들어오는 갑작스럽고도 유머러스한 호러 포인트들이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어요.
그러나 이 영화의 절반은 수면 아래에 감춰져 있기 때문에 ‘정체모를 존재에게 위협받는 호러 영화’라고만 여기면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게다가 사실 주요 인물들의 심리가 세심하게 그려진 것도 아니라서 무뚝뚝하고 침울한 OJ나 어그로를 엄청나게 끌어대는 에메랄드에게 이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에메랄드는 ‘미워할 수 없는 말썽꾸러기 캐’와 ‘미워할 수 있는 어그로캐’ 사이를 왔다 갔..
그래서 이 영화는 이 다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 보이는 것을 보기 *스포일러 주의
상징을 읽어내는 능력을 갈고 닦은 시네필이 아니더라도, <놉>이 뭔가 현실적인(단순히 괴물체의 존재 때문만이 아니라 어떤 사건 전개나 심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영화가 아니며 이 이야기가 뭔가를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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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 괴생명체가 전혀 생명체같이 생기지 않았으니까요.
제목인 ‘놉(NOPE)’은 “아니!”라는 뜻으로, 작중에서도 인물들이 몇 번 단호하게 거절하는 장면에서 흔히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Not On Planet Earth, ‘이 세상 지구의 것이 아니다’란 의미도 되죠.
작중 저 괴생물은 일단 ‘외계 생명체’ 정도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외계에서 온 것이라도 그렇지 유기적이라기보다는 천이나 플라스틱 같은 느낌을 주는 ‘진 재킷’의 모습은 명백한 위화감을 선물합니다. 피도 살도 없고, 모든 전기와 통신을 다 꺼버리거나 안에 있는 사람/생물들의 비명 소리를 들려주는 특징도 그렇습니다. 마지막에 입을 벌리고 주프의 풍선을 위협(?)할 때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죠.
이건 명백하게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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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입니다.

실제로 조던 필 감독이 한 인터뷰를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놉>의 모든 것은 영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프닝에 나오는 침팬지 고디의 사건,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직업, 그들이 UFO를 찍으려고 하는 목표 모두 영상, 영화업계의 일이죠.
영화(업계)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죽입니다.
주프가 진 재킷을 구경거리로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잡아먹히는 장면, 촬영감독이 홀린듯이 욕심을 내다가 빨려들어가는 장면이 제일 노골적이지만, 늘 이렇게 직접적인 건 아닙니다. 작중 상황들이 모두 영화의 다양한 측면을 상징하는 메타포입니다.
OJ와 에메랄드는UFO를 찍어서 돈을 벌려고 합니다. UFO가 진짜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괴수 영화는 괴수를 퇴치하는 것이 목적인데, <놉>에서는 촬영하는 게 목적이에요.
‘기적’을 촬영하고, 이를 통해 유명해지고, 명성과 부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바로 현대에 널리 알려진 영상 신화죠.
에메랄드가 헐리우드에 속하고 싶어하고, 오프라쇼를 언급하는 것 영화와 영상으로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싶은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홀스트는 이를 “높은 곳에 올라서 남들을 다 내려다보는 꿈은 벗어날 수 없는 환상이다”라고 저격했죠.
(그런 그 역시 욕심 때문에 죽었는데, 그는 정확히 말하면 명예욕보다는 촬영 감독으로서의 예술 욕심이 앞선 느낌이라 업계의 또 다른 함정에 빠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촬영’이라는 행동의 의미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중에서(그리고 현실에서도!) 촬영되지 않은 것은 증명되지 않습니다. 진짜인 것은 카메라로 촬영되었을 때 진짜가 됩니다.
OJ 남매가 처음에 UFO를 촬영하려던 실질적인 이유는 그것이 일단 실제로 존재하고 자신들의 목장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증거가 없다면 아무도 안 믿어줄 거란 걸 모두가 알고 있어요.

한편 침팬지 고디와 주프의 이야기는 영화 산업에서의 아역 배우들의 케어와 동물 학대 문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주프는 날뛰는 고디에게서 유일하게 살아남았습니다. 그건 일차적으론 그의 시선이 우연히 테이블보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지만(혹은 ‘기적’) 그가 다른 희생자들처럼 고디를 섣불리 제압하려고 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주프는 OJ의 말을 미끼로 삼아 괴생명체를 끌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와는 달리 자신이 제압할 수 없는 것에 무모하게 접근하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 진 재킷(초거대한 버전의 고디)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한편 동물 다루기 주제는 주인공인 OJ를 통해서도 이어집니다. OJ는 말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지만, 오프닝의 영화 스탭들은 동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OJ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침울하고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말들을 무척 아끼고 말을 구하러 위험을 무릅쓸 정도로 강인한 일면이 남아있습니다.
홀스트가 말을 미끼로 삼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자 OJ와 에메랄드는 반대하는데, 이는 말을 존중하지 않던 주프와 비교되는 장면이죠.
또 OJ는 저 존재가 ‘생물’이며 그 패턴이 동물을 길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자 점점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초반엔 촬영장에서 말을 달래며 우물쭈물 서 있었던 것과 달리, 마지막엔 말 위에 당당하게 앉아있는 그의 모습은 정말로 ‘영화의 주인공’이죠.
이 작품이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면, 영화의 상당 부분이 불필요하게 느껴집니다. 작품의 배경 설정과 메타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굳이 OJ네 목장이 촬영용 말을 키울 필요도, 주프와 고디 이야기도 별 쓸모가 없습니다. 홀스트가 굳이 영화업계에서 잘 알려진 촬영 감독 이유도 없고.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장면들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연결됩니다.
그러니 적어도 중반 즈음에는 이 영화가 뭘 이야기하려는 것인지에 대해 감 정도는 잡아야 감상이 좀 수월합니다.
좀 더 가볼까?

그리고 여기에 한 겹 더 있습니다. 조던 필 감독이 늘 이야기해왔던 미국 사회의 흑인 차별에 대한 암시도 빠지지 않습니다.
영화업계에서 존재가 삭제된 흑인 기수 이야기는 OJ와 에메랄드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조상이 (이름을 알릴) 정당한 권리를 빼앗긴 채 무명으로 묻혔던 것처럼, 그들 역시 촬영장에서 매우 보잘것없는 존재로 취급당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목숨 걸고 노력한 결실을 TMZ 리포터같은 사람이 나중에 끼어들어 가로채려고 하죠.
이런 배경에서 OJ가 목장을 떠나는 선택을 하는 대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떠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데, 자신의 집이고 땅이고 말이기 때문이죠.)
한편 아무도 OJ네 목장에 도와주러 오지 않고 OJ가 피해를 입은 건 아무도 몰라준다는 점에서, 흑인들이 사회 곳곳에서 보이지 않게 받는 피해를 은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스토리, 상징 말고 딴 얘기

<놉>이 메타포에 온통 치중한 영화인 건 분명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포장과 만듦새도 괜찮습니다. 초반부의 빌드업이 조금 지루한 감은 없지 않으나 화면의 때깔과 잊어버릴만 할 때 잔뜩 심장을 쪼여주는 포인트들 집중력을 유지합니다.
특히 광활한 서부 풍경과 감독 특유의 쫄깃한 연출, 세밀한 사운드 디자인이 매우 세련되어서 역시 보는 맛이 있네요.
지나친 고어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움찔할 정도의 흉측한 비주얼이나 점프스케어는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있고, 위에서 언급한대로 참 별 거 아닌 것 같은 장면인데 왠지 찝찝하고 점점 무서워지는 쫄깃한 연출이 일품.
사실 <놉>의 호러 대부분은 사운드에서 옵니다. 무섭지 않은 소리가 무섭게 들리고, 무서운 소리는 더 크게 들리고….
종합평

“그래서 추천하는 거야, 마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저는 솔직히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살펴보고 뜯어보고 해석을 확장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해석했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감독의 실제 인터뷰를 찾아보는 것도 즐겁고.
하지만 이런 적극적인 해석과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영화는 언제나 호불호를 타기 마련이죠. 이건 <어스>보다도 좀 더 상징성이 강한 작품이라, 호러 영화라기보다는 은유적인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
그러니까……… 보이는 그대로의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비추천,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다니는 사람에겐 추천.
<놉>
이번에도 메타포로 가득한, 기이하고 조금 웃긴 호러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