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시 (2024) : 도파민과다 시대에 안전운전하기

DRAMA, REVIEW

드라마 크래시 포스터

목차

드라마 크래시 tci

줄거리

남강 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TCI)은 열정 가득한 팀원들이 있지만, 늘 변변찮은 취급을 받는 부서.

TCI의 민소희 반장(곽선영)은 중고차 거래 사기 일당을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해당 중고차를 이용한 연쇄 살인 사건이 의심된다고 주장하는 보험 조사관 차연호(이민기)를 만난다. 차연호가 영 미덥지 못했지만, 수사를 하다보니 정말 그의 말대로 살인 사건일 가능성을 발견하고 민 반장은 그와 함께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1년 후, TCI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차연호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드라마 크래시 캡쳐

이런 드라마 조금 그리웠다

한동안 학생들이 학교에서 마약 팔고, 경찰보다 살인마가 ‘정의를 구현’하고, 서로 칼빵놓고 피칠갑되는 드라마만 보다 보니 이런 드라마, 정말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볍고 상큼해서 쭉쭉 볼 수 있는 수사물 드라마.

감독의 전작인 <모범택시>나 <열혈사제>의 계보를 잇는다.

보통 교통 범죄하면 뺑소니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지만, 상당히 다양하고 새로운 구조의 사건들이 등장해 신선함을 던져준다.

예를 들어 가족도 없고 근근이 살아가는 폐지 줍는 할머니들이 차에 치여 죽는 사고라든가, 음주 운전자가 밤길에 사고를 내곤 “귀신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건 등 초반부터 꽤 흥미진진. 또 자동차의 특성상 다른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아 스케일이 금방 커지기도 한다. 

여기에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사건이 있고, 이게 조금씩 진행되며 클라이맥스에 몰아친다. 복선을 잘 깔아놓고 잘 회수하고, 서술 트릭같은 걸 이용한 반전도 제법 재미있다. 소소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이 수상쩍게 TCI 팀원들과 너무 관련이 깊다는 부분은 있지만, 뭐 이 정도는 사건 진행에 필요한 동력을 얻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겠지.

무엇보다 사건을 꽉.꽉.꽉. 채워서 쉴 틈이 거의 없다.

1시간짜리 12회라서 요새 나오는 OTT용 드라마들보다 훨씬 긴데도, 쓸데없는 시간 때우기 없이 사건에서 거의 바로 다음 사건으로 넘어간다. 심지어 보통은 후일담으로 처리할 만한 엔딩에까지 사건을 배치했을 정도.

월화 드라마였기 때문에 적절한 템포이긴 한데, 한번에 정주행하면 약간 빡빡하게 느껴질 정도.

사건 하나하나가 무게감의 경중과는 별개로 잘 만들어져 있다는 것도 장점. 한마디로 도시락통에 반찬이 꽉꽉 들어찬 ‘혜자스런’ 드라마라고나 할까.

크래시 리뷰 곽선영

면허 따고 볼 것

교통사고가 실컷 나는 드라마라(….) 초보 운전자가 보기 좀 부담스러울 수는 있는데, 오히려 상당히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다.

면허 따면 다들 꼭 이 드라마를 봤으면 좋겠어.

교통 범죄 수사팀이 중심이 되는 만큼, 작중 모든 사건과 인물은 운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등장하는 교통 범죄의 종류도 다양하고, 사건에 대해 다각적인 시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과적 차량 문제. 차 캐리어가 과적을 하는 이유가 단순히 ‘기사들의 안전 의식이 뒤져서’가 아니라, 그들이 회사가 시키는대로 해야 하고 애초에 과적하지 않으면 이익이 날 수도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짚는다.

그리고 민 반장도 “교통사고는 가해자도 피해자인 경우가 많아서 어렵다.”고 말했듯 교통사고의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가 애매해지는 부분도 세밀하게 다룬다. 드라마 전체에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정의에 대한 신념이 녹아있어서, 이 점이 보는 내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100% 선량한 피해자와 악의에 가득한 가해자로 갈라치기해서 도파민 범벅으로 주제 의식을 날로 먹는 최근의 범죄 드라마 트렌드와 분명하게 차별화되는 지점이라 더 가산점을 주고 싶음…

그리고 드라마 보다 보면 확실히 운전자로서 경각심이 빡 드는 부분이 있다.

전방주시하기… 운전하면서 딴 짓하지 않기… 이거 진짜 진지하게 와닿은 게 연호가 했던 것 같은 행동을 안해 본 운전자는 정말 없기 때문임…
길에서 뭔가 치면 꼭 확인하고 경찰에 연락하기…. 실수든 뭐든 사고 내면 꼭 자수해… 블랙박스 빼고 운전자 바꿔치기하지 말고… 어차피 다 걸려…

크래시 이민기 곽선영

팀워크 점수 100점

이런 류의 경쾌한 수사물 드라마에는 탄탄한 팀이 꼭 필요한데, TCI는 미드에서 자주 볼법한, 매우 정석적인 팀 구성을 이루고 있다.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원칙주의자에 심지가 곧은 팀장,
열혈에 노빠꾸로 들이받는 행동대장,
푸짐한 체격과 둥글둥글한 성격을 가진 분위기메이커와
똘똘한 막내,
그리고 매우 머리가 좋지만 사회성 부족한 신참.

서로 간의 밸런스와 케미가 좋고, 이야기의 중심을 이끄는 차연호와 민소희를 잘 받쳐준다. 배우들의 좋은 연기력도 팀을 더욱 짜임새있게 만들어주고. (다만 주조연에 비해 일부 에피소드 범인이나 주요 인물들의 연기력이 다소 부족한 건 아쉬운 점..)

크래시 이민기 차연호
이민기가 말아주는 너드미의 정석

주인공인 차연호는 뛰어난 지능과 추리력을 지녔지만 사회적 의사소통에 약간(약간?) 어려움을 겪는다. 초반에는 어색한 말투나 사회적 눈치가 심각하게 부족한 묘사가 약간 자폐성 장애 아닌가 싶을 정도였는데 차차 나아지는 걸 보면 그냥 극심한 트라우마와 마이웨이 기질이 합쳐진 것인 듯.

옆에서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던 그가 점차 경찰로서 성장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양복에 구두 차림이었던 그가 운동화를 신고 다니고 점점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소소한 즐거움.

크래시 리뷰
남녀를 엮는데 굳이 로맨스 따위에 의존하지 않고 멋진 동료이자 선후배가 되는 게 무척 좋았던 포인트

민소희와 차연호의 케미가 무척 좋은데, 처음에는 서로 껄끄러웠지만 담백하고도 이상적인 선후배 관계로 서로의 인간적인 성장을 돕는 사이가 된다. 특히 소희가 종이인간 차연호에게 체포술을 가르쳐주는 장면은 연호가 경찰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민소희 자체도 너무나 멋진 캐릭터. 사실 ‘드센 여자 경찰’ 캐릭터는 약간 뻔할 수 있는데, 여기에 선배로서의 포용력과 단호함이 더해져 정말 신선하고 좋은 여캐가 되었다.

‘혼자서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 ‘동료들의 소중함’ 같은 것을 지루하지 않고 상큼하게 풀어낸다. 12회 구성이다 보니 캐릭터성이나 인물 간의 관계를 쌓아가는 게 상당히 여유롭고 차근차근 이루어지는 것도 장점.

TCI를 눈엣가시로 여기지만 결국 하찮은 경찰서장, 묘하게 경쟁의식을 불태우면서도 한솥밥 식구인 형사과장 등도 극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악역들의 경우 좀 빤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뭐 현실성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권력과 돈으로 정의를 찍어 누르는 이들의 악랄한 모습은 보고 있기에 좀 피곤하지만 그만큼 그들의 죄악이 ‘사이다’로 돌아올 것을 믿기 때문에 꾹꾹 참고 넘어갈 수 있다.

수사물 드라마 그리고 경찰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미덕이자 가장 큰 무기가 바로 “믿음”. 이 어려운 범죄를 풀고, 저 악독한 범죄자들을 법으로 심판하겠다는 약속을 국민들에게 믿게 하는 것. 현실에서든 픽션에서든 그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TCI는 정말로 믿음직하다.

크래시 리뷰 개그

개그 센스는…30점

기본적으로 상당히 경쾌한 분위기이고,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초반부터 개그가 거하게 실패한다.

1화부터 정 팀장의 과한 사자성어 개그나 <극한직업>을 의식한 것 같은 집합 씬은 ‘이 드라마 계속 봐도 되나’란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유치. 특히 TCI를 소개할 때 BTS를 언급하거나 “너 T야? 난 F야.”같은 개그는 정말 순식간에 정색하게 됨….

하지만 피드백을 받은 건지+극의 분위기도 점점 어두워지면서 되도않는 말장난은 줄어들긴 한다.결국 개그는 다 서장 담당 소희가 체포술 가르치다 연호를 기절시키거나, 조폭 회장이 동기를 보고 우리 쪽 애라고 착각하는 등 피식하게 만드는 정도는 좋았다.

초반부 개그도 그렇고 연출이 약간 올드한 느낌도 없진 않지만, 작품의 가볍고 ‘사이다적인’ 지향점이 이런 분위기와 잘 맞아서 단점을 커버한다.

크래시 리뷰 추천

중요한 것은 오직 기본

최근 스릴러, 범죄물들은 자극적인 소재와 연출, 스타 캐스팅이나 대규모 마케팅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도파민과 트렌드가 무기죠. 말하자면 불닭볶음면이나 마라탕이 유행하는 것처럼. 뭐, 그것도 나름의 톡 쏘는 맛이 있고 나도 마라샹궈 러버지만.

그러나 <크래시>의 매력은 그런 자극성이 아니다.

‘정의 구현’이 사적 제재를 가리키고 ‘참교육’이 폭력을 뜻하는 말이 된 이 시대에, 이 드라마는 “안전운전 하시고 법은 지키세요.”란 메시지를 우직하게 전달한다. 그러면서 요령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 너무 뻔하고 답답하지 않게 만들었다. 수사의 재미가 있는 사건들과 매력적인 캐릭터, 상큼하고 가벼운 분위기.

-비유하자면, 뭐. 맛있게 만든 저속노화 식단이랄까.

사실상 드라마의 큰 단점이라고는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는 지리지널(Genie TV 오리지널)이라는 것밖에 없다. ENA채널이나 디즈니+에서도 볼 수 있긴 하지만 어쨌든 접근성이 심하게 떨어지는지라…..

하지만 굳이굳이 찾아보는 수고를 들여도 아깝지는 않을 거라 말할 수 있다. 뭐, 재미도 있고, 상쾌하고, 보면서 운전도 배우는(?) 그런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으니까.

그럼, 다들 오늘도 가시는 길 안전운전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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