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2025)
넷플릭스가 잘하는 ‘그거’, 비린내가 진동하는, 천박한 쌍욕과 모럴 없는 반전이 이어지는 스릴러. 우리가 아는 그 맛의 선지해장국에 미쉐린 별은 필요없는 법.
교훈적 ‘인과응보’의 최악 버전을 보여주는 것이 흥미롭다.
★★☆

목차
*이 리뷰에는 <악연>의 전반적인 줄거리, 엔딩 및 구체적인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차

악연 줄거리
사채빚에 시달리는 사채남(이희준)은 아버지를 죽이고 생명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일용직으로 일하는 조선족 장길룡(김성균)에게 아버지를 살해해줄 것을 의뢰한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위장하려던 계획과는 달리, 아버지가 야산에 파묻힌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한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고, 길룡은 약속한 보수를 요구한다.
한편 사채남 아버지의 시신을 묻은 안경남(이광수)은 사고 광경을 목격한 목격자(박해수)의 입을 막으려 하는데….

거 참 더러운 인연
여기 나온 모든 등장 인물들 중 아무나 2명 찍어도 대충 다 연결되어 있다. 얼핏 보기엔 전혀 다른 곳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사실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포인트로, 그야말로 ‘악연’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이야기.
스토리의 스케일이 큰 편은 아니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그야말로 더럽게 꼬여있고 시간상 배열이 아니라 헷갈리기 쉬운데, 크게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사채남이 보험금을 노리고 장길룡에게 아버지의 살해를 의뢰하는 파트A
- 안경남이 불륜녀와 차를 타고 가다가 사채남 아버지를 쳐버리고 시신을 산에 묻다 목격남에게 협박당하는 파트B
- 불이 난 폐건물에서 화상 환자가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된 파트C
드라마는 화상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가 치료를 받고 자신의 이름을 ‘박재영(사채남)’이라고 밝히는 장면으로 시작하고(파트C),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채남의 행적을 따라간다.(파트A)
그런데 분명히 이미 사망했어야 할 그의 아버지를, 산속 도로에서 안경남이 차로 치고 암매장 해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파트B) 그리고 다시 파트C로 돌아와 현재진행형으로 따라간다.
이렇게 복잡한 진행 구성은 스토리 곳곳에 빼곡하게 반전을 채워넣으며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사채남이 어쩌다가 화상 환자로 발견되었나, 죽었어야 할 사채남의 아버지는 어떻게 안경남의 차에 치었나, 목격남은 뭐하는 놈인가…. 이런 의문이 반전이 되고, 등장인물 간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재미를 선사한다..
이 복잡하고 지리한 인연을 대충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악연’ 전체 줄거리 및 결말 (인물간 관계)
※※※스포일러 주의※※※
- 빚독촉에 시달린 사채남은 보험금을 노리고 길룡에게 아버지의 살해를 의뢰
- 길룡은 감방 동기였던 목격남에게 동업을 요청
- 목격남은 원래 유정과 함께 짜고 치는 사기꾼
- 목격남은 장길룡과 사채남의 아버지를 살해하다 들키자 안경남에게 범죄를 뒤집어 씌우고 협박
- 안경남이 시신을 야산에 묻는 바람에 사채남의 보험금 지급이 미뤄짐
- 안경남은 유정을 살해하고, 목격남은 안경남을 살해함
- 철목의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안경남의 불륜을 조사하며 미행하다가 목격남이 안경남을 죽이는 장면을 목격
- 심부름센터의 신고로 목격남은 경찰에 지명수배됨
- 길룡은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을 죽이고 당장 중국으로 뜨기 위해 사채남에게 보수를 요구
- 보험금을 못받은 사채남은 길룡을 죽이려 함
- 그러나 길룡은 사채남을 제압하고, 목격남과 의논
- 목격남은 지명수배를 벗어나기 위해 사채남의 신원을 도용하기로 함
- 목격남이 길룡과 사채남을 살해하지만 화재로 인해 본인도 응급실행
- 병원에 실려간 목격남은 사채남으로 행세
- 목격남을 치료한 병원 의사 주연은 학창시절 사채남에게 범죄를 당한 피해자
- 주연은 철목에게 사채남의 신상 조사를 의뢰함
- 목격남은 사채남인 척 보험금을 수령하려 하지만 아버지가 보험금을 기부한 것을 알고 분노
- 주연은 사채남(사실 목격남)을 죽이려 하지만 연인인 상민이 이를 말리고 포기함
- 사실 불륜녀는 학창시절 주연을 질투해 사채남에게 성폭행을 사주했고
- 그 일을 부추긴 것은 목격남
- 목격남을 사채남으로 오인한 사채업체는 기한이 다 되자 그를 납치
- 사채업체의 장기 적출을 담당하는 건 주연의 연인인 상민
- 상민이 목격남을 잔인하게 살해
이 얼키고 설킨 악연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부 죽어도 싼놈들”이다.
마지막으로 철목은 주연에게 사실 화상 환자가 사채남이 아니었다는 조사 결과를 알리려고 하지만, 주연은 과거와의 악연을 끊고 새로 살아가기로 결심, 그 소식을 듣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녀만큼은 온전하게 이 지독하고 더러운 악연에서 벗어난다.

인과응보의 힘
악연으로 얽히고 설킨 인물들 하나하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대부분 한심하고 하자있는 쓰레기고, 감정 이입의 여지가 별로 없다. 사채남의 아버지가 막돼먹은 아들을 걱정하는 모습이나 주연이 과거의 일로 고통받는 장면이 있지만 이는 깊은 감정적 몰입보다는 역으로 사채남이 얼마나 쓰레기인가를 강조하는 장치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서툴고 저능하다. 뻔한 혼잣말을 다 들리게 이야기한다든가, 뒷일을 생각않고 대놓고 후환을 남기는 식. 드라마의 시점은 누군가를 응원하고 이입해서 보기보단 ‘이 쓰레기들이 얼마나 ㅈ되나 보자’를 감상하는, 말하자면 45도 위의 쿼터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주인공은 예측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보이지 않는 힘, 악연 그 자체.
보이지 않는 힘을 다룬다는 점에선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죽음’을 인간 관계에 대입한 느낌. 다만 <파이널 데스티네이션>같은 경우 잔인한 사망 장면을 오락적으로 소비하는데 중점을 둔다면 <악연>은 숨겨진 반전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악연’의 모습을 완성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피치못할 작위성을 ‘인과응보’라는 개념으로 커버한다는 것.
등장인물들이 멍청하고 잔인하게 행동하고, 사건 전개에 우연과 노개연성이 판치는 등 상당히 작위적이지만 “그런 일을 당할 만했다.”는 안전 장치가 작동해 뒷맛을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엔딩만 하더라도, 목격남은 사채남의 신분을 도용했다가 그가 과거에 저지른 죄(사채+성폭행)까지 덮어쓰고 잔인하게 사망하는데 사실 목격남이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완벽한 인과응보가 된다.
인연, 인과응보, 카르마, 이런 개념들은 지금 벌어지는 일에 이유가 있기를 바라는 믿음, 그리고 미래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이용해 빈 합리성을 보완하는 것들이다. 이런 인과가 너무 강하면 오히려 더 작위적이거나 지나치게 교훈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악연>은 이 개념을 주제로 차용하면서도 오히려 이를 자극적인 오락성으로 바꿨다.

모든 액션에는 각자의 스타일이 있다
<악연>의 오밀조밀하게 짜인 플롯은 섬세하게 고안된 것이지만, 사실 캐릭터는 뻔하고 개연성도 부족하다. 대사 수준이 너무 낮아서 연기가 이상하게 튀는 장면도 있고, 특히 유정은 쨍쨍거리는 목소리도 듣기 싫은데 대사가 너무 판에 박은 듯 해서 괴로움…
연출도 직접적이고 천박해서 그다지 말할 거리도 없다. 각 인물의 쓰레기같은 성격을 드러내는 장면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중요한 반전은 놓치지 않게 확 강조한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어떤 암시나 깊이 있는 성찰을 담기보단 보이는 그대로의 사실을 의미할 뿐. 화면 때깔은 아주 평균적인 넷플릭스 스타일로 어떤 예술성이나 작품성을 챙기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관통하는 천박함이 오히려 의미를 가진다. 이 쓰레기들의 파국을, 자극적인 악연의 쇼를 보여주기에 부족함도 넘침도 없이 딱 적당한 스타일이기 때문. 동네 시장 안에 있는 선지해장국 집이 미쉐린 별 마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사실 이렇게 소재와 스타일이 서로 어울리려면, 어느 정도의 내공이 필요하다. 넷플릭스의 스릴러 노하우와 배우들의 연기가 작품을 완성하는 아교 역할을 튼튼하게 한다.
그러니까 ‘스릴러 맛집’으로서의 넷플릭스를 믿는다면, 네가 알고 내가 알고 모두가 아는 바로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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