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Film

파과(2025) 리뷰 : 감다살 소설을 감다뒤 영화로

영화 파과 포스터 이혜영 김성철


파과 이혜영 킬러

파과 줄거리

조각(이혜영)은 살인청부업계에서 전설로 통하는 킬러. 그녀는 어린 시절의 스승 류(김무열)에게서 배운대로 수십년 간 냉철하고 정확하게 ‘방역’을 해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몸이 쇠하며 이제는 예전처럼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을 스스로도 깨닫고 있다.

한편, 그녀가 일하는 ‘신성방역’에 새로운 킬러, 투우(김성철)가 나타난다. 자신만만한 그는 어째서인지 조각에게 강렬한 집착을 보이면서 그녀에게 전설다운 모습을 보이라고 닦달하는데…


파과 원작 소설

원작 이해도 단 8%

소설 <파과>는 킬러와 복수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단순한 오락소설이 아니라 나이듦과 애착에 대한 깊은 성찰을 펼쳐내는 작품이다. 잔치국수마냥 후루루루 넘어가는 길고 유려한 문장과 할머니 킬러가 지하철을 타고 과일 가게에서 과일을 사는 등 현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그리고 주인공인 조각이 류, 강선생, 투우와 가지는 관계는 각각 매우 복잡하고 미묘해서, 묘한 설렘을 선사하는 포인트.

그러나 영화는 기본적인 인물 설정만 쌔벼서 지 ㅈ대로 잡탕을 만들어 버렸다.

파과 강아지 무용
무용이는 귀여웠다

문제점) 기본적인 주제의 붕괴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살인청부 회사인 신성방역이 무려 “우리는 쓰레기를 죽여 세상을 구한다.”라는 삼류 다크히어로 뽕짝 조직으로 변질되었다는 것.

소설에선 신성방역을 만든 류가 대놓고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고 책임이나 정의감 따위는 코웃음칠 일이라며 언급합니다. 조각은 류가 이 일을 했기 때문에 하는 거고, 나중엔 딱히 이 일밖에 할 게 없어서 계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각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세상 만사에 대해 담담하고 무심하게 넘기게 된다. 삶과 죽음에 대한 희미하고 허무주의적 인식이 오히려 작품의 주제- 나이들고 상하고 잃어버리면서도 살아가는가-가 더 대조적으로 빛을 발하는 배경이 다.

그런데 영화에선 이게 완전히 반대로 ‘우리가 죽이는 건 쓰레기니까 죄책감 가지지 마! 우리는 영웅이야!^^’ 라는 편리한 변명이 되니 어이가 없다.

또한 소설에서는 조각이 나이 들면서 겪는 변화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진다.

체력이나 근력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상실을 겪어 마음도 무뎌지고, 이제는 기억도 깜박깜박해서 류의 얼굴도 흐릿하고, 모든 것이 무던하게 느껴지다가도 괜한 감상이 들기도 한다. 조각의 삶은 천천히 파과가 되어 뭉그러져 간다.

그러나 영화에서 ‘노화’는 그저 신체적인 질병과 결부될 뿐이며, 과일가게 주인의 입을 빌어 “겉은 상했어도 맛은 그대로예요!”라는 싸구려 한마디로 때우는 걸 보고 ㄹㅇ감독 명치 개쎄게 후려치고 싶어짐….

<파과>에서 중요한 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뭉그러지고 변해가는 삶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이지,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난 여전히 변함없어 (혹은 더 숙성되어서 우월해)’가 아니다.

감독이 과연 책을 이해했는지, 글자는 아는지, 지능이 얼마인지 의문이 드는 수준.

파과 김무열 신시아 움짤
이 장면나쁘진 않았어도 원작에 비해선 영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음…..

문제점) 수많은 캐붕

위에서 얘기한 기본 설정 파괴 때문에 거의 모든 캐릭터성도 다 망가진다. 그냥 투우 빼고 다 캐붕인 듯..

예를 들어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조각을 보고 류가 한 첫 마디는 이거 소질 있네.로, 이 한마디로 그가 얼마나 개새끼인지, 조각이 얼마나 무정하고 냉혹한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는지를 강렬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오히려 조각을 감싸주며 죄책감을 덜어주는, 매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 되었다. 류가 개새끼에서 그냥 츤데레 스승 정도가 된 것이 왜 문제가 되냐하면, 캐릭터성과 함께 작품이 가지는 아이러니의 색채를 완전히 죽여버리기 때문.

원작의 류는 “더이상 지킬 건 만들지 말자.”라고 했지만, 결국 자신이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그가 그렇게 조각에게 냉정하게 굴고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은강렬한 아이러니며, 이 모순은 그의 삶이 조각에게 그대로 이어지면서 역시 그녀에게 넘겨진다.

조각 역시 강 선생에게 끌리고, 엎어진 리어카를 무시하고 지나치지 못한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류의 행동은 너무 단순하고 어설픈 복수로 끝나고, 조각은 대놓고 세상을 구하는 ‘신성한 일’을 하는 다크히어로다.

그녀에게 아이러니는 존재하지 않고, 그냥 나이만 좀 들었을 뿐 여전히 짱쎄고 정의감 넘쳐서 감정이나 변화가 제대로 드러나질 않습는다

그냥 납작해. 너무 납작해.

까놓고 말해 영화의 스토리나 주제상 주인공이 굳이 할머니일 필요조차 없습니다. 나이든 남자, 혹은 손발이 말을 안 듣는 병에 걸린 젊은 남자였더라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인물의 내면은 모두 붕괴되고, 남은 것은 겉껍질뿐.

영화 파과 스틸

문제점) 모든 설렘이 사라져

그리고 영화는 소설이 가지고 있던 설레거나 여운을 남기는, 특유의 섬세한 묘사를 거의 다 잘라냈다.

예를 들어 어린 조각이 상복을 입은 류를 감히 만지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는 장면이나, 투우가 조각에게 강 선생을 들먹이며 도발하는 장면은 그 아래 감춰진 울렁거리는 감정을 들여다보는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하지만 영화에선 딱히 이런 텐션이 없다.

상실감과 죄책감과 말못할 사랑이 뒤얽힌 과거 파트는 모조리 평이하고 밍밍하게 바뀌었고, 강 선생이 조각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적 변화도 히어로가 착한 민간인에게 느끼는 보호의식 정도다.

그나마 투우와의 관계는 확실하게 나오지만, 과거가 불필요하게 개조되고 엔딩이 너무 촌스러워짐… 하…

파과 액션 느와르
더도 덜도 말고 그냥 한국 느와르 그 뻔한 깔

감다살 소설이 감다뒤 영화로

그러니까감독은 <파과>에서 ‘할머니 킬러, 살인청부업체, 복수’라는 키워드만 가지고 와서 영화를 만들었다.

이 키워드만으론 딱히 신선한 뭔가가 나오긴 어려운데 (애초에 소설의 플롯 자체도 꽤 예측 가능하므로), 영화만이 가지는 장점이나 매력도 거의 없다.

겉멋만 든 액션

일단 위에서 언급한 신성방역의 유치한 모토와 칙칙하고 비현실적인 겉멋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다. 존윅같은 세계관을 만들고 싶었는지, 괜히 레트로한 스타일링으로 쓸데없는 존재감을 뽐내는 사무원이나 팔뚝에 문신 바르고 와서 칙칙한 바에서 와인 마시는 청부업자들, 툭하면 1:28로 싸우고 비녀가 무기라는 설정 등 헛바람만 잔뜩 들었다.

조각이 평범함을 위장하는 소설 설정은 그냥 내다버렸다 쳐도, 영화에서도 류가 재떨이를 집어던지며 “이런 거 반사신경으로 피해서 니가 업자란 거 광고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장면이 있는데도 모자만 눌러썼다 뿐이지 가죽코트 입은 할머니가 클럽 한복판에 가서 조폭 스무명과 현피를 뜬다는 황당한 장면이 나온다.

또 액션의 수준은 나쁘지 않지만 딱히 특출난 구석은 없다. 비녀를 무기로 쓴다더니 그걸로 기깔나는 액션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글씨 쓸 때 손도 심하게 떨더니 후반부엔 한손으로 권총 막 쏜다.

쓸데없는 단체 전투씬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클라이막스 전투의 임팩트를 깎아먹는 것도 지적할 문제.

파과 스틸 연우진

작위적인 드라마

드라마적 전개도 일일이 작위적이다.

강 선생이 동물병원에서 일하고 조각이 무용이를 구해주면서 만나게 되었다는 각색은 오히려 나쁘지 않았는데, 심야에 출혈이 심한 채로 운전하다 하고 많은 곳 중 하필 그 동물병원 앞에서 멈춰섰다는 전개는 매우 나쁨…. 조각과 강 선생의 첫만남에서 감정 교류가 좀 더 깊게 이루어졌거나, 조각이 동물병원에서 붕대나 약이라도 훔쳐다 응급조치할 요량으로 갔다는 식으로 했으면 안되었을까?

또 앞서 이야기한 ‘파과’의 뜻을 직접 해설하는 장면도 그렇고, 강선생의 딸이 처음 보는 할머니에게 “아이이잉 같이 밥 먹어요~제 유치원 발표회 와주세요~사진 찍어요~”하는 건 귀엽기보단 징그러운 수준.

캐릭터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살필 심리가 없는 거야 당연하지만, 조각이 직접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장면은 심하게 성의가 없다고 여겨질 정도. 근데 그래놓고 다짜고짜 투우를 죽이려는 감정선도 이해가 안가.

인물의 심리나 감정에 집중하는 대신 별 쓸데없는 신이 많아서 중후반부는 다소 지루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파과 김성철 연기

그나마 투우는 원작의 집착과 애증을 그대로 간직해서 캐붕은 덜 당하고 조각과 투우의 관계가 소설보다도 더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그려져 볼만한 포인트긴 하다.

사실 처음에 캐스팅을 들었을 때 김성철은 이미지와 달라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결과적으론 좋았음.

좀 더 애샛기스럽고 폭탄같은 투우.

그래도 조각과의 관계성이나 앞으로의 행동이 너무 예측 가능하게 드러나서 아쉬움이 또 남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과거 개조도 좀 불필요한 느낌이고, 결말도 너무 질질 끌어서 여운이 없음…

이렇게 빡치는 이유

캐스팅은 기깔나요. 캐스팅 너무 잘해서 더 빡침…….. 류 역에 김무열 진짜 잘 어울렸는데 하… 얼굴 빼고 원작의 그 설렘을 하나도 느낄 수 없는 저능한 각색이라니…

그나마 이혜영 배우의 카리스마와 액션, 김성철과의 케미는 이 작품의 유일한 존재 의의라 할 수 있다.

(솔직히 이혜영 배우가 너무 멋지게 나와서, 가죽 코트 입은 조각은 좀 원작 파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뭐.)

나이든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 그것도 주인공의 품위와 능력을 강조한 액션 영화라는 점에서는 매우 드문 작품인 것은 사실이다. 그것만으로 자랑스러워할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보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원작이 없었더라면 그냥 잘봐줘서 그럭저럭인 OTT깔인 영화.

하지만 원작 있었죠?

그 원작이 정말 좋은 소설이었죠?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었다고요 아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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