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TV

넷플릭스 ‘체스트넛 맨’ 리뷰 : 덴마크의 밤

넷플릭스 스릴러 드라마 체스트넛 맨의 포스터


체스트넛 맨 줄거리

30대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을 맡게 된 툴린. 그녀는 딸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강력반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상사는 유능한 그녀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툴린은 어쩔 수 없이 유로폴 출신의 괴짜 수사관 헤스와 콤비를 이루어 사건을 수사한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어린아이가 만든 듯한 ‘체스트넛 맨’이 발견된다. 그리고 거기에 묻은 지문이 1년 전 납치당해 살해당했다고 알려진 하르퉁 장관의 어린 딸의 것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상황이 급변한다.

헤스는 장관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외부 조직인 유로폴에서 온 그의 의견은 무시당하는데…

체스트넛 맨 리뷰

북유럽 느와르의 기본

추리나 수사물도 그때그때 트렌드가 있다. 예전에 일본의 클로즈드 서클이나 사회파 미스터리가 유행했었고, 그 다음엔 미국 CSI풍의 과학수사물이 흥하더니 몇 년 전부터는 북유럽 수사/범죄 스릴러물이 소설과 TV를 휩쓸기 시작했다. 요 네스뵈라든가.

북유럽에서 온 수사물을 뭉뚱그려 ‘북유럽 누아르(북유럽 스릴러, 스칸디나비안 누아르)’라고 통칭하곤 한다. 이런 작품들은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 건조하고 차가운 색감
  • 유능하지만 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수사관
  • 까칠하고 드라이한 대화들
  • 범행의 잔혹한 수위
  • 살인사건과 얽혀드는 정치권의 알력

특히 미국 수사물과 비교해보면 여러 가지 차이가 뚜렷해서 재밌다. 미국의 수사물이 직감이 날카로운 수사관과 천재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의 대결로 상징된다면 북유럽 누아르는 정치,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감성팔이는 없고 사건의 마무리가 좀 찝찝하고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것도 특징.

<체스트넛 맨>은 덴마크의 드라마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괴짜 외부 출신의 수사관과 지친 싱글맘 엄마 수사관, 주인공들부터 공식에 충실한 북유럽 누아르.

참고로 사건의 수위는 상당히 센 편. 결정적인 증거나 잔인한 사건 현장을 발견했을 때 바로 대상을 보여주지 않고 등장인물의 표정을 먼저 비춤으로써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을 자주 사용한다. 처음엔 이런 점이 굉장히 배려돋는다고 생각했지만 그 대상을 안 보여주는 건 아니고(…) 나중에 신체 절단면이나 훼손 장면이 떡하니 나온다.

체스트넛 맨의 주인공 수사관 툴린과 헤스

체스트넛 색채

어떤 커다란 장치를 공유하는 하나의 장르가 생겨났을 때, 그 장르 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정해진 공식 안에서 얼마나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지에 따라 달렸다. 

<체스트넛 맨>의 독자적인 색채는 촘촘한 전개, 그리고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감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각각 툴린과 헤스의 수사 파트와 로사 하르퉁 가족의 이야기에서 드러난다. 

수사 파트에서는 북유럽 누아르 특유의 사소한 부분을 파고드는 근성 있는 조사가 이어진다. 동시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 관련자들의 사적인 상황과 일치되면서 좀 더 몰입도를 높인다. 툴린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학대하는 엄마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을 조사하는데, 툴린 역시 일이 너무 바빠서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상황. 

체스트넛 맨 로사 하르퉁 장관

한편 딸을 잃어버린 하르퉁 부부가 등장하는 파트에서는 감정과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장관이라는 입장 때문에 정치인 동료들과 언론 앞에서는 다 이겨낸 척해야 하는 로사의 모습은 상당히 비극적. 또한 아내보다 섬세한 성격의 스틴이 딸의 기억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장면들은 심금을 울린다.

그리고 그들의 사라진 딸의 지문이 연쇄 살인 현장에서 발견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가족의 이야기는 앞선 수사 파트와 훌륭하게 엮인다.

스릴러 소설을 많이 읽었다면 초반에 진범을 눈치챌 가능성도 있지만 <체스트넛 맨>은 사방을 깔짝깔짝거리며 수상해 보이는 인물을 매우 많이 만들어 놓았다. 피해자의 남편도 수상하고 장관의 보좌도 수상하고 운전기사도 수상하고 경찰 동료도 수상함…

하지만 단서들은 꽤 충실한 편이고, 관심을 진범이 아닌 사람 쪽으로 일부러 유도하는 미스디렉팅도 과하지 않다. 할 수 있으면 진범과 각각의 인물들의 동기를 추측해 보시길.

밤으로 만든 장난감

발목을 잡는 8화

정교하고 짜임새 있게 진행되던 <체스트넛 맨>의 후반, 정확히 말해서 최종화인 8화에서 갑자기 고장난다.

(1) 범인의 급너프

범인에 대한 반전도 괜찮고 동기나 감정선도 이해할 만 하지만, 후반부에 범인이 하는 행동은 너무나 멍청하고 뻔한 100만 명의 범인 역 중 하나다. 남의 집 지하실 사정에 경찰의 움직임까지 파악할 정도로 철저하고 유능했던 범인은 갑자기 막판에 쓸데없이 꾸물거리면서 기회를 놓친다.

경찰의 추격을 코앞에 두고도, 내지는 경찰을 죽이면서까지 거침없이 피해자를 살해하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손목이라도 자르라고!!!!!!!1

결국 여태까지 쌓아왔던 디테일과 개연성을 멍청하고 루즈한 전개로 다 불살라버리고 만다.

(2) 몰입을 깨는 감정 연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면 시청자의 감정은 상당히 반전된다.

로사는 어렸을 적 치기어린 거짓말로 토케에게 누명을 씌워 토케와 아스트리드 남매를 자기 집에서 파양시켰다. 파양된 남매는 체스트넛 농장으로 가 거기에서 학대를 받아 큰 정신적 상처를 얻고 토케는 연쇄살인범으로 각성. 

물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학대를 당했다고 해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범인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심지어 그는 아무 죄가 없는 경찰을 죽였고 또 죽이려고 시도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실제 학대는 남자가 했는데도 (그걸 막아주지 않은) ‘엄마’에 더 집착하고, 패턴화된 살인 방식, 살인이 자신의 사명이라 말하는 등 겐스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한마디로 그의 범행은 이성적이고 짜임새 있는 복수라기보단 정신병에 의한 연쇄살인이 맞음. 

….. 그러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어쩐지 로사는 좀 죽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로사를 수상하게 보이게 하는 페이크를 치기 위해서인지 로사가 느끼는 죄책감(그딴 게 있었다면)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그녀는 자신 때문에 파양된 다른 아이들이 어떤 고통을 겪게 될지 몰랐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반성, 죄책감, 동정, 공감은 단 한순간도 보이지 않는다.

하다못해 토케를 만났을 때 울고불고 나는 그렇게 될 줄 몰랐다, 미안하다, 다 내 잘못이니 제발 우리 딸만 돌려달라고 했으면 어느 정도 참작이 되었을텐데, (토케가 끔찍하게 학대당한 사실까지 알고 있고, 그 현장에 갔음에도) 그의 말을 끊고 자기 딸을 찾는 데에만 정신이 나간 모습은 아무리 ‘엄마’이기 때문이라 해도 실드쳐주기 싫은 뻔뻔함의 극치.

… 역시 정치인은 맨 양심으로는 할 수 없는 직업인가? 

헤스는 그녀가 어린애였을 뿐이라고 변호해 주지만, 연출상으로도 어렸을 때의 로사는 별로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습니다. 굳이 편들어주고 싶지가 않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로사에 대한 인상은, 이기심 때문에 두 명의 아이를 지옥으로 보냈으면서 그 사실에 전혀 책임지지 않는 위선적인 인물일 뿐.

솔직히 적어도 손모가지 한두 개쯤은 날아가는 게 속이 시원했을 것 같은데.

결국 이렇게 반감을 주는 연출 때문에 모성애도 전혀 부각되지 않고, 결국 하르퉁 부부가 딸을 되찾는 장면은 감동보다 찝찝함을 안겨줄 정도로 몰입이 안된다. 북유럽 누아르에선 늘 안개 같은 찝찝함이 기본적으로 깔려있긴 하지만 이렇게 등장인물에 반감이 들 정도인 건 잘 없다.

(3) 갑작스럽게 허접한 전개

또 사건 배경에 비해 막판에 매우 허접해지는 주제 논의와 루즈한 전개도 지적할 만하다.

대표적으로 겐스와 툴린이 차 안에서 이야기하는 장면. 이미 시청자에게는 겐스가 범인이라는 것, 그의 동기까지도 알려져 있는 상태로 그가 툴린에게 끈질기게 “딸에게 돌아가라, 아이들에겐 엄마가 중요하다”라고 말하자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툴린은 딸을 정말 사랑하고, 딸 역시 엄마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신경이 날카로워진 툴린은 겐스에게 아빠도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 엄마가 일하고 돈 벌고 애까지 보는 것은 힘들다며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이 장면은 꽤나 주제의식의 발전 가능성이 있는 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화는 그 다음 전개에 별 의미가 없다. 그냥 겐스가 툴린을 언제 죽이려고 드는지 시청자를 쫄리게 만드는 얄팍한 용도로만 쓰일 뿐. 심지어 툴린이 어느 정도 죽어도 마땅한 엄마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좀 문제. 

체스트넛 맨 리뷰

종합평: ★★★

보통 북유럽 누아르가 진짜 서릿발 날리는 황량한 분위기인데 반해, <체스트넛 맨>은 담백하면서도 그 바닥에 일렁이는 감정을 분명히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많고 많은 스릴러물 가운데 인상을 남기는 요소. 

북유럽 누아르의 완벽한 표본이 되기까지는 한 끗이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나라의 대표작이라고 하기에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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