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이 게임을 소개하고 정성적으로 리뷰하는 글이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제가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를 하고 받은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글쓰기로 승화시키는 치유 프로그램 과정입니다.
※ 게임의 스토리에 대한 전반적이고 구체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험한 욕 주의
(원글: 22/09/05)
목차
엘리 파트: 조엘의 죽음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가 가장 큰 비난을 받은 일차적인 이유 중 하나는 ‘전작 주인공인 조엘이 초반에, 너무나도 잔인하게 살해당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엘이 죽는 것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았고, 단순히 내가 사랑하는 캐릭터가 잔혹하게 살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게임을 까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그래요.
무엇보다…. 조엘도 알고 있었으니까.

조엘은 낯선 일행에게 공격당하자 당황하지만, 애비가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복수하려는 것을 알자 바로 태도를 바꿉니다. 그는 변명이나 구걸을 하기는커녕 그녀가 누구인지 왜 복수하려고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냥 “하고 싶은 말이나 하고 끝내라”라고 말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요.
특히 전작의 후반부에는 엘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고한 파이어플라이를 엄청나게 죽였죠. 그런 짓을 했으니 늙어서 자다가 곱게 가지는 못할 거란 걸 조엘은 언제나 각오하고 있었고, 자신의 최후를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장면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괴롭습니다.
잔인성 자체로 따지자면 데드신을 눈요기로 삼는 <툼 레이더>나 <데드 스페이스>가 더 높겠지만, 라오어2가 단연 최악인 이유는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악의입니다.
엘리가 뒤늦게 조엘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을 때, 연출은 시간을 끌면서 닫힌 문 너머로 조엘이 골프채로 온몸을 두드려 맞는 소리를 고스란히 들려줍니다. 문을 여는 순간 차라리 조엘이 죽어있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제작진은 결국 피떡이 되어 누워있던 조엘이 엘리와 눈을 마주쳤다가 아무 소리도 못 내고 두개골이 깨져서 숨을 거두는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죠.
잔인한 살해 장면을 오락이나 자극거리로 소비하는 것은 호불호를 타는 부분이지만, 약간 악취미이기는 해도 ‘취향의 영역’으로 인정할 수는 있습니다. <데드 스페이스> 같은 경우는 하나하나의 죽음을 오히려 가볍게 만들어 강렬한 비주얼과 충격을 퓨어한 오락거리로 즐깁니다. 게다가 공포와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다음번 시도에서는 꼭 살아남으려는 시도를 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라오어2의 연출에서는 순전히 엘리와 플레이어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려고 이러는 악의가 느껴집니다. 이후 펼쳐지는 전개를 보면 알겠지만, 라오어2에서 조엘의 사망은 <데드 스페이스> 혹은 <왕좌의 게임>의 피의 결혼식과는 다릅니다. 이건 충격적이지만 특유의 분위기를 살리고 긴장감을 부여하는 장면이 아니라 모두를 그냥 벙찌게 만들었던 <워킹 데드>의 글렌의 배트 신에 가깝습니다.
아. 물론, 장치적인 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에요. 조엘이 고통스럽게 살해당하는 것을 보면서 플레이어는 엘리의 처절한 심정과 완전히 동기화가 됩니다.
전작에서 엘리는 조엘과 우리가 지켜야 할 ‘대상’이었지만, 조엘이 죽고 엘리가 절규하는 장면에서 플레이어는 순식간에 완벽하게 엘리에게 이입합니다. 그래서 복수에 미쳐 날뛰는 엘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녀의 여정에 거리낌없이 뛰어들게 되죠.
… 여기까지 보면 조엘의 죽음은 충격적이지만 효과적인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이입 대상을 옮기는 전략 같습니다. 네. 그러나 게임이 딱 중간에 다다르면 그들은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치죠.
엘리는 드디어 복수의 대상인 애비와 마주합니다. 긴장감이 높아지다가…. 돌연 플레이어의 시점이 전환되고 새로운 주인공이 나타납니다. 그 주인공은 물론….
애비죠.
썅년.
내가 죽여버렸어야 했었던 그녀가.
애비 파트: 악마의 빙의
네. 그렇습니다. 엘리에게 빙의해 조엘을 위해 복수하러 달려온 플레이어는, 한순간에 조엘을 죽인 애비의 몸에 갇힙니다. 불행하게도 게임의 절반은 애비로 플레이하게 됩니다.

액션 게임에서 게이머는 자기가 조작하는 캐릭터를 살려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게이머가 이 캐릭터를 살리려고 하지 않으면 스토리가 진행이 안되니까요. 그런데 내가 가장 죽이고 싶은 캐릭터를 조작해야 한다면?
게이머의 악몽이지.
2부는 1부와 같은 시간대를 배경으로, 애비의 입장에서 진행됩니다. 즉 엘리가 시애틀에서 애비의 친구들을 마구 썰고 있을 때 애비가 어디서 뭘하고 있었는지를 다루죠.
플레이어는 이미 1부에서 애비가 누구인지, 엘리와 애비가 언제 만나는지, 애비의 친구들이 언제 죽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걸 2부에서 다른 시점으로 보는 것이 바로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의 핵심적인 설계입니다.
‘돌고도는 복수의 순환‘이라는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구성이며, “네가 아무런 감정도 없이 쏴 죽인 그 사람이 사실 이렇게 좋은 녀석이었어!”라는 걸 보여주고, 역지사지를 하고 반성하라는 제작진의 의도입니다.
조엘을 죽여서 복수를 끝낸 애비가,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는 공허감을 느끼고 결국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으로써 앞으로 나아간다는 메인 플롯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연출이 매우 빈약하다는 데에 있죠.
플레이어는 이번 편에서 애비를 처음 만났고, 애비가 가진 추억과 고통을 공감하기 위한 연출은 다 합쳐도 10분이 될까 말까 합니다. 하지만 전작을 한 플레이어라면 이미 최소 10시간 동안 조엘, 엘리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수 년이 지나도록 여운을 간직하고 있었죠.
애비의 개성과 그녀의 스토리는 그 모든 시간을 돌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지 않습니다.
불행한 운명으로 잘못된 신체에 들어간 영혼은 몸의 고통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애비에게 악감정을 가진 플레이어는 애비가 괴로워할 때마다 그 광경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때로는 즐거워하기까지 합니다. 애비를 플레이하면서 자살하는 장면을 모아놓은 영상이 인기를 끈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
애비의 친구들을 위협하는 저격수의 정체가 조엘의 동생인 토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저도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바로 내(애비) 옆에서 친구의 머리통이 날아갈 때 애비는 절규하지만, (그리고 그 친구는 애비 일행 중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정이 들만 했음에도) 그걸 보는 ‘나’는 쾌재를 부르죠. 와! 역시 토미 아저씨야!
그야말로 가련한 소녀에 빙의한 악마가 소녀의 고통을 즐기는 <엑소시스트>가 따로 없습니다.
…. 그래. 내가 악마다.

이 빙의는 너무 갑작스러울뿐더러 그 설득 방식이 너무 노골적이라 역겨울 정도입니다.
애비는 ‘또다른 엘리’로, 제작진은 플레이어에게 애비를 통해 “너는 네가 정의고 너만이 옳다고 생각했겠지만, 네가 가볍게 죽인 그 모든 사람들에게도 인생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려고 합니다.
애비는 엘리와 비슷한 면이 많은 건 우연이 아닙니다. 솔직하지 못한 성격, 아웃사이더 기질, 강한 생존력, 결정적으로 복수의 동기인 아버지인 점까지, 둘은 정말 닮았습니다.
게다가 애비가 아버지와 얼룩말을 치료하는 장면은 1편에서 조엘과 엘리가 기린을 만나는 신을 연상하게 하죠. (이것도 너무 대놓고지.)
하지만 작중에서 애비와 엘리를 비교하고, 입장을 바꾸는 방식 자체가 너무 일차적이며 공정하지 않기도 합니다.
1부 후반에 엘리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개 한 마리를 어쩔 수 없이 쏘아 죽이는데, 저는 그 순간 언뜻 불길한 예감을 느꼈습니다. 제작진이 나중에 이 강아지로 뭔가, 뭔가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아니나 다를까 2부가 시작하자마자 그 개가 앞에서 뛰어다니더라고요. 이렇게 유치하고 뻔한 수법을 쓰다니. 정말 실망했어, 너티독.
게임은 이런 식으로 엘리가 죽인 사람들이 애비의 입장에서는 선량하고 친한 친구들이었다는 점을 몇 번이고 강조합니다… 문제는 그게 너무 뻔해서 엘리 파트에서부터 일찌감치 눈치를 챌 수 있다는 거예요.

형평성도 없습니다. 엘리가 죽이는 사람들은 어째 하나같이 인간적이고 소시민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애비가 죽이는 놈들은 용서할 여지가 없는 광신도거나 꼴통 군인입니다. 엘리는 복수를 위해 직접적인 원한도 없는 평범한 소녀의 목을 칼로 찢어버리는데, 애비는 적 세력에 속해있던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은연중에 애비는 마음의 상처를 지닌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고 엘리는 잔인하게 미쳐 날뛰는 복수귀라는 프레임이 깔려있다고 봐도 되는 수준. 게다가 엘리가 디나와 말다툼을 하거나 임산부를 실수로 죽이고 급당황하는 모습 등에서 엘리에 대한 신뢰와 호감을 떨어뜨리는 짤짤이까지.

문제는 애비 파트는 이런 연출로 점철, 아니 그냥 통째로 이런 연출이라는 겁니다. 이 게임의 모든 순간이 “니가 한 짓을 봐, 너는 이렇게 괴로워해도 싸!”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게임 시스템상 플레이어에겐 변명도 못하게 하면서 수 시간 동안 심리적인 강압과 폭력이 이어집니다. 이 게임은 나를 고문하면서 플레이어에게 고차원적인 주제의식을 주입하는 갱생 프로젝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슬프고 괴롭고 시끄러운 나머지, 플레이하다 보면 나중엔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좆까 씨발아.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라는 겁니다. 8시간 동안 묶어놓고 때리고 차고 패면서 “반성해”를 외치면, 죽어도 반성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거죠.
게다가 제작진은 여전히 악의를 가지고 잔인한 연출로 플레이어를 괴롭힙니다. 애비를 조작하면서 엘리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게 만들죠.
그나마 그들이 우리를 사람다운 대우를 해준 유일한 순간은, 제시가 애비에게 죽는 장면이 자동으로 나오는 컷씬이었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내 손으로 제시를 쏘지 않게 해 줬으니까. 존나 고맙다.

플레이어를 작정하고 괴롭히는 게임이 이게 처음인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스펙 옵스: 더 라인>이 있죠. <지옥의 묵시록>을 거의 그대로 게임으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이 작품은 ‘PTSD 시뮬레이션’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지고 있고, 그럴 만합니다.
살면서 게임하면서 가장 빡쳤던 순간 부동의 1위가 스펙 옵스의 그 피난민 캠프임. 생각하면 아직도 손끝이 차가워질 정도로.
<스펙 옵스: 더 라인>은 플레이어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면서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과몰입해 제정신을 못 차릴 즈음에 벼락같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이 게임이 나한테 수작을 부린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감정을 고조시키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게임은(아니, 게임이 아니라 다른 장르라도 마찬가지지만) 결코 ‘수법’을 들키면 안 됩니다.
그러나 라오어2는 다릅니다. 애비를 추켜올리는 극단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이 애초에 작중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제작진이 너무나 개수작을 부리는 게 눈에 보이니까 오히려 반발심이 강해지고, 메시지가 머리로 들어오긴커녕 끝끝내 외부자의 입장에서 애비를 증오하고 이년의 사정 따위 알게 뭐야, 란 마음으로 가득해집니다.
… 네, 그렇습니다. ‘외부자’의 입장에서요. 플레이어가 애비를 증오한다고 해서 엘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 게임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이입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엘리를 조작하면서 보내는데도, 저는 엘리가 되지는 못했어요.
전작에서는 조엘에게 완전히 몰입해서 없던 딸이 생기는 기분을 느꼈던 것에 비하면 매우 놀랄 일이죠.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단 저는 엘리의 애인이 마음에 들지 않거든요.
요새 가장 문제인 글자, P와 C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굉장히, 어, 말하자면 매우 적극적인 PC 게임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인공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드러낸 게임은 지금까지 없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쪽에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문화 콘텐츠는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관점에는 동의해요. 엘리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은 많은 보수적 게이머들(특히 한국;)을 광분하게 했지만, 저는 그 대담한 설정과 그것이 사춘기가 된 엘리의 캐릭터성과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부분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엘리가 디나에게 느끼는 매력이 저에겐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취향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지만, 너티독이 그간 얼마나 많은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어냈는지 생각하면 이건 정말 당황스러운 일이에요.
대마초를 권유하는 디나가 좋은 여자 친구로 보이지 않는 건 제가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라서 그렇다고 쳐도, 엘리가 이미 디나에게 푹 빠진 상태이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디나를 사랑하는) 엘리에게 공감할 수 있는 틈이 없습니다. 게다가 디나가 임신을 한다는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플레이어의 가장 중요한 목적(복수)을 훼방 놓는 단계에 이르면, 이젠 화까지 납니다.
전작의 엘리가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라 게임 플레이에 도움을 주고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AI 동료의 신기원을 열어젖힌 캐릭터임에도, 이번작에서 주변 캐릭터를 만드는 제작진의 방식은 너무 어설프고 나이브했습니다.
이건 소재적인 측면에서 PC적 요소이긴 했지만 PC’라서’ 문제인 건 아닙니다. 엘리가 여자고 디나가 여자인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디나가 남자였다면 임신은 안 했겠지만.
그냥 디나가 별로고, 엘리가 왜 그렇게 사랑에 빠졌는지 이해가 잘 안 가고, ‘내’가 왜 디나를 위해 복수를 그만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예요.
– 이제부터 진짜로 PC 이야기를 좀 해보죠.

(적어도 저에겐) 이 게임의 진짜 ‘문제’는 너티독이 PC 사상을 가졌다는 점이 아닙니다. 그 사상을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어요. 너무나 뜬금없이, 강압적으로, 대놓고, 촌스럽게.
우연히 들어간 예배당에서 뜬금없이 디나가 내가 강인한 유대인이어서 자랑스럽다 운운하는 순간, 순식간에 현실로 튕겨져 나와 ‘닐 드럭만이 유대인이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사실이었다…
정말 불쾌한 기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예배당의 폐허를 보면서 감탄하고, 디나의 어렸을 적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순간적으로 몰입이 와장창 깨져서 게임 제작자(웬 아저씨)의 뻔한 ‘주장’을 마주했을 때.
낡은 프라이드 깃발이 걸려있고, 게임 안에서 주울 수 있는 쪽지를 쓴 사람의 절반 가까이가 동성 커플이며, 레브가 생물학적으로 여자이지만 본인은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다는 성 정체성을 고백하는 부분에선 놀라움이나 감동 그런 것보단 “아, 또?”라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PC 요소가 나올 때마다 게임 안에서 튕겨 나올 정도로 인위적이고, 고집스럽습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너무나 우악스러운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주장한 나머지 그 모든 주장을 오히려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메인 문제점에 비하면 거의 사소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시도 때도 없이 중간 광고가 튀어나오는 유튜브처럼 그때그때 몰입을 깨는 건 이 작품을 좋아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죠.
엔딩이 최악은 아닌 이유
누가 저에게 라오어2에 점수를 매겨달라고 하면, 저는 늘 간단하게 답합니다.
“1부에 3점, 2부에 1점, 3부에 6점, 평균 내서 3점.”
사실 밖에선 엘리의 복수가 물거품이 되고 결국 애비는 용서받고 끝났다며 비판하는 의견이 메이저하지만, 저는 사실 3부가 제일 좋았어요. 섬뜩하고, 강렬하고, 1편을 다시 보는 것 같아서.

2부가 끝나고 농장에 돌아온 엘리는 디나, 아기와 함께 새 가족을 이루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같이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리죠. 디나는 몇 번이고 엘리를 설득하려고 하지만, 결국 엘리는 따뜻한 가정과 복수 사이에서 복수를 선택하게 됩니다.
이제 복수 외에는 남은 것이 없어진 엘리는 고독하고 점점 더 잔혹해집니다. 나중엔 피아 구분 없이 일대 혼란과 학살을 불러일으키고, 본인도 크게 다쳤음에도 갈수록 폭주하는 엘리의 모습에서 복수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복수는 결국 자해예요.
그 증거로 엘리가 애비의 마지막 싸움은 눈뜨고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합니다. 엘리는 부상으로 피를 철철 흘리는 상태에 한쪽 발을 질질 끌면서 걷죠. 총도 없고, 칼도 제대로 잡지 못합니다. 물론 애비가 더 송장같은 몰골이긴 했지만. 엘리는 제발 싸우지 말자는 애비의 말을 무시합니다.
그래. 그때 엘리가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손가락을, 조엘이 남겨준 가장 큰 추억인 기타를 연주할 그 손가락까지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복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에게 뭐가 남았을까?
…. 끝없는 불면의 밤.
결국 복수는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엘리는 애비를 제압하고 그녀를 죽이려 하다가… 한순간 조엘의 환상을 봅니다. 아, 그 순간.
진짜 이 거지 같은 게임 오늘로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버텨가고 있었을 때, 이 게임에서 거의 유일하게 부정적이지 않은 감정이 들었던 단 한순간.
그리고 엘리는 애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습니다.
이 짧은 장면은 아무런 대사가 없습니다. 엘리가 그토록 많은 것을 잃어가며 추구했던 복수를 포기하는 결정적인 장면인데, 너무나…. 허무하죠.
그리고 그 허무함이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말하려고 했던 것의 핵심입니다. 다 의미 없었다고. 앞으로도 의미가 없을 거라고. 복수는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고, 복수를 하든 말든 조엘을 영원히 그리워할 거라고.
물론 애비를 죽이면 단기적으로 가뿐한 기분은 들었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그것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조엘을 본 순간, 애비 따위는 전혀 상관없어졌습니다.
조엘이 너무 보고 싶고, 너무 보고 싶고, 하지만 다시는 볼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여도 시원치 않은데, 시원치 않으면 굳이 죽일 필요가 뭐가 있지? 이제 와서?
저는 이 장면이 그 강렬한 공허감을 단번에 이해시켰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람마다 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은 각기 다르지만, 저는 ‘목적’의 유무와 그에 맞는 만듦새를 중시하는 편입니다. 비록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거지같았을지언정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라오어2가 개쓰레기 게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이할 의의나 가치가 없는 게임도 아니에요. 이 게임을 플레이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좀 더 행복했겠지.
그리고 남은 것은 슬픔뿐
이 게임을 끝내고 저는 한없이 – 슬퍼졌습니다. 종국에 나에게 남은 것은 분노도 짜증도 아니요, 그저 슬픔뿐이었습니다. 클리어하고 나서 지독한 슬픔만을 느끼게 하는 것을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는 기술적으로는 매우 뛰어난 게임입니다. 너티독의 특기인 공예적 아름다움은 물론이요, 적 AI나 게임 시스템도 전작보다 훨씬 발전했고 아주 정교합니다. 주제의식에 맞춘 대담한 시스템(주인공의 전환)이나 플레이어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레벨 디자인은 정말 다른 게임에서는 보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겐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고통 그 자체였고, 애비 파트는 가능한 한 빨리 끝내기 위해 가장 쉬운 난이도에 모든 가이드까지 다 켜고 땅 짚고 헤엄치듯이 대충 플레이했고 두 번 다시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프로듀서를 비롯한 제작진이 이 게임을 비난하는 유저들을 조롱하고 비하해서 한층 더 불타올랐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비이성적으로 울부짖는 유저들을 상대하긴 어렵다는 건 알지만, 실제로 제작진은 유저들에게 정말로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전작을 사랑하고 조엘과 엘리를 응원한 사람일수록 더욱 괴롭게 만들었죠. 솔직히 너무하다고 생각해.
….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상관이겠어요? 조엘은 죽었고, 엘리는 이제 기타를 칠 수 없게 되었고, 저는 애비따위 어찌 되든 상관없습니다.
게임을 하면서 너무 괴로웠고 돈 내고 고문받는 기분이었고 마지막엔 펑펑 울었던 게 아직도 잊히지 않지만, 엘리가 딱히 애비를 용서해서 그녀를 살려준 게 아닌 것처럼 저도 이제 그냥 이 작품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네, 그래요. 결국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저에게 가르쳐준 건 ‘수용’도 ‘이해’도 아니고 그냥 ‘포기’입니다. 괴로운 경험을 영원히 가슴에 안고 포기하는 것.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