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콘솔 게이머이면서 DC 코믹스 덕후입니다.
퐁당퐁당 덕질이긴 하지만 어쨌든 가끔 아마존과 코믹솔로지로 원서를 찾아보고, 보유 서적은 한… 몇 권이지? DC로 책장 두 칸, 마블로 책장 한 칸 채울 정도는 됩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고담 나이트>가 ‘게임의 완성도가 좀 낮아도 뱃팸이 나온다니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도 있고, ‘기대했던만큼 원작 케미가 살아나는 건 아니지만 게임이 재밌으니 만족’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 다 안됐어.

※ 싱글 플레이 위주 리뷰입니다.
프롤로그: 총체적 난국

슈퍼히어로 영화가 대세가 된지 하도 오래라 요새는 쫄쫄이를 입고 날아다녀도 새삼 촌스럽다는 평은 듣지 않는 세상인데, <고담 나이트>는 믿을 수 없을만큼 촌스럽습니다. 색깔만 보면 구글 나이트
모든 면에서요.
일단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배트맨이 장렬하게 산화하고 후대에게 뒷일을 맡긴다는 내용의 길고 긴 오프닝 영상이 나옵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컨트롤러에서 손놓고 10분 멍 때리면서 화면이나 보고 있어야 한다고요.
그 영상이 감동적으로 쩐다면 모를까, 라즈 알굴도 하나도 간지가 안 나고 연출도 그럭저럭인 전투씬 끝에 브루스 웨인의 장례식까지 가면 이젠 벌써 지루합니다.
요새 게임들은 몰입을 위해 지나치게 긴 컷신을 지양하고 초반부터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하게 하면서 대사나 상황 묘사로 배경 지식을 주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담 나이트>는 꼭 정반대입니다.
꼭 10년 전… 아니, <아캄 시티>가 2012년이잖아? 20년 전의 게임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오프닝을 넘어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반복적이고 단순하며, 스토리 전개는 무색무취의 연출과 스피드왜건으로 줄줄 읊어주는 컷신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스크립트의 수준도 형편없어서,
“할리퀸이 배트맨과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그건 할리퀸에게 직접 물어봐야겠군요.”
“아하.”
아니면
(할리퀸과 얘기 다 하고 나서) “그래, 할리퀸은 00해서 xxx 했고 ###했던 거야! 우리는 할리퀸을 막아야 해!”
대충 이렇습니다. 진짜 이 2타입만 줄창 번갈아가면서 나옴…

고담 풍경은 절망적일 정도로 촌스럽습니다. 딱히 그래픽 문제는 아닌데 그래픽 기술 자체가 의미가 없는 수준의 센스….
게다가 인게임 연출도 일일이 끔찍한데, 상자를 열면 갑자기 하이빔이 뙇!!!!!!!! 체력 포션을 쓰면 초록빛이 뽷!!!!!!
사운드마저 굉장히 뻔하고 올드합니다. 전리품 획득이나 레벨 업 효과음마저 거슬림…. 팝록이 흘러나오는 할리퀸 감옥 씬은 나름 킹스맨스러운 연출을 노린 것 같긴 한데 너무 올드해서 거의 애잔한 수준.

그리고 UI 디자인은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
모바일 게임까지 합쳐서 단연 2020년대 최악의 게임 UI 랭킹 톱 10에 들어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아니 물론, 모든 게임이 꼭 힙스터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지난 유행이라고 여겨졌던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 트렌드 그 자체를 바꿔버린 작품들도 많죠.
그러나 <고담 나이트>의 올드함은 어떤 컨셉이나 방향성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고담 나이트>의 촌스러움은 이 게임이 후진 이유가 아니라, 여러 가지 수준 이하의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나온 결과거든요.
최악을 다투는 스토리 vs. 게임 플레이
스토리와 게임 플레이 중에 어느 게 더 재미없는지 고를 수가 없네요.
그래도 미묘하게 스토리가 더 별로였으니 스토리를 먼저 까겠습니다.

<고담 나이트>는 ‘배트맨이 죽었다’는, 더없이 강렬한 오프닝으로 시작하지만 그 맛은 김 빠진 콜라 같습니다.
스토리 진행이 매우 난잡해서 대체 뭘 하라는 건지 모르겠고 처음부터 결말이 너무 뻔해서 앞으로의 전개가 전혀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스토리의 실질적 전개는 바보 문답과 스피드왜건의 반복뿐.
그마저도 리그 오브 쉐도우와 올빼미 법정의 존재를 모르는 뉴비에게는 당황스러운 급전개고 아는 올드비에게는 진부함과 지루함의 끝판이죠.
스토리에 대한 몰입도 형편없습니다. 브루스 웨인의 장례식을 치른 날 밤, 배트맨이 남긴 마지막 사건을 계속 이어받아 조사하는데 시작부터 긴장감이나 비장감은 1도 없습니다. 인물들의 태도나 이야기 전개가 매우 가볍기 짝이 없고 연기톤도 너무나 촐랑대서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
배트맨에 대한 추모나 깊은 감정 표현은 X키를 눌러 진행되는 인위적인 컷씬으로 나타날 뿐이며 그마저도 너무나 구리고 피상적인 대사 대잔치입니다.
소소하게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보이는데, 예를 들어 브루스 웨인을 추모하는 고급 파티에 몰래 잠입하는 미션에서 굳이 코스튬을 입고 환기구를 통해서 기어 들어가 멀리서 녹음 장치를 이용합니다. 브루스 웨인의 양아들이.
슨팀이야 호적 문제가 남아있다고 쳐도 딕은 턱시도만 빼입으면 들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후반부에 나오는 말하는 레이저 드릴(저는 레이저 드릴입니다. 일회용입니다.)이나 방폭문 바로 앞에 놓여있는 탱크 같은 경우도 이 게임의 낮은 수준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스토리 전개가 너무나 멍청한 나머지 등장인물 다 같이 지능이 퇴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뱃팸 팬으로서 오히려 불쾌할 정도예요.

한편 게임 플레이는 스토리보다는 제대로 되어있긴 하지만, 그 제대로 된 부분은 몽땅 락스테디의 아캄버스에서 가져온 것일 뿐이라는 점과 스스로의 단조로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합니다.
은신과 전투를 적절히 조합한 플레이 방식은 아캄버스의 그것입니다. 하지만 아캄버스의 배트맨은 상황을 파악하고 다채로운 은신 전략을 펼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고담 나이트>에서는 여기에서 ‘다채로운’이 빠져 있습니다.
활용 가능한 아이템이나 주변 환경은 매우 적고, 그냥 살금살금 뒤로 가서 덮치기만 하면 됩니다.

전투로 넘어가면 4명의 캐릭터마다 ‘개성적인’ 움직임과 스킬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음.. 뭐라 할까. 미시마 가문만 나오는 <철권>이라고 할까. 플레이 스타일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 스킬이 그리 멋있지도 않고 개연성도 없습니다.
제이슨의 라자러스 파워는 진짜 할말하않…..

또 전반적인 게임 진행 방식도 심히 밋밋합니다.
기본적으로 메인 미션을 따라가는 도중 사이드로 소소한 랜덤 범죄(흰색)를 해결하면서 다음에 있을 사전 계획범죄 계획을 밝혀내고, 빨간색으로 표시되는 계획범죄를 해결하는 방식인데요. ‘범죄자와 범죄 현장에서 단서를 모아서 다음 범죄를 예측한다’는 컨셉 자체는 좋았지만, 단순한 구성과 빈약한 동기로 경험치 짤짤이 노가다를 제외하면 범죄를 해결할 동기도 적습니다.
서브 퀘스트와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등장하는 서브 인물이나 스토리가 흥미롭지 못한 건 기본.
맵: 박제가 되어버린 도시를 아시오?
제작진은 발매 전부터 꾸준히 고담에 일반 시민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포인트로 내세웠습니다. 더 넓고, 더 생동감 있는 ‘진짜 살아있는 도시’라면서 말이죠.
그러나 <고담 나이트>에 추가된 일반 시민들은 게임에 어떤 유의미한 영향도 주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길 가다가 “저건 나이트윙 아니야?” “자경단이 여기 왜 있지?” “난 응원할게!” 같은 대사를 들어서 좀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스팸 테러에 가까운 NPC 대사들이 밀려옵니다. “어제 면접을 봤는데~” “요추 스트레칭을 시작했어” 같은 쓸데없는 대사가 상당히 많은데 스크립트도 몇 개 안 되는지 똑같은 대사가 계속 반복되어 나오고 또 나옵니다. 요추 스트레칭 대유행 중
‘생동감’을 준다고 했던 일반 시민들이 오히려 몇 안 되는 레퍼토리를 반복적으로 읊는 엑스트라라는 게 곧장 티가 나다보니,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오히려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데 일조합니다.
더구나 스파이더맨과는 달리 배트맨 패밀리는 밤에만 다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잡범들한테 처맞고 있거나 썸바디헲미를 외치는 게 아니면 보통 보이지도 않아요.
새로운 팩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담 나이트>에서는 기존 네임드 빌런의 수하들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세력을 확장한 팩션들이 잡몹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결국 걍 컨셉이 다른 미친놈 집단 123일뿐 전혀 신선하지 않으며, 불도저나 대모 등의 디자인은 불쾌한 구석마저 있습니다.
수집 요소의 깊이감도 매우 빈약. 배터랭은 그냥 눈감고 아무데나 던져둔 수준이며, 그래피티에 쓰인 설명은 정말 안물안궁이고 올빼미 법정 서류는 정말 거지같이 감춰놔서 리들러 트로피가 그리울 지경. 리들러는 머리라도 쓰게 만들었지만, 올빼미 서류는 그딴 거 없습니다.
결국, <고담 나이트> 속의 고담은 텅 비어있습니다.
크기도 넓고 랜덤으로 생성되는 범죄나 수집 요소가 있는데 어떻게 텅 비어있을 수 있냐고요? 박제된 사슴의 눈에 생명이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캐릭터 : 내 뱃팸은 이렇지 않아

<고담 나이트>는 꽤나 대담한 선택을 했습니다. 시작부터 배트맨을 죽이고, 그의 뒤를 잇는 캐릭터들을 내놓았죠.
사실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배트맨 패밀리’는 다들 그 자체로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슈퍼히어로들입니다.
첫 번째 사이드킥 출신인 나이트윙은 DC코믹스뿐만 아니라 마블까지 다 합쳐도 이길 사람이 거의 없는 경력자고(데뷔년도 무려 1940년으로 배트맨 첫 등장 1년 뒤임) 레드후드나 로빈, 배트걸도 각각 오랜 역사와 탄탄한 팬층을 가지고 있으며, 작중에서 가장 어린 로빈(팀)만 하더라도 코믹스에 처음 데뷔한 해가 1989년이고 20년 동안 솔로 시리즈를 가지고 있었을 정도입니다.
저는 나이트윙, 레드후드, 로빈, 배트걸이 정말 매력적이고 배트맨이 없어도 충분히 1인분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캐릭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고담 나이트>는 그 근거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고담 나이트>가 캐릭터들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가볍고 얕습니다.
일단 이 게임은 시작부터 그들에 대한 설명을 아예 생략합니다.
배트맨에게 동료가 있다는 사전 지식조차 없는 뉴비들에겐 심히 당혹스러운 부분일 테고 덕후 입장에서도 좀 어안이 벙벙합니다. 미국 코믹스는 작품마다 미묘하게 설정이 다르고 <고담 나이트>는 원작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제가 10년이 넘는 디씨 덕후라고 하더라도 <고담 나이트> 세계 안에서 이들이 어떤 인물인지, 배트맨과의 관계가 어땠는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 초반부터 캐릭터에 몰입할 시간과 여지가 없는데, 애초에 몰입을 그리 하고 싶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고담 나이트>가 원작을 신경 쓴 것은 보입니다. 예를 들어 팀이 양성애자인 것은 상당히 최근에 추가된 설정인데 버나드(현재 팀의 남자 친구)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언급하는 관련 대화가 있죠. 또 각자 다른 슈퍼히어로 친구들에게서 이메일을 받고 자기 자리에 친구와 찍은 사진을 붙여놓는 등 깨알 같은 이스터에그는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수준의 이스터 에그로 등장할 뿐이고, 정작 중요한 캐릭터의 본질에 대한 고찰은 한없이 얕습니다.
딕, 바바라, 제이슨, 팀은 각각 모범생 장남, 똑똑이 장녀, 츤데레 차남, 깨발랄한 막내 정도로 단순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차근차근 쌓아온 복잡한 개성과 서로 간의 관계는 사라졌습니다.
이를테면 팀은 이과 천재가 맞지만 분위기 파악 못하고 과학 지식을 줄줄 읊는 유형은 아니거든요? 딕은 은근히 예민한 구석이 있고, 바바라도 가족 드라마마다 하나씩 꼭 있는 깐깐한 똑순이가 아닙니다.

그리고 한없이 아쉬운 제이슨. 아니, 뭐… 진짜 백번 양보해서 비주얼이 아쉬운 건 그렇다 쳐요.
비록 제 차애고, 제가 제이슨의 얼굴과 몸에 반하긴 했지만 그래도 제이슨의 가장 큰 매력은 배트맨에 대한 애증과 비틀린 유머 감각, 늑대 같은 덩치에 미묘하게 정서적으로 미숙하고 어리다는 갭이란 말이에요.
그러나 <고담 나이트>에서는 제이슨 토드를 구성하는 그 대표적인 사건(죽었다가 광기에 넘쳐 부활하고 안티 히어로로 활동했다는 것)을 몽땅 ‘과거의 일’로 넘겨버리고, 매우 가볍게 다룹니다.
툭하면 제이슨이 죽었다가 라자러스 핏으로 부활했다는 점을 언급하는 주제에, 작중 무게감은 ‘죽었다가 돌아왔다’를 ‘마약 중독 센터에서 퇴원했다’로 바꿔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수준의 레벨.
다들 “그땐 그랬었지.. 하지만 우린 널 사랑해. 가족이잖아.”라고 말하는 건…아ㅏㅏㅏㅏ악 나의 뱃팸은 이러치 않아ㅏㅏㅏㅏㅏㅏ시발 그리고 허공답보가 다 뭐냐고!!!!!!!!!!
이런 캐릭터 메이킹은 웹툰인 <웨인 패밀리 어드벤처>와 비교해볼 수 있는데요.

<웨인 패밀리 어드벤처>는 배트맨 패밀리의 관계성을 매우 대중적으로 단순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배트맨이 애 10명 딸린 허당 아빠로 나오고 대가족이 투닥거리는 훈훈한 에피소드 위주로 거의 가족 시트콤에 가깝습니다.
무료로 풀리는 웹툰이라 접근성이 매우 높은 만큼 각 캐릭터의 매력 요소를 극대화해서 소개하면서 뉴비들을 입덕시키고,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마이너한 관계성이나 2차 창작 설정을 가져오면서 올드비들에게 팬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웨인 패밀리 어드벤처>는 약간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플랫폼과 목적에 충실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웨인 패밀리 어드벤처>를 보면서 선과 악의 심오한 구분이나 배트맨의 진지한 고뇌와 성찰, 파멸로 치닫는 가족 관계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고담 나이트>는 ‘배트맨의 사망’과 ‘도시를 어둠 속에서 지배하는 올빼미 법정’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모던 패밀리>를 찍는 겁니다. 까놓고 말해서 <웨인 패밀리 어드벤처>로 뱃팸 접한 사람이 그냥 콘솔 게임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도 더 잘 만들 수 있는데 그냥저냥한 수준으로.
고담시 주민이라고 언제나 어둠에 다크할 필요는 없지만 바바라와 제이슨이 댄스 게임으로 대결을 한다든지 벨프리에서 다 같이 영화를 보자며 떠드는 걸 보면 당황스럽다 못해 좀… 덕심이 차갑게 식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라이트함이 콘솔 게임이라는 무거운 장르, 그리고 배트맨의 사후라는 작중의 어두운 배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또한 관계성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얕고 촌스럽습니다. ‘묘사’라고 할 수도 없군요. 모두 그냥 직설적이고 단순한 대사로 자기 심리를 읊을 뿐이니까요. 전혀 흥미롭지도, 공감가지도 않아요.
디테일: 형편없는, 어설픈, 엉망인, 촌스러운
게임 내의 거의 모든 요소가 다 위의 4가지 형용사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콘솔 버전의 퍼포먼스 문제는 유명하죠. 기존 세대는 버린 주제에 PS5에서도 30FPS로밖에 돌아가지 않고, 그래픽은 까놓고 말해서 그냥 별로입니다. 컷신은 그렇다 쳐도 인게임 기준 그래픽은 어떤 인상도 남기지 않으며 끔찍한 캐릭터 디자인과 아트 스타일이 캐릭터의 매력을 전혀 살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는 코옵은 원래 안 하는 파지만, ‘친구와 함께 하는 멀티플레이’를 크게 광고해놓고 실은 2명밖에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까일 점.

그리고 잦은 패치에도 불구하고 버그가 계속 쏟아지는데, 저는 제이슨의 후드티 끈이 앞으로 기립하는(….) 이상한 버그에 걸려서 제이슨 볼 때마다 괴로운 이유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
번역조차 형편없어요. 원작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검수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브루스’와 ‘브루스 씨’, 서로 간에 존댓말과 반말을 왔다갔다 하는 건 예사고 알프레드의 ‘도련님’ 호칭은 전부 생략, 저는 번역이 되지 않은 영문 텍스트 출력까지 봤습니다. ‘라자러스 핏’이었다가 ‘라자러스 구덩이’였다가, 팀이 보낸 메일이 반말인데 그다음 메일은 존댓말로 보낸 것도 있습니다.
모멘텀 능력, 나이트후드, 슈트 워크아웃 등 묘하게 뭐라는 건지 헷갈리는 고유명사 남발이나 ‘완벽한 습격'(의미상 반격)같은 요상한 단어도 문제.
아캄의 그림자

리뷰를 하면서 아캄버스를 최대한 언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군데군데 나오긴 했네요. 하지만 인정해줘. 난 한 문장마다 한 번씩 아캄버스를 언급하면서 이 게임을 깔 수 있었지만 참았다고.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을 시작으로 한 ‘아캄버스’의 실질적인 제작사는 둘입니다.
- 락스테디: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 배트맨 아캄 시티, 배트맨 아캄 나이트
- WB 게임즈: 배트맨 아캄 오리진, 고담 나이트
둘 다 워너 브라더스 소속이라 크게 보면 한솥밥이고, WB 게임즈는 아캄버스의 외전 <아캄 오리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아캄 오리진>은 락스테디의 3부작에 비해선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지만 그래도 본편의 시스템을 훌륭하게 따라했고, 배트맨과 조커 및 원작 캐릭터들의 해석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고담 나이트>는 그야말로 클라스 차이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시스템의 기본적인 틀은 전부 아캄버스에서 가져왔으나, 시스템을 다루는 능력과 디테일을 감지하는 센스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아캄버스의 일부(협동 공격이나 탐정 요소같은 것들)를 떼어다가 발전시키려는 계획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결과로 나오질 않았아요.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방향성으로 보면 아캄버스의 후계자 자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고담 나이트>보다 <스파이더맨>이 더 적절할 정도입니다.
여담인데 고담 나이트 보고 마블스 스파이더맨 짭이라고 하는 겜알못 리뷰를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굳이 말하자면 스파이더맨이 짭아캄이라고… 등신 새끼야…

그리고 캐릭터 해석과 이해도 측면에서도 심하게 차이가 납니다.
뭐, 텀블러 2차 창작 감성이 충만한 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유저들도 분명 있겠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고담 나이트>에 나오는 어떤 캐릭터도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다는 겁니다. (적어도 원작 코믹스 이상으로.)
이렇게 건방질 정도로 단언할 수 있을 이유는 제가 불행하게도 DC 코믹스에 입덕하게 된 것은 <배트맨: 아캄 시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는 배트맨을 좋아하지도, 관심도 없던 평범한 일반인(?)이 갑자기 한국에 정발도 안된 원서를 사 모으기 시작하고, MCU가 빵빵 터질 때마다 재밌게 보는 한편으로 쓰라린 가슴으로 ‘왜 우리는 저런 거 못 만들까 ㅅㅂ 게임은 잘 만드는데..’ 하게 만들었단 말이에요.
아캄버스는 게임 자체로도 굉장히 잘 만든 명작이고, 그와 동시에 원작 코믹스를 잘 반영하면서도 흥미롭게 재해석한 캐릭터 게임이도 합니다. 배트맨과 고담에 대해서 더 알아가고 싶고, 찾아보고 싶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고담 나이트>를 하고 입덕할 사람이 있을까?
…..입덕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입문용 코믹스라도 정리해서 드리게.
그래도 이건 좋았다
잠시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을 키우기 위해 칭찬 타임을 가져보자면… 음…
X키 이벤트에서 나름 괜찮은 장면도 몇 개는 있었어요.
건물 위에서 제이슨이 딕을 살짝 밀었을 때 딕이 떨어지는 척하면서 놀라게 하는 것도 좋았고, 제이슨이 내 총 맞아도 안 죽어~괜찮아 괜찮아~하니까 팀이 앞을 가로막고 당돌하게 그럼 나한테 쏴보든가 하는 거라든가.

그리고 원작 코믹스에서 배트맨의 멘탈을 갉아먹은 그 올빼미 법정의 미궁을 재현한 것은 꽤 좋았습니다.
비록 올빼미 법정에 대해 밝혀지는 경위가 매우 허접하고, 스토리상 흑막이 누군지는 너무나 뻔했고, 미궁의 함정과 퍼즐 기믹도 ㅈ같긴 했지만….

그리고 거대 저택이나 아캄 어사일럼의 폐허 등 몇몇 스테이지에서 보이는, 우아하고 고풍스러운데 으스스하고 오싹한 특유의 고딕 분위기는 인상적이었어요.
경비원들 쫙 깔린 저택에 잠입할 때가 제일 오싹하고 재밌었음…. 어사일럼 디자인도 좋았고. 아예 고딕 호러 컨셉으로 갔어도 좋았겠다… 아예… 딴 게임이었으면…….ㅎ
<고담 나이트> 종합평
일단 <고담 나이트>는 게임으로서 대충 기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굳이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게임이에요. 마치 팥도 슈크림도 없는 붕어빵처럼.
제가 DC코믹스와 배트맨 패밀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뉴비였다면 <고담 나이트>를 재미없고 허접한 게임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저는 DC코믹스와 배트맨 패밀리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고담 나이트>는 재미없고 허접한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담 나이트>
팬이라서 더 고통스러운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