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래그 테일: 레퀴엠>은 2019년작 <플래그 테일: 이노센스>의 후속작. 장르는 잠입 액션 어드벤처.
훌륭한 후속작이며, 2편으로 시작해도 괜찮습니다. (1편 이야기의 완결이라는 느낌은 있지만, 전작을 안 했다고 이해가 안되진 않음) 뛰어난 그래픽과 깊이 있는 내러티브가 장점이며, 독특한 배경과 분위기도 좋습니다.
단, 플레이한 후의 멘탈 상태는 보장하지 않습니다.
<플래그 테일: 레퀴엠> 리뷰 목차
이노센스의 끝, 레퀴엠의 시작
<플래그 테일: 레퀴엠>은 전작인 <플래그 테일: 이노센스>의 엔딩에서 이어집니다. 별다른 설명이 없기 때문에 다짜고짜 2편부터 시작하는 플레이어는 좀 헤맬 수 있는데, 아주 간단하게 이노센스의 스토리를 훑고 가보자면…

일단 배경은 14세기 프랑스.
지방 영주인 드 룬 가문의 딸인 아미시아는 아버지에게 사냥을 배우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평화는 이단심문관의 방문으로 끝이 난다.
아미시아의 남동생 휴고는 전염병을 옮기는 쥐떼를 조종하는 능력(병)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노린 이단심문관은 남매의 아버지를 살해한다.
드 룬 가문은 풍비박산 나고 아미시아는 휴고와 함께 쫓기는 몸이 되지만, 그녀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분투합니다.
아미시아는 가까스로 이단심문관을 물리치지만 대신 도시는 휴고가 불러들인 쥐떼로 인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아미시아와 휴고, 남매의 어머니 베아트리체, 그리고 베아트리체의 연금술 조수인 루카스 이렇게 4명은 고향을 뒤로 하고 먼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기가 이노센스의 끝.
그리고 레퀴엠이 시작됩니다.

1편을 하지 않았어도 눈치로 알아 들어가며 2편을 하는 것이 가능은 합니다. 베아트리체나 루카스와의 관계는 쉽게 알 수 있고, 휴고에게 저주받은 능력(모반)이 있으며 아미시아와 휴고가 매우 힘든 일을 헤쳐왔다는 사실 정도만 알면 전반적인 스토리 이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물론 1편을 하는 게 캐릭터의 심리나 사건 이해에 훨씬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러나 1편과 크게 다른 점, 1편을 알고 있을 때 더욱 크게 와닿는 차이점이 있는데요…..
<플래그 테일: 레퀴엠>의 시점에서 아미시아와 휴고는 (전작처럼) 더이상 ‘순수’하지 않습니다.
그냥 좀 씩씩한 귀족 아가씨일 뿐이었던 아미시아는 한순간에 집과 부모를 잃고, 지옥같은 광경을 마주하며 동생을 구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면서 점차 변해갑니다.
고작 다섯 살인 휴고도, 원래 순진하고 착한 아이인데 잔인한 광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모반에 점차 잠식되어 가죠.
2편은 평화로운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변해서 그럴 수 없는, 그래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아미시아와 휴고의 고뇌에 초점을 맞춥니다.
남매가 숲에서 노는 장면으로 시작해 불붙은 들판으로 끝나는 2편의 오프닝 파트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순수의 시대는 갔다고.
스토리: 각오가 필요한 이야기

일행은 휴고를 치료해줄 연금술 단체 ‘오더’를 찾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 도착한다. 아미시아와 휴고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에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들뜨지만, 곧 이곳에서도 전염병이 나타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파멸의 징조가 나타난다.
어렵게 찾은 오더의 마지스터는 휴고를 강압적으로 대하고, 계속되는 치료에도 불구하고 휴고의 증세는 점점 심해진다.
아미시아는 휴고를 함부로 대하는 오더를 따르는 것보다 휴고의 꿈에 계속 나타나는 ‘치유의 섬’에 가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하는데….
<플래그 테일: 레퀴엠>은 내러티브에 초점을 맞추고 스토리를 중시하는, 상당히 전통적인 직선형 게임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정해진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이게 정말…. 정말로 힘들어요.
스토리는 탄탄하고 내러티브의 퀄리티도 훌륭해서 ‘재미’있는 게임인 건 맞습니다. 그러나 목표로 향하는 길이 매번 순탄하지 않아서 스토리의 진행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이고, 처절하게 노력했다가 절망에 꺾이는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에 엄청난 정신력이 소모됩니다.
내러티브만으로 이 정도로 정신력을 소모하는 게임은 스펙옵스와 라오어2 이후 처음임….
일단 극한 상황과 주인공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고 치밀해서, 플레이어로 하여금 감정적인 몰입을 유도합니다.

아미시아는 완벽한 보호자가 아닙니다. 전투에 잔뼈가 굵은 기사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배짱과 집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소녀입니다. 풀아머를 입은 건장한 남성을 상대로는 정면 승부에서 절대로 이길 수가 없어요.
게다가 아미시아는 초반부터 명백한 PTSD 증상을 보이며,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한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치명적인 실수들도 하죠.
멘탈을 다잡아주는 동료가 없었더라면 이미 진작에 끝장났을 위태로운 상황도 몇 번이나 넘깁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얻어맞고 좌절당하고 절망했다가도 다시 일어나 끝까지 휴고를 지키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처절해서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녀와 함께할 결심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휴고. 휴고는 정말……. 찐 애기예요.
비디오 게임에서 피보호자 캐릭터는 흔히.. 뭐라고 할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느낌이 강한 경우가 많습니다. ‘민폐’가 되지 않으려면 플레이어에게 기능적으로 도움이 되든가 아주 조숙해야 합니다.
하지만 휴고는 진짜 애기 그 자체입니다. 금방 나쁜 일을 잊어버리고 뛰어다니는 모습이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도 고작 물웅덩이를 무서워하면서 땡깡을 부리는 등 사소하지만 현실적인 ‘어린애다움’의 묘사는 경이로울 정도.
가끔 귀찮고 답답할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누나 손을 붙잡고 종알종알하는 걸 보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이건 ‘민폐’일 수가 없어. 이건 다섯 살짜리 어린애고 내 동생이야.

이런 현실적인 캐릭터 메이킹을 바탕으로 남매가 지닌 잔혹한 운명의 비극이 더욱 강조되고, 내러티브의 깊이가 더해집니다.
휴고는 정말 착한 아이지만 그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었고, 아미시아는 군인을 죽일 때마다 동생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되뇌입니다. 이 상황에서 선과 악,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린 왜 이렇게 된 걸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잔혹하고 복잡하고, 다층적인 감상을 이끌어냅니다. 게임을 하면서도 플레이어로 하여금 계속 혼란스럽고 고뇌하게 한다는 건 좋은 내러티브라는 증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긴 했어. 이 게임 진짜… 진짜 너무해… 중반부터 계속 ㅅㅂ 소리를 달고 다님.. 아니 ㅅㅂ… 미친?? 이게 지금???? &*^%$## 어린애한테??? 뭐하는,,뭐하는 거야@?#&*^아아ㅏㄱ
다만 이런 감정적 몰입과는 별개로 스토리 전개 자체는 다소 의문스럽게 진행되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진행 속도는 느리면서 계속 비슷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에 상당한 피로감을 유발합니다.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법이긴 하지만, 지나친 피로감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은 마이너스.
그리고 일부 인물들의 동기가 충분히 표현되지 못했고, 핍진성이 부족한 부분이 아쉽습니다. (특히 섬에 도착한 후)
또, 후반은 엄청난 스케일에 짓눌려서 내러티브가 다소 정돈되지 못한 느낌.
….그러나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이야기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엔딩 의미 해석 (스포일러)
엔딩은 두고두고 다시 생각할수록 점점 슬퍼져요.
아미시아는 심한 PTSD에 시달리며, 살인을 할 때마다 “이건 다 휴고를 위한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소피아의 말대로 휴고는 아미시아를 보고 배워서, 휴고도 점점 악에 받쳐서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되죠.
눈 앞에서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정신줄을 놓은 아미시아는 대놓고 휴고를 부추기고, 휴고 역시 한계까지 힘을 써서 성 한 채를 모조리 초토화시키고 크게 마음이 상하고 맙니다.
그러나 아미시아는 자신이 폭주한다는 자각은 좀 있지만 이러지 않고는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합니다. 너무 심했다고 지적하는 루카스에게 단번에 이래야만 했다고 대꾸하죠. 루카스도 휴고를 위한 일이라고 인정은 하지만…
아미시아의 ‘진심’은 최후반부에 가서야 드러납니다.
사실은 혼자 싸우는 게 무섭고 혼자가 되는 게 너무 무서웠다는 것, 이 모든 게 그녀 자신을 위한 싸움이었다는 것.
사실 중간중간 아미시아가 고집스러울 정도로 이 모든 재앙이 다 휴고의 잘못이 아니고, 반드시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 주장하는 게 자기 방어와 약간의 현실 도피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휴고는 실제로 초자연적인 힘이 있어서 ‘섬의 부름’을 받지만 아미시아는 그런 능력이 없는데도 섬에 가면 다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사실 혼자 있을 때에는 불안해 하면서 500년도 더 넘은 폐허에 제발 단서가 있기를 빌면서 흐느끼기도 하죠.
그런 관점에서 마지막 성운에서의 장면을 생각하면 많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운 안에서 아미시아는 새 석상을 따라갑니다. (예전처럼) 이 모든 것이 의미가 있고, 주어지는 단서를 따라가면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휴고는 이곳이 아미시아의 마음 속이며, 그런 생각은 답이 될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결국 아미시아는 석상이 가리키는 곳을 반대로 나아감으로써, 즉, 그녀가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일부러 못본 체 하던 반대 방향에서 답을 찾습니다.
아미시아가 지금껏 그렇게 노력했던 이유는 그녀도 내심 휴고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미시아는 그것을 거부하고, 맞서싸우며 점점 파멸로 다가갔던 거죠.
“누나가 싸우는 것을 볼 때마다 참 슬펐어. 매번 의미가 있는 것처럼 싸웠으니까.”라는 휴고의 말은, 아미시아가 없는 의미를 만들어가며 버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찌보면 아미시아가 여태까지 했던 일이 전부 삽질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휴고를 지키려고 했던 그 모든 일들이 오히려 재앙을 키우는 이유처럼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러나 그것들은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많은 길을 거쳤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아미시아도, 휴고도 마지막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운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모든 상황이 휴고를 폭주하는 길로 몰고 갔으나, 마지막의 마지막에 휴고는 자기 자신을 멈출 유일한 기회를 잡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휴고가 다 미워서 다 죽인대도 이 세상은 그에게 할 말이 없지만, 휴고는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는 착한 아이였기 때문이에요.
앞서 <레퀴엠>은 <순수>가 불타버리면서 시작했다고 언급했지만, 결국 종말을 막은 것은 휴고에게 남아있던 <순수>였습니다.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슬픕니다. 플레이하는 내내 이런 결말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는데도, 작은 오두막에서 다같이 꽁냥꽁냥 살았으면 좋겠다고 빌었어요. 정말 진심으로.
절대 그렇게는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마치 아미시아처럼.
후… 이 정도 감정 소모는 진짜 오랜만이어서 엔딩 보고 그대로 뻗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우는 아미시아를 안아준 것이 루카스였고,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옆에서 지켜봐 주었다는 것.
그리고 엔딩에서 아미시아가 또다른 사람(다른 숙주와 보호자)을 지키는 것을 삶의 의미로 삼았다는 점. 아르노처럼.
+루카스 진짜 너무… 너무 미안하고 너무 고마워. 엔딩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정말 아쉬운 점이지만,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루카스가 죽었다면 진짜 돌아버렸을 것……
그래픽: 이 아름답고 잔인한 세계
그래픽의 수준은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퍼스트 파티도, 대규모 게임 제작사도 아닌데 이런 퍼포먼스가 나온다고….? 오픈월드는 아니지만, 상당한 규모의 마을과 도시를 생동감 넘치게 구현했고, PS5 기준으로 30만 마리의 쥐(……..) 역시 대단한 박력을 줍니다.
기술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아트적으로도 훌륭합니다.

그리고 특히 화창한 날씨의 아름다운 마을에서 문을 열자마자 돌연 수레에 시체가 산더미처럼 가득 쌓인 도살장을 마주하는 등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는 강약 조절이 쩔어요…..특히 수십만 마리의 쥐들이 말 그대로 성벽을 뚫고 터져 나와서 도시를 파괴하는 장면은 공포를 넘어 얼탱이가 나가서 오히려 감탄하게 되는 장관입니다.
아름다움과 잔인함이 뒤섞인 세상, ‘약간의 희망 뒤에 밀려오는 집채만한 절망‘을 스펙터클하게 보여주는 연출이 일품.
정통 호러는 아니지만, 배경이 다소 어둡고 묘사가 상당히 고어하기 때문에 심약자는 주의. 그야말로 사방이 쥐떼와 시체밭이며, 플레이하고 나면 고기에 대한 식욕이 뚝 떨어져서 거의 채식주의를 장려하는 수준.
응… 엄마 나 오늘 저녁 불고기는 됐어…
점프스케어는 없지만 오히려 시종일관 분위기로 압박해서 기진맥진하게 만듭니다. 스토리로 인한 극심한 감정 소모는 덤….
시스템: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플래그 테일: 레퀴엠>은 ‘어렵기보다는 빡센’ 게임입니다. 난이도 자체는 어렵지 않고 컨트롤을 요하는 부분도 적지만, 특유의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적은 인간형 적과 쥐떼로 나뉘는데, 어느 쪽이 더 싫냐면… 인간입니다.
아미시아는 새총을 쏴서 돌로 적의 뚝배기를 깨버릴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전투가 쉬운 건 아닙니다. 아니, 사실 전투는 매우 불리해요.
새총은 소리가 나서 주변의 적들에게 들키기도 쉽고 애초에 투구를 쓴 상대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석궁은 원샷원킬이지만 화살 수급이 정말 눈물나며, 근접 전투의 반격도 제한적이고 아미시아는 적에게 1-2대만 맞으면 사망합니다.
주변을 면밀하게 살피지 않는다면 탄약 수급도 빡빡하고, 이동도 매우 제한적이라 다른 게임 같으면 점프하거나 대충 기어올라갈 수 있을 만한 곳도 못 가요.
파쿠르? 어림도 없지.

따라서 플레이는 매우 신중하면서도 영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 환경과 도구 사용이 무척 중요한데, 순찰 루트를 관찰하고 돌을 던져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는 기본적인 기술은 물론 적의 횃불을 꺼버리고 쥐떼가 있는 곳으로 밀어버리거나 타르와 점화약의 조합으로 불을 붙여버리는 등 상황에 맞는 다양한 응용이 필요합니다.
바닥에 가득한 쥐떼는 위협 그 자체. 쥐떼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횃불이나 미끼로 길을 열 수는 있지만 “이 정도면 봐주지 않을까”란 안일한 생각으로 거기서 조금만 더 발을 내딛었다간 바로 녹습니다.
그러나 한편 쥐떼는 무기이기도 합니다. 불을 끄고 적을 쥐떼에게 밀어버리는 건 가장 손쉬운 처리 방법이며, 특히 휴고가 자신의 의지로 조종할 땐 매우 강력한 아군이 되어줍니다. 휴고는 쥐떼의 감각과 연결되어 벽 뒤나 멀리 있는 적을 투시할 수 있고 아예 쥐떼의 시점으로 움직이며 직접 적을 공격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휴고의 정신력 때문에 오래 연결하는 것은 위험하고, 일단 애기가 낑낑거리면서 아파하는데 점점 안 쓰게 됨…)
사실 게임 플레이에 어느 정도 답이 정해져 있는 편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풀어볼까’보다는 ‘어디로 가는 게 정답일까’가 이 게임에 좀 더 맞는 사고 방식이에요. 플레이 방식에 익숙해졌다면 그 다음부터는 상당히 쉬워지는데, 창의성이나 자유도를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같은 쥐떼가 나오는 <디스아너드>같은 경우에는 서술형 문제였다면, <플래그 테일>은 복수 정답이 인정되는 객관식 문제에 가깝습니다.
독특한 배경 설정, 쥐떼와 불이라는 강력한 메커니즘, 그리고 치밀하게 구성된 레벨 디자인은 근래 넘쳐나는 비슷비슷한 게임들 사이에서 유니크한 인상을 줍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하느냐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포인트가 누적되면서 자동적으로 관련 스킬이 해제되는 스킬 레벨업 방식도 꽤나 좋았어요.
은밀하게 움직이면서 적을 많이 죽이지 않으면 ‘은밀함’ 관련 스킬이, 다 쳐죽이고 다니면 ‘전투’ 스킬이 저절로 오릅니다. 스킬 포인트를 노가다해서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인위성을 배제하고 좀 더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라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신 트로피 따려면 머리를 두배로 써야 하는…
비디오, 사운드, 텍스트 : 이것이 독학의 맛
제작사인 아소보 스튜디오는 10년이 넘은 중견 게임 스튜디오지만, 영화같은 내러티브를 지닌 콘솔 AAA게임을 자체 제작한 것은 전작인 <플래그 테일: 이노센스>가 처음이었습니다.
보통 대형 제작사나 프랜차이즈 위주로 돌아가는 AAA 시장을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마치 독학한 요리사가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이 된 것 같은…. 그런 의문의 감동.

그런만큼 <플래그 테일>의 연출은 꽤 독창적이면서도 노련함은 다소 떨어집니다. 일부 컷씬의 화이트 페이드인/아웃은 좀 어설픈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그런 것도 재야의 맛이랄까…. 매력이 있어요.
그 ‘요령 없음’을 묵직한 분위기와 소소한 장면의 디테일로 커버하는 편.
연출의 임팩트 상당 부분은 사운드에서 나오는데 음악이 매우 훌륭합니다. 현악기를 적극 활용해서 서정적인 남프랑스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면서, 때로는 날카롭고 찢어질 것 같은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특히 쥐떼 나오기 직전 그 즤-잉, 즤-잉하는 브금 뜨면 하… 진짜 정신나갈 것 같음….
그러나 번역은 조금 아쉽습니다. 스토리 이해에 영향을 줄 정도로 심각한 오역까지는 아니지만, 중간중간 몰입을 깨는 통일성 문제가 좀 있어요. 벨라도나를 밤그늘꽃, 오도리스를 고귀한 피, 야수라고 했다가 늑대라고 했다가…. 가장 심각한 것은 ‘바실리우스’를 가끔 ‘베이즐’이라고 번역한 것.
또 아미시아가 급박한 상황에 도망치면서 하는 혼잣말을 존댓말로 번역하는 등 사소한 검수 문제가 제법 있습니다.
종합평 : ★★★★☆

독특한 설정과 진한 내러티브로 호평을 받은 전작에 이어,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더욱 깊이감을 더한 훌륭한 후속작. 여러가지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다만 스토리 전개는 아주 약간 어설픈 부분이 있고, 시스템 자체는 여기저기에서 많이 본 익숙한 것들이라 배경이나 설정에 비해 게임 플레이의 독창성은 다소 떨어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2022년 반드시 해봐야 할 게임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플레이하는 내내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게임은 상당히 드물었어요. 스토리와 게임 플레이 양 측면에서 긴장감과 압박감이 심하고 심한 감정적인 몰입을 유도합니다.
하지만 한번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라오어2는 그랬지
강렬한 주제 의식과 섬세한 인물 묘사는 다른 작품에서는 정말로 보기 힘든 부분이고, 사람 마음을 쥐었다폈다 하는 연출도 일품.
일부 구조적인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이렇게 사람을 사로잡는 강렬한 이야기는 그 존재만으로도 대단합니다. 대단히 잔혹한 한편 정말 아름다운 게임이기도 하고요.
각오가 되어 있다면, 한번쯤 이 게임을 겪어보시길.
<플래그 테일: 레퀴엠>
멘탈을 제물로 바쳐 소환한 아름다운 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