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리뷰에는 영화 <바비>에 대한 다소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비> 리뷰 목차
<바비> 줄거리
“바비는 뭐든지 될 수 있어.”
어린 여자아이들의 세계를 완전히 바꾸어놓은 바비 인형들이 살고 있는 바비랜드.
바비랜드에서 완벽한 생활을 하고 있던 바비(마고 로비)는 어느날 자신에게 ‘바비같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느끼고, 이것이 바비랜드와 이어져 있는 현실 세계에 있는 자신의 주인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비는 켄(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현실 세계로 떠난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바비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는데…
일단, 예쁘다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비주얼, 이 영화가 얼마나 예쁜가입니다.
바비 영화가 안 예쁘면 어쩌겠어요?

마고 로비는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바비 인형 그 자체이며, 작중의 모든 세트와 의상은 눈돌아가게 화려하고 예쁘고 핑크색입니다. (실제 바비 인형에 대한 오마주는 덤)
영화는 시종일관 ‘바비의 미학’을 완벽하게 펼쳐보이며, 우스꽝스러운 장면도 전혀 촌스럽고 어색하지 않고 관객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갑니다. 특히 뮤지컬을 버무린 시도는 정말 신박하고 좋았네요.
극한의 비주얼과 동화적인 연출이 시니컬한 메시지와 어우러질 때의 쾌감은 동남아의 단짠단짠 향신료 요리와 같은 힙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네, 그래요. 이 영화는 꽤 시니컬하답니다.
단순함 속 정교함
<바비>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그냥 별 생각없이 보기만 해도 됩니다.
이 영화는 배경 설정과 세계관이 단순하고, 주제 의식을 중요한 순간에 요약본으로 아예 직접 대사로 때려박아 주기까지 하니까요.

롤러스케이트만 타면 대충 어찌저찌 현실 세계와 바비랜드를 오갈 수 있다는 건 심히 편리한 설정이고 마텔 사의 직원들이 살아 움직이는 바비 인형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비현실적인데, <바비>는 ‘어떻게 인형이 걸어다녀? 바비랜드하고 현실 세계는 어떻게 통하는 거야?’같은 질문은 아예 그냥 무시합니다.
완벽한 바비 인형이 현실 세계를 접하면서 자아를 찾게 된다.
이 사건 자체의 디테일, 그러니까 바비가 어떻게 현실 세계로 갔고 사샤를 만났으며 마텔사 직원들이 뭐하는 사람인지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의 의미죠.
<바비>는 거의 모든 장면 하나하나, 모든 대사 한줄 한줄에 색색깔의 의미를 짜넣었습니다.
페미니즘,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 자아와 자존감에 대한 고찰, 몸에 대한 인식, 가부장제의 우스꽝스러움과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 그 외에도 정말 많은 것들을 다룹니다.
이 주제들을 다루는 방식도 바비의 코스튬만큼이나 변화무쌍해서 때로는 누구나 알아들을 정도로 신랄하고 직접적인 사회 비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특정 나이대의 여자가 아니라면 알아들 수 없는 우아한 돌려까기를 시전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건 매우 간단명료하지만 사실은 한 문장 한 문장마다 밑줄을 쳐가면서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살펴봐야 할 수능 지문같은 작품입니다.

사실 메인 스토리 라인은 평이한 편이며, 특히 사샤 모녀의 심리와 행동 변화는 매우 얄팍해서 당황스럽습니다. 특히 후반부에 글로리아의 긴 연설 장면은 너무 뜬금없고 직접적이라 유치함에 오그라들 정도입니다.
(물론 그 대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맞는 말 대잔치이긴 하지만)
하지만 이건 영화를 대충 만들었기 때문이라기보단 영화가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돌려말하는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른 부분, 예를 들어 바비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한 묘사가 드러나는 것을 보면 거의 분명합니다. 그리 일차원적인 감독이 아니기도 하고요.
또 모녀의 캐릭터성이 매우 얕은 점도, 한번 꼬아서 생각해보면 (실제로 영화를 보는) 미국의 엄마와 딸들이 감정이입하도록 일부러 느슨하게 한 것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다만 한국 사회는 이 영화에서 다루는 논의에 어울리는 수준도 아니고, 한국 여성들에게 바비 인형이 그리 친숙한 이미지가 아니어서 관객들이 이 영화에 푹 빠지긴 어렵습니다.
(한때 바비 인형 소유자로서 말하자면, 한국에서 바비의 이미지는 ‘쭉빵한 외국 여성’으로 약간 묘하게 무서운 느낌마저 있었죠… 더 순하게 생긴 공주틱한 인형들이 인기가 많았음)
하지만 그럴 가치는 있어요.
한번 깨닫게 되면 두번 다시 모른척 할 수 없는 많은 진실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란 캐치프레이즈는 얼핏 보면 무한 긍정적인 페미니즘 그 자체로 보입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오마주한 오프닝 시퀸스에서 나타난 거대한 바비는 아기 인형을 가지고 놀던 소녀들에게 컬쳐쇼크를 선사합니다.
소녀들에게 엄마 역할만 요구하는 아기 인형이 아니라,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본인의 꿈’을 투영하는 인형이 처음 나타난 거죠.
소녀가 바비를 보고 아기 인형을 때려부수는 장면은 ‘이젠 엄마 역할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페미니즘의 발로로도 보입니다.
그래서 바비랜드의 바비들은 자신의 등장으로 세상이 더 좋아졌고, 현실 세계의 여자아이들이 바비 인형을 보고 독립성과 자존감을 키웠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죠.
…하지만 정말 그런가?
바비랜드에서는 대통령도 법무부 장관도 의사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도 바비지만, 실제로는 대통령도 법무부 장관도 의사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도 대부분 남자입니다.

바비는 여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여성이라는 환상을 상징합니다.
나도 바비처럼 예뻐질 수 있어,
나도 바비처럼 당당하고 멋지고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어,
나도 바비처럼 뭐든지 될 수 있어.
-라는 환.상.
마텔사의 최고 경영진이 전부 남자라는 것, 나이든 남자가 “바비는 소녀들의 주체성을 상징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이 대단한 기만을 정면으로 보여줍니다.
여성들의 주체성조차 남성들이 주도하는 거죠.
작중에서는 이를 “우린 가부장제를 하는 게 아니라 (가부장제를) 안 하는 척을 잘하는 거죠.”라는 말로 직접적으로 깝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비(여성)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은 현실에서의 수많은 장애물을 무시한 채 그 중 어떤 것이 되지 못한 건 니 탓이라는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사샤가 무자비하게 바비를 몰아세우면서 했던 “너 때문에 여자들은 죄책감을 느낀다.”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우린 항상 비범해야 하는데 언제나 잘못하고 있지.
바비 인형은 처음엔 소녀들이 엄마 역할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가부장제 혹은 상업주의 혹은 둘 다에 이용당하면서 오히려 여성을 억압하는 하나의 기제가 되었습니다.

<바비>를 다 보고 나서 잠시, 몇 번 정도 다시 내용을 꼼꼼하게 돌이켜보면 “바비는 뭐든지 될 수 있어”라는 말이 진실이면서 거짓이고, 이 영화의 주제이자 이 영화가 비판하는 프로파간다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영화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바비랜드와 현실 세계가 가지고 있는 궁극적인 문제는 결코 풀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주, 아주 약간, 약간 나아질 가능성이 생겼고, 등장인물들이 개인적인 구원을 받았을 뿐.
…사실 대단한 블랙코미디 영화예요.
아니, 핑크코미디라고 해야 하나?
“켄은 그냥 켄“
이 영화는 정진정명 페미니즘 영화고 주인공은 바비지만, 켄은 중요합니다.
정말로요.

바비랜드에서의 켄은 정말 하찮은 존재입니다.
켄은 바비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고 바비의 남친이라는 것이 그의 존재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글로리아가 그랬듯 많은 소녀들은 켄 인형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당당하고 멋진 바비와 그에 딸린 액세서리인 켄의 관계는 그 자체로 가부장제의 완벽한 미러링이자 그 이상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와 마찬가지로, “켄은 그냥 켄”이라는 말도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켄은 그냥 켄”이라는 말은, 바비랜드의 켄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는 잔혹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지지만) 한편으로 그 무엇이 되지 않을, 그냥 켄일 뿐인 유일한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죠.
결국 결론적으로 둘은 같은 지점으로 수렴합니다.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것도 될 필요가 없어.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는 정말 대단합니다. 하찮고 얄밉고 킹받는데 결국 미워할 수가 없어요.
사실 라이언 고슬링이 아니었다면 자칫 ‘그냥 밉상인 남캐’로 남았을 텐데, 그는 정말이지 미친 연기를 통해 영화의 레이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만약 켄이 단순한 바비들의 적, 여성을 무시하는 바보같은 남자로만 여겨졌다면 이 영화는 이만큼의 가치가 없었을 겁니다.)
바비랜드를 떠나며

작중 바비랜드는 이상적인 곳이 아닙니다.
극 여성 우월주의자들은 꿈에 그릴만한 곳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아닙니다. 그리고 작중에서도 바비랜드가 완전무결하고 현실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시선과는 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일단 바비랜드는 현실의 문제들을 회피하고 약간 기만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며, 바비랜드에서 일부 문제(현실 세계의 왜곡이나 켄들)는 완벽하게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죠.
바비랜드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매우 바비랜드스러웠습니다.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이며, 아주 대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페미니즘 운동의 목적과 결과가 바비랜드일 수는 없고, 바비랜드여서도 안됩니다. (물론 꿈을 꿀 수는 있겠죠, 그건 그들의 자유지만)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 바비가 바비랜드를 떠난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건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이 단순한 남녀 대결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는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진행과 대사가 너무 뻔해서 살짝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정말 멋진 결말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바비가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이 아린데 기분이 뭔가 좋네.”라고 말하는 장면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나아가 현실 세계가 가진 유일하고도 강력한 장점을 정확하게 꿰뚫는 장면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비는 행복이 아니라 슬픔 때문에 현실 세계를 택했습니다. 이 부분은 ‘아무리 예쁜 거짓과 환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슬픔과 고통을 고루 느끼며 성장하고 변화하는 현실이 낫다’는 뻔한 대사로 요약하긴 좀 그렇군요.
마고 로비가 눈물을 흘리는, 숨막히게 아름다운 장면으로 그냥 느끼시죠.
….어쨌든, 바비는 환상이 아닌 현실을, 바비가 아니라 인간 여성이 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많은 차별과 억압과 슬픔과 노화를 겪을 진짜 여성을.
바비는 뭐든지 될 수 있으니까요.
<바비>
똑똑하고 예쁜 핑크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