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 리뷰: 폐급 배달원인 내가 바하 주인공?!

FILM, REVIEW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 포스터

목차

레지던트 이블 주인공

줄거리

의료 택배 기사인 브라이언(오스틴 에이브럼스)은 긴급 배달 건을 맡아 라쿤 시티 종합 병원으로 향한다. 눈이 내리는 밤중에 얼어붙은 길을 달리던 그는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온 여성을 치어버린다. 다소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그녀를 차에 태우고 다시 출발하지만 곧이어 정체 모를 존재들에게 습격을 당한다.

브라이언은 간신히 상황을 헤쳐가며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의료 배달 상자를 들고 라쿤 시티로 향하는데….

밀라 요보비치 레지던트 이블
밀라 요보비치의 그 시리즈

0번째 밤, 8번째 영화

‘레지던트 이블 영화’를 검색하면 나오는 영화만 하나, 둘…8개다. (이번 영화가 8번째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밀라 요보비치가 나오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겠지만, 이걸 ‘게임 원작 영화’라고 하기에는 정말 민망할 정도다. 까놓고 말해 엄브렐러사라는 회사가 등장하는 것만 빼면 주인공도 분위기도 완전히 다른 별개의 작품이다. 중간중간 관련 있는 척 원작 캐릭터를 넣긴 했는데 최소한의 로열티란 느낌이고.

그러나 화끈한 액션으로 흥행에는 성공해서 무려 6편이나 우려먹고 끝났다.

레지던트 이블 2021 리부트
2021년 리부트판. 레온이라니? 클레어라니?

그 다음으로는 2021년에 리부트된 <레지던트 이블: 라쿤시티>가 있다. 이 영화는 오히려 원작을 철저하게 재현하는 쪽으로 가서, <바이오하자드>와 <바이오하자드2>의 내용과 등장인물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게임 장면의 디테일은 잘 살렸다는 편이지만, 그것 빼고는 별 장점이 없고 원작 캐릭터를 빌려왔음에도 팬들이 “나의 클레어/크리스/레온/에이다는 저렇지 않아!”를 외쳤다. 

자, 그러니까… 

이름만 달고 그냥 대중성을 노릴까, 원작을 따라할까.

8번째 영화이자 3번째 시작인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새로운 길을 택했다. 

레지던트 이블 크리처

게임을 영화로 만드는 법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얼핏 보면 밀라 요보비치의 앨리스 시리즈처럼 라쿤 시티, 엄브렐러, 좀비 바이러스 정도의 설정만 느슨하게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배경은 ‘그 사건이 터진 날의 라쿤 시티’로 명확하게 원작(1,2)의 시간대와 겹치지만, 작품의 세부적인 공간 배경과 등장인물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묘하게 기시감이 든다.

마치 게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세이브 포인트와 그린 허브가 대놓고 등장하는 오마쥬 요소도 있지만(이걸 찾는 게 무척 즐겁다), 이 기시감은 좀 더 근본적인 데에 있다.

레지던트 이블 게임 원작
영화의 한 장면을 따다 위쪽에 체력바랑 에임 넣고 거의 그대로 게임으로 옮겨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영화의 전개를 분해해보면 놀랍도록 게임과 흡사하다. 자꾸만 멀리 갱신되는 목표 지점, 아이템 획득과 npc가 전해주는 미션, 구간별 이벤트와 지역 보스들. 여기에 중간중간 카메라가 1인칭 시점이나 게임과 같은 오버 더 숄더 샷 구도가 되는 장면은 솜씨좋게 게임 DNA를 집어넣는다.

말하자면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원작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험 그 자체를 가져왔다. 

중간중간 탄약을 찾느라 서랍을 마구 뒤지거나, 자물쇠를 쏘려다 실패하는 장면이 그렇다. 이건 실제로 게임 안에서 ‘우리(플레이어)’가 한 일이다. 그런데 게임의 ‘주인공’인 레온이나 크리스, 클레어는 이렇게 어설픈 짓은 하지 않는다. 게임은 보통 플레이어의 실패나 죽음을 없던 일로 만들며 스토리를 진행해가기 때문이다. 즉 게임 안에서 벌어지는 일플레이어의 경험은 사실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0번째 밤>의 브라이언은 기존의 게임 주인공이 아니라 플레이어에 가깝다. (아예 “총은 게임에서밖에 안 쏴봤어요”나 “비디오 게임 만세!”라는 대사 등, 그가 ‘게임 플레이어’라는 사실은 대놓고 나온다)

즉, 이 영화는 단순히 게임 속의 캐릭터나 아이템을 일치시키는 것만 아니라, 그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로서의 경험을 통째로 오마쥬로 삼았다.

이런 영화에 대고 “레온이 등장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거나 “라쿤 시티가 게임 속에 나온 것과는 다르잖아!”라고 투정을 부리는 건 촌스럽다. 그렇게 사소하고 일차원적인 재현 대신 경험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오히려 원작,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리스펙과 탐구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잭 크레거 감독은 실제로 본인이 바하 시리즈의 팬이고 특히 4, RE4를 좋아한다고 밝혔는데 이것이 그냥 립서비스가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하게 영화가 증명해준다. 비디오 게임 만세!

레지던트 이블 폴

호러인데 웃기고 웃긴데 무서워요

영화는 시종일관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에 수위가 상당히 잔인하고 점프스케어도 자주 나오지만…..

웃긴다.

아니, 진짜로.

주인공의 형편없는 체력이나 자물쇠 개그 정도는 아주 대놓고 웃으라고 만든 개그씬이지만, 그 외에도 시도때도 없이 터진다. 호러와 유머가 저 징그러운 크리처처럼 한몸이 되어서 무서움과 웃긴 걸 떼어놓을 수가 없다. 이거 지금 이 순간에 웃어도 되나….? 싶을 때가 적지 않고, 그런 절묘한 배합이 작품을 굉장히 맛깔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먼 설경을 배경으로 좀비 한마리가 펄럭펄럭 뛰어오는 장면도 심하게 무서운데 뭔가 우스꽝스럽고, 포스터의 저 장면도 기가 막히다 못해 좀 웃기다. “으아아아앜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하지마ㅋㅋㅋㅋㅋㅠㅠㅠ” 이런 느낌이랄까.

레지던트 이블 영화 개그

호러의 분위기와 리듬에 집중하기 위해 설정은 굉장히 간소화했는데, 이 역시도 좋은 선택이었다. 게임에서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난잡해진 설정을 과감하게 잘라내고 재앙의 원인을 ‘인체를 초진화시키는 바이러스’라는 초단순한 설명으로 끝낸다.

개인적으로는 원작을 따라하지 않은 크리처 디자인도 좋았다. 아, 그래도 초반부에 직접 등장하는 모 크리처나 엔딩 신에서 누군가를 연상하게 하는 디자인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원작과는 좀 다른데, 정말 개끔찍한 디자인으로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상황을 이해시킨다. 약간 <더 씽>같은. 여기에 비틀린 유머 한스푼.

레지던트 이블 폐급

폐급들의 세계

<바이오하자드> 원작 게임의 주인공들은 매우 유능하다. 단신으로 좀비 천국에 뛰어들어 모든 것을 박살낸다. 7편 이후로는 민간인 주인공도 생겼지만 그 행적을 보면 과연 민간인이 맞나 싶을 정도다.

애초에 게임 주인공들은 설정상 아무리 평범하다고 해도 모두 비범하기 짝이 없다. 앞서 말했듯 게임 주인공들의 행동은 플레이어의 모든 실패를 배제하고 최선의 행동으로 덮어씌워지기 때문이다. 얼마나 길을 잃고 해멨든 게임 스토리에는 영향이 없으며, 보스전에서 몇 번을 죽었든 한 큐에 보내버린 것으로 친다. (로그라이크 장르는 다르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니 넘어가도록 하자.)

이러한 장르의 특성상 게임 주인공은 언제나 잘났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그렇지 않다.

그는 ‘폐급’ 그 자체다.

레지던트 이블 에이브럼스
아니 이 꼴을 보세요

본업 일처리도 영 못미덥고, 최악의 남친이며, 조심성도 없고 판단력도 어설프다. 아니 뭐, 사격 실력이 없는 건 그렇다치는데, 총알을 달달 흘리거나 괴물이 튀어나올 때까지 멍하니 보고 있는 부분에선 탄식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고 쪼잔하기까지 하다.

보통 호러 영화를 볼 때는 주인공이 멍청하게 구는 건 너무 작위적인 전개라 열받지만, 브라이언은 애초에 글러먹어서 헛짓거리를 해도 오히려 자연스럽다.(….) 게다가 그 소시민적 성격으로 인해 안될 것 같으니 포기하고 튀는 것도 개연성 있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레지던트 이블 브라이언

그런데, 중후반부로 갈수록 서서히 인식이 변화한다. ….이 어설프고 쪼잔한 찐따가, 정말로 폐급일까?

나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더하다. 엄브렐러는 같은 폐급이라고 해도, 저쪽은 핵폐기물이고 브라이언은 재활용 가능한 종이박스 정도의 차이가 있다.

브라이언은 사람은 쳤지만 뺑소니는 하지 않았다. (한문철에 보내면 보행자 과실이 90쯤 나올 것 같기도 하고) 다친 사람이 있으면 일단 도와주려고는 한다. 동료를 버리는 것은 못할 짓이라는 잠깐의 양심도 있고, 정당방위라 해도 총을 쏘고 나서 충격을 받는다.

애초에 그는 상황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어서도 의료 배달 상자를 꼭 챙긴다. 비록 그 상자가 막 바닥에 뒹굴고 그러지만.

워낙 언행이 못 미더워서 그렇지, 위급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상자부터 챙기는 걸 보면 “이걸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그의 말은 의외로 진정성이 있다.

(다만 이게 100% 넘치는 사명감 때문이라기보다는 누가 시키니까 하는 약간 수동적인 태도나 개인적인 욕심으로도 보이는데, 그런 점이 또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지점이다. 사람 모습을 한 괴물을 쏘아죽이고 갑자기 ‘난 안 그랬어,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라며 현실 도피를 하는 모습도 너무나 한심스러우면서도 안쓰럽다.)

레지던트 이블 주인공 브라이언

그러니까 종합하자면, 브라이언은 정말로 평범하다.

평범하게 못났고, 평범하게 착하다.
폐급이 사실은 ‘평범’의 다른 말인 게 아닐까?

(굳이 첨언하자면, 임신한 여친에게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하는 건 정말 하남자가 맞다. 근데 애초에 하남자가 아닌 남자가 몇이나 된다고?)

브라이언은 후반부까지도 멍청하거나 조급하게 행동한다. 아주 약간의 성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영웅적이거나 ‘주인공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캐릭터에 의미가 담기는 것이다.

게임을 플레이해봤다면,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도 한번 해볼만 하다.

만약 라쿤 시티에 간 게 레온이나 클레어가 아니라 ‘나’였다면?

게임 속에서 주인공들은 권총부터 로켓 런처까지 자유자재로 다루며 결국 크리처를 물리치고 어린 소녀를 구하고 라쿤 시티를 빠져나온다. 그건 그들이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하다면.

(생각해보니까 2편 당시의 레온도 좀 어설프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걘 난놈이니까)

…..’나’는 브라이언보다 잘 살아남고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레지던트 이블 영화

게임을 플레이하는 영화를 보는 감각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정말 매니아틱하긴 하지만, 재밌는 영화다. 피와 살점이 좀(?) 튀는 것을 감안할 수 있는 내성이 있다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드문 호러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하를 플레이하는 감각’ 자체를 별개의 매체로 전사함으로써 게임 원작 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다. 대범하고 신박하게. 게임을 직접 해본 사람만이 이 점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 원작에 대한 최고의 리스펙 아닐까.

만약 바하를 해보지 않았다면 게임 한번 해보시길.

바하를 해본 사람이라면 영화를 꼭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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