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원더(2022) 리뷰 & 결말, 엔딩 해석): 이야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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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더 원더 포스터

더 원더

  • 감독: 세바스티안 렐리오
  • 출연: 플로렌스 퓨, 톰 버크, 킬라 로드 캐시디 외
  • 장르: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이야기의 관찰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

종합평 : ★★★☆

더 원더 플로렌스 퓨

더 원더 줄거리

1862년 아일랜드, 아무것도 먹지 않는 ‘기적의 소녀’ 애나 오도웰의 소문이 널리 퍼진다.


애나의 가족들은 그녀가 독실한 신앙심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4개월째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진실을 밝히려는 위원회는 잉글랜드 간호사인 립 라이트(플로렌스 퓨)를 고용해 애나를 관찰하도록 한다.

립이 할 일은 애나의 일과를 지켜보고 위원회에 보고하는 것. 기적을 믿지 않는 그녀는 의구심을 가지고 애나를 철저하게 조사하는데…


상당히 호러 영화틱한 분위기를 풍기긴 하지만 호러는 아니다. 스산한 색감과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음악이 고풍스러운 시대 배경과 맞물려 매우 독특한 느낌.

영화는 ‘어떻게 사람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가’란 흥미 돋는 수수께끼로 시작해 신앙과 이성의 대립, 상처를 입은 지역의 배경, 개인적인 가족사, 죽어가는 아이들에 대한 사회의 태도 등 다양한 소재를 아우른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다루는 ‘이야기 자체’도 하나의 소재입니다. 

애나에게 얽힌 진실과 립의 행동 자체도 조금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 자체의 구조를 파악하는 게 가장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섬세하게 쌓은 구조에 비해 캐릭터성은 좀 얇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플로렌스 퓨와 어린 킬라 캐시디의 강렬한 연기력이 관객을 빨아들입니다.

특히 플로렌스 퓨의 연기는 압도적. 온몸에 에너지를 둘둘 휘감고 다니는 듯하고, 무뚝뚝하면서도 격렬한 감정을 품고 있는 목소리나 특유의 강인한 표정이 정말 인상적이에요. 

차가운 테이블에 앉아 앞에 놓인 음식을 별 감흥없는 표정으로 그러나 게걸스럽게 먹는 립의 모습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얌전하게 앉아있는 애나와 대비되어 흥미롭습니다.

차분한 톤으로 느릿느릿하게 전개되는 듯 하지만 아주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이 영화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 스포일러를 보기 싫다면 여기까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 전체 줄거리를 살펴보면서 계속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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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부터는 <더 원더>의 전체 줄거리와 엔딩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애나를 검진하는 립

더 원더 결말 (*스포일러 주의)

립은 애나가 몰래 음식을 먹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그녀를 철저하게 조사하지만, 음식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의심을 거두지는 않았으나 애나를 돌보면서 점차 그녀에게 애착을 가지게 되는 립.

한편 신문기자 윌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기적을 의심하고 조사하려는 립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립이 가족과의 접촉을 금지한 이후 애나는 급격히 쇠약해지기 시작하고, 립은 애나의 어머니가 아침저녁 인사로 키스를 해줄 때 음식을 입으로 먹여왔다고 추리합니다.

그러나 립의 추궁에도 애나는 사실을 인정하기 거부하는데, 립은 애나가 죽은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어머니의 강요에 의해 (천벌을 받아 죽은) 오빠의 영혼을 천국에 보내기 위해서 금식을 하면서 기도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동안은 어머니에게서 음식을 받았지만, 립이 접촉을 금지하자 정말로 굶어 죽어가는 애나.

립은 위원회에 관찰을 그만둬달라고 호소하지만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믿기 싫어하는 일부 위원의 고집과 애나 본인이 끝내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주장해 관찰은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립은 애나의 어머니에게 모른척해줄 테니 키스로 음식 공급을 계속해 달라고 간청하나 그녀는 이를 거부하고 애나를 죽게 내버려 두려고 합니다.

이를 두고볼 수 없었던 립은 결국 애나의 가족이 저녁 미사를 간 틈을 타 직접 애나를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먼저 애나에게 “애나로서는 죽고 새로운 아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라고 설득합니다. 애나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이름으로 ‘낸’을 고릅니다. 

립은 애나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와 (이제 낸이 된 애나에게) 음식을 먹이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집에 불을 질러 다 태워버린 후, 애나가 죽었다는 가짜 사망 진단서를 워원회에 제출하고 자신의 실수로 불이 났다고 증언합니다. 위원회는 결국 사건을 종결시키고 마을에서는 애나의 장례식이 진행됩니다.

한편 미카엘 수녀는 미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말을 타고 애나를 데려간 ‘천사’를 보았다고 말하면서 립의 비밀을 지켜줄 것을 암시합니다.

시간이 지나, 립과 윌은 애나(이제는 낸)를 데리고 호주로 향하는 여객선에 오릅니다. 그리고 여객선 식당에서 낸이 음식을 먹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

(그 이후의 엔딩씬의 의미는 아래에서 후술)

영화 더 원더의 한 장면

그래서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더 원더> 안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각각 다른 크기를 가진 이 이야기들이 중첩되면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죠.

가장 먼저, 이 영화는 립의 말대로 ‘몰래 음식을 훔쳐먹는 어린애의 이야기‘입니다. 

립은 애나가 4개월 동안 어떻게 음식을 안 먹고 살 수 있는지, 어떤 속임수가 있는지 밝혀내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애나에 대해서 잘 알게 되고 그녀에게 점차 애착을 가지게 되죠.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애나가 금식을 하는 이유는 가족과 관련이 있고 따라서 ‘어떤 비밀을 가진 가정의 이야기‘가 됩니다.

애나는 순수하고 강한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믿음은 그녀의 가족이 그녀에게 밀어붙인 극한의 학대(와 가스라이팅)입니다. 애나는 자신도 오빠를 사랑했고 자신의 의지로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이게 절대로 10살 안팎의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끔찍한 정황은 더욱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번엔 한발짝 멀리 떨어져서 볼까요.

과학과 신앙의 대비

애나는 기적의 아이로 칭송되고, 기적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배척당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쇠약해지는 것이 분명한데도 목숨을 살리기보다 기적을 보려는 위원회. ‘죽어가는 소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

약간 교회 비판적인 구석으로 흘러가고 확실히 이런 미개한 믿음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주제가 믿음과 과학의 뻔한 대결 같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애나를 구한 것은 과학이 한 일은 아니거든요.

립은 과학을 근거로 애나가 몰래 음식을 먹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반대로 마을 의사는 애나가 음식을 안 먹고도 살 수 있는 과학적인 가설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의사가 엄청나게 틀리긴 했는데 그도 나름 ‘과학적’인 입장이었다는 건 인정해야죠.)

위원회에서는 아묻따 기적이라고 믿는 의견과 기적이 아니라 미심쩍은 현상이라는 의견이 갈리는데, 어쨌든 그들은 애나가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관찰을 강행한다는 점에서 과학자든 신앙인이든 둘 다 똑같습니다. 

여기까지는 립이 보고 들은 이야기입니다.

립은 애나의 이야기를, 오도웰 가족의 이야기를, 그들을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관찰자라는 입장에서 벗어나 ‘소녀를 구하는 간호사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립은 과거에 전쟁터에서 군인들을 돌보는 일을 해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 것에는 익숙합니다. 또 어쩔 수 없는 상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나의 죽음은 그녀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으며,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립은 애나를 구하기로 결심하고, 이야기의 방관자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동합니다.

……자,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더 원더 키티

엔딩 장면의 의미

<더 원더>의 시작에는 영화 촬영장이 등장하고, 배우 니암(작중 키티 역)이 직접 관객의 눈을 쳐다보며 “이야기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립과 윌, 낸이 여객선을 타고 떠나는 장면에서도 똑같은 세트장으로 이어지더니 니암의 “안. 밖. 안. 밖.“이라는 대사로 끝나죠.

솔직히 왜 이렇게 했는지는 의문스럽고 정말로 마음에 안 드는 연출이지만, 어쨌든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너무 분명해서 문제

이 프롤로그와 엔딩 장면으로 인해 영화 전체의 구도가 완성됩니다.

애나의 이야기를 보는 립의 이야기를 보는 관객.

이야기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이지?

어떤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이고 거부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행동은 달라집니다. 

위원회와 애나의 가족은 립의 말을 듣지 않았지만, 립과 애나, 그리고 립과 윌은 이야기를 통해 서로 교감합니다. 

….. 아, 꼭 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에요. 립이 애나의 진실을 파헤칠 수 있었던 것은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애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믿지 않았기 때문이니까요. 

이야기의 밖에서 방관할 것인가, 안으로 뛰어들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 선택뿐입니다.

애나를 구출하는 립

그리고 관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를 본 관객-즉, 이야기를 접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애나에게 있었던 일은 오늘날에도 일어나는 것들이 아닌가? 이 영화 엔딩의 의미가 대체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이 모든 생각들이 다 밖에 있을까, 안으로 들어갈까?의 선택지입니다.

<더 원더>는 오프닝과 엔딩에서 이런 구조를 더욱 강조합니다. 영화 세트장에서 배우의 눈빛과 마주하면서 관객은 직접적으로 질문을 받죠. 안인가? 밖인가?

그 픽션(영화)은 현실과 엮이고, 이야기는 또다른 이야기를 낳습니다. 점점 더 커져서 결국 사람 모양이 되는 이야기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네, 그렇죠. 말했잖아요.

이야기가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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