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Film

앙 단팥 인생 이야기(2015) 리뷰: 도라야키 옆 녹차 한잔

일본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 포스터

앙: 단팥 인생 이야기 (あん)

  • 감독: 카와세 나오미
  • 출연: 키키 키린, 나가세 마사토시, 우치다 카라
  • 장르: 드라마
  • 개봉: 2015년 5월

‘일본 음식 영화’라는 세 단어 조합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한지?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와 말간 화면, 키키 키린의 연기가 매력적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달지 않다. 도라야끼 가게와 그 안에 들어가는 앙(단팥)을 다루고 있는데, 이 영화는 도라야끼같다기보단 보고 나면 입안에 씁쓸해져 오히려 도라야키가 땡기는… 녹차같은 영화다.

종합평 : ★★☆

앙 줄거리

작은 도라야키 가게 ‘도라하루’의 사장인 센타로는 어느날 가게에서 일하고 싶다고 찾아온 만 76세의 할머니 도쿠에(키키 키린)를 만난다.
처음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 거절한 센타로지만, 도쿠에가 가져온 단팥의 맛을 보고 생각이 바뀌어 그녀를 고용하게 된다.

도쿠에가 정성껏 만드는 단팥으로 인해 도라야키의 맛은 놀랍게 변하고, 도라하루는 손님들로 붐비게 된다. 하지만 도쿠에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었는데…..

일본, 음식, 영화

‘일본, 음식, 영화’라는 키워드는 어떤 전형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 일단 대표격으로 <카모메 키친>이 있고, <남극의 셰프>나 <리틀 포레스트>가 그 뒤를 잇는다.

아기자기한 주제와 먹음직스러운 음식의 때깔, 부담스럽지 않은 소소한 전개로 아무때나 틀어놓고 보기 편한, 그런 영화들.

솔직히 이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초반부는 비슷하게 흘러간다.

도라야키를 굽는 움짤

음식을 통해 인물들이 교감을 나누고, 맛과 진심이 인정받는 부분은 전형적이고 기분이 좋다. 특히 도쿠에가 팥알에게 말을 건네거나, 앙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정성이라는 정신론(?)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편안하다.

하지만 그 이후 <앙>은 앞선 영화들과 다른 길로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음식 영화’라고 보기엔 음식도 그리 자주 등장하지 않고, 먹음직스러운 장면도 초반부의 앙 만들기 정도. 사실 배경이 굳이 도라야키 가게일 이유도 없다. 도쿠에의 앙이 매개이기는 하지만, 주제에서 중요한 것은 도라야키(더 정확하게는 앙)를 만들고 파는 과정이지 그걸 먹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 영화…. 한마디로 하면, 어둡다.

빛과 그림자

<앙>에는 말간 햇빛이 가득하다. 오프닝부터 하얀 벚꽃잎이 가득한 화면으로 시작해, 대부분의 장면이 자연광으로 빛난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둡다. 뭐라고 할까… 멘탈적으로?

도라야키 가게 주인 센타로

사장인 센타로는 좀처럼 웃지 않는다. 딱히 불성실한 건 아닌데 일을 억지로 한다는 인상도 있고, 도라야키 가게를 하면서도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게에서 일할 때를 제외한 센타로의 사적인 장면들은 대부분 (비유적으로도 말 그대로도) 매우 어두운데, 불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그는 혼자 담배를 뻑뻑 피우고 술을 마신다.

단골 여중생인 와카나도 차분하고 과묵한 성격이고, 복잡한 사정을 품고 있다.

이 명백하게 그늘진 느낌이 앞서 언급했던 ‘음식 영화들’과는 조금 궤를 달리하는 부분.

키키 키린이 연기한 도쿠에

그런 와중에 도쿠에의 등장은 센타로와 도라하루에 변화의 계기가 된다.

도쿠에는 거동은 느릿하지만 특유의 말투와 몸짓은 아기자기하면서도 활기차다. 어떤 노린 듯한 ‘큐트함’과는 다른 사랑스러움이 있어, 도쿠에를 보다보면 별 것도 없이 따라서 헤헤 웃게 될 정도.

장사가 잘 되고, 손님들이 정성을 알아줄 뿐만 아니라 센타로도 의욕을 보이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도쿠에가 정말로 ‘빛’ 그 자체로 보인다.

한센병 환자는 밝은 날을 꿈꾸는가

도쿠에는 누구보다도 어두운 삶을 강요당한 사람이다.

그녀는 한센병(나병) 환자였고, 평생을 격리 시설에서 보냈다. 외부로 나가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고, 수십년 동안 과자 만드는 일을 했지만 직접 손님을 맞거나 가게에서 일을 하지는 못했다.

따뜻한 햇빛이 잘 들어오는 도라하루 안은 도쿠에에게 있어 ‘좋은 곳’ ‘감사할 곳’ ‘삶의 의미를 찾는 곳’으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벚꽃 움짤

도쿠에는 늘 햇빛에 감탄하고, 벚꽃과 새와 달을 한껏 느끼며 즐긴다.

팥에게 말을 걸며 팥의 여정을 상상하는 것은 ‘밝은 햇빛’에 대한 도쿠에씨의 선망이고, 어두운 밤에 빛나는 달이 마치 “여기 있으니 나를 봐줘”라고 말하는 듯, 카나리아가 우는 소리가 “나를 새장에서 놓아줘”라는 듯했다는 비유는 도쿠에의 심리를 쉽고 명확하게 보여준다.

평범한 듯한 일상 풍경의 모든 것이 그녀가 언제나 바라왔던 것, ‘자유’니까.

그러나 그녀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도쿠에를 찾아가는 센타로와 와카나

현재 한센병은 완치도 가능하고 유전되지도 않으며, 감염 가능성도 낮다. 예전에 환자들이 정말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했던 것은 의료 기술과 교육 수준이 미비했던 탓이라고 실드라도 가능하지만, 지금도 사회적인 인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도쿠에씨가 한센병 환자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도라하루의 손님은 뚝 끊긴다. 도쿠에씨가 이미 완치되었다거나 위험하지 않는 병이라는 사실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소문은 무서우니까.

여중생들이 하하호호 웃고 떠들고, 인심 좋아 보이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풍경이 삭막할 정도로 조용한 빈 공간으로 변하는 것은 다소 충격적일 정도.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셋이 으쌰으쌰 의기투합해서 가게를 홍보한다든가, 신메뉴를 개발해서 다시 도라하루가 잘나가게 된다든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신메뉴 떡밥은 있었지만)

도쿠에는 도라하루에 일하고 싶다고 찾아오고, 맛있는 단팥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사회적인 시선을 상대로 하는 일에서만큼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도쿠에가 조용히 사라져서 센타로에게 기운을 내라고 편지를 보내는 장면은 ‘현실로의 귀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매우 찝찝하면서도 슬프다. 우리 모두 도쿠에가 그리 수동적이거나 약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녀가 더 이상의 행동을 취하지 않고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은, 그녀가 그동안 얼마나 현실에 부딪히고 실패해왔는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

잠시 꿈과 같은 나날을 보낸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다고, 도쿠에는 말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앙 단팥 인생 이야기의 도쿠에

키키 키린이 아니었다면

영화의 엔딩에 남는 여운은 꽤 진하고 묵직하지만, 사실 구성상으로는 적잖이 얄팍한 면이 있다.

초반에는 다 보여주지 않고 인물들의 수수께끼와 은유를 착착 쌓아가는 것이 좋았는데, 중반 이후부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약 85% 이상을 도쿠에씨가 직접 읊어준다.

물론 키키 키린이 연기한 도쿠에는 존경스럽고 사랑스럽고, 그 입을 빌린 메시지는 무엇이든 굉장히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영화가 아름다운 주제의 전달을 그저 한 명의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그것을 많은 훌륭한 배우가 그냥 읊어주기를 바라는 건 좀 안이한 구성이 아니었나 싶다.

와카나나 센타로의 캐릭터 발전 역시 좀 아쉽고, 스타일부터 대사까지 정말 평면적이기 짝이 없는 빌런 주인 아줌마는 너무 다듬어지지 않은 기능적인 인물이라 영화에서 심하게 튄다.

도쿠에가 정성껏 단팥을 만들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 주변 사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관객이 얻을 수 있는 마음의 변화는 이미 충분했다. 그런데 거기에 갑자기 손편지로 주제 의식 요약본을 들이밀 필요까진 없잖아..

특히 도쿠에가 마지막으로 남긴 테이프를 트는 장면은 굉장히 감동적이면서 엄청나게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분.

좋은 인물 구성과 주제 의식이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메시지로 발전하면서 미묘하게 촌스러운 감성팔이로 변질되어 버렸다. 생략의 미학은 생략되면 안되는, 단팥의 소금같은 것인데.

종합평: ★★

영화의 끝부분에서, 객관적으로만 보면 좋은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봐도 된다.

센타로의 빚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진로를 고민하던 와카나도 뭔가를 해결한 것 같진 않다.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인식은 1도 변하지 않았고, 더 좋아질 것 같은 느낌조차 없다. 하다못해 잠깐 언급되었던 새로운 도라야키 신메뉴마저 탄생하지 않았다. (마비에겐 해피엔딩…이었을까?)

앙 단팥 인생 이야기의 엔딩

…..하지만 “창문이 막혀있는 건 싫어”라고 중얼거리던 도쿠에의 혼잣말은 결국 야외의 노점에서 일을 하게 된 센타로의 모습과 이어진다.

더 밝은 곳,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곳.

비록 그를 얽어맨 자신의 과오와 막대한 빚은 사라지지 않았지만(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조금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기를 결정했다. 이는 ‘갇혀있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밝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쿠에처럼.

그래서 이 엔딩은 슬프지 않다. 그렇게 달지는 않고 조금 씁쓸하기는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도라야키 맛이 아니고 도라야끼와 함께 먹는 뜨겁고 쓴 커피 내지는 진한 녹차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도라야키를 먹으면 좀 쌉싸름한 게 먹고 싶어지는데, <앙>을 보고 나면 도라야키가 먹고 싶어지니, 이 영화는 도라야끼맛이라기보단 정말로 녹차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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