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도시2 리뷰: 뒤늦게 정주행중인 범죄도시 시리즈, 이번엔 2편. 2편은 그 자체로도 꽤 재미있긴 하지만, 시리즈의 진로를 확정지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목차

범죄도시2 줄거리
마석도와 전일만 반장은 외국으로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는 임무를 받아 베트남에 도착한다.
스스로 한국 영사관에 찾아온 용의자는 강해상(손석구)이라는 인물과 함께 납치 사건을 벌였다가 위험을 느껴 한국으로 송환되기 위해 자수한다. 마석도는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서 수사를 벌이며 한국인 연쇄 납치사건의 범인인 강해상을 쫓는다.
한편 강해상이 납치했던 피해자의 아버지인 대부업체 회장 최충배는 청부업자를 고용해 그를 공격하고, 강해상은 복수 겸 돈을 받아내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가는데…

동물의 왕국
1편의 대결구도는 조직 대 조직이고 (경찰 포함) 가리봉동을 둘러싼 지배권의 다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2편은 (경찰 빼고) 상당히 개인전적인 성향을 띄며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고 죽이는 짐승들만 모여있습니다. 이유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돈입니다.
1편과는 대조적으로 낮 배경이 많은 것도 특징.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누런 들판,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사람이 토막나는 장면은 이번 이야기와 강해상의 – 일종의 야성을 강조합니다.
강해상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이야기 전개에 큰 동력과 긴장감을 제공하며, 영화는 그의 뒤를 집요하게 쫓아가는 집중력, 형사들의 몸빵과 협력자의 도움을 힘있게 그려냅니다.
또 올드 막내가 뉴막내를 구해주는 장면이나 장이수의 캐릭터성이 발전하는 모습은 후속작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십분 발휘합니다. 전편 관객들은 이 장면들은 1편과 연결시켜 더욱 몰입하게 되죠.

특히 장이수는, 대표적인 개그 캐릭터이긴 하지만 개그만 치는 게 아니라 작중 감정을 고조시키는 중요한 감초 역할을 톡톡히 수행합니다. 상당히 입체적인 면도 돋보이는데, 그는 마석도의 강압에 못이겨 작전에 참여했지만 나름 진지하게 역할을 다하며 사모님을 보호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돈가방에서 시선을 떼지못하고, 결국 가방을 들고 달아나죠. 그러나 강해상 앞에선 뭘 하지도 못하고 아무리 뛰어봤자 마석도의 손바닥 안이고…
그가 세보이려고 장첸을 흉내내거나 술 마시면서 훌쩍이는 모습은 찐 강자들 사이에선 아무것도 못하는 피래미의 비애가 진하게 드러나 웃기면서도 약간 안쓰럽고, 복잡한 기분이 들게 하죠. 그런 점이 장이수를 이 시리즈에서 더욱 애착이 가는 특별한 캐릭터로 만듭니다.
(나중 이야기지만 3편에서는 비슷한 포지션의 개그 캐릭터가 그냥 개그로만 소비되는데, 상당히 아쉬운 부분)

강해상: 맹수 주의
강해상은 통제 불가능합니다.
자기 자신조차도.
장첸도 스스로 파멸을 자초한 면이 있지만, 강해상은 아예 자기 자신이 컨트롤이 안되는 느낌. 사실 작전을 짜는 걸 보면 얘도 상당히 지능적인데, 결국 충동을 못 이겨서 한번 사람 죽이고 하루 먹고사는 레벨의 단기적인 행동 패턴을 보여줍니다. 특히 돈가방을 먹튀당하자 화풀이로 대낮 큰길 한복판에서 의경을 둘이나 찌르는 건, 일반적으로 이성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불가능한 미친 짓…
하지만 강해상은 그 시스템이 고장나 있습니다. 가책이나 공감이라곤 전혀 느끼지 않는 망가진 감정 체계와 완벽하리만큼 이기적인 사고 회로.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나 충동적인 성격 모두 타고난 사이코패스 기질의 증상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머리가 잘 굴러가는데도, 납치 피해자들의 유품을 대충 굴러다니게 둔다든가 상하 관계도 아닌데 파트너를 막 대해서 배신당하는 등 왠지 위태롭고 아슬아슬하죠. 하지만 그런 점이 약점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의 위험성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사실 손석구는 개인적으로 엄청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확실히 <범죄도시2>에서는 정말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이건, 그냥….
아니 무슨 맹수 새끼가 두발로 걸어다니네..
통제할 수 없는 짐승이 사람 껍질을 쓰고 돌아다니는 듯한 원초적인 아우라가 뿜어져 나옵니다. 조폭 두목과 다를 바 없는 대부업체 회장이며 대낮에 칼부림을 하는 장씨 형제와 킬러들도 한가득 나오지만 강해상은 그들과도 전혀 다른 존재.
빌런에게 서사나 심리 묘사를 주지 않는 시리즈의 특성상, 빌런의 카리스마는 배우의 영역인데 손석구는 이걸 완벽하게 살려냈습니다. 눈빛, 가벼운 말투, 날렵한 움직임 등등 그 모든 존재감으로.
액션에서도 그런 섬뜩함을 더욱 증폭시키는데, 강해상이 매복하고 있던 청부업자를 화장실로 끌어들여서 도륙하는 장면은 대놓고 맹수에 잡아먹히는 듯한 연출이고, 마석도에게 달려드는 움직임도 거의 대형 고양잇과 짐승의 그것에 가깝습니다. (마석도 역시 강해상을 다룰 때 짐승을 제압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고.)

시리즈에서의 의미: 갈림길에서
<범죄도시 2>는 시리즈의 갈림길 위에 서 있습니다. 범죄물다운 현실적이고 강렬한 분위기를 계속 살릴 것인가, 전편에서 호평받았던 가벼운 개그와 대중성을 좀 더 확장시킬 것인가.
2편부터는 관람 등급도 15세로 내려갔는데, 보기 불편하거나 민감한 부분들은 점점 빠지고 개그 테이스트가 강해졌습니다. 1편에선 가끔 피식 웃기긴 해도 조폭 못지 않게 흉흉했던 마석도가 이제는 힘만 셀뿐이지 웃기고 친근합니다.
하지만 장첸과 강해상으로 이어지는, 빌런들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시리즈의 핵심으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래서 경찰 쪽을 다룰 때와 빌런 측을 다룰 때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영화 내내 말장난과 쨉쨉이같은 개그가 난무하는데 강해상이 등장할 때는 전혀 웃기지 않죠.
영화가 갈팡질팡하다보니 결합이 그리 정교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초반부 개그톤은 전편에 비해 붕뜬 것처럼 보이고, 또 무난하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치고는 너무 날카로운 느낌이 훅 치고 들어옵니다. 예를 들어 마석도가 “형은 다 알고 있다”라며 용의자를 어르고 달래는 모습과 라꾸 일당을 찾아 총을 들고 살벌하게 죽여버린다는 장면은 상당한 갭이 있습니다.
이후의 행보를 보면, (다들 아시다시피) 범죄도시 시리즈는 결국 더 대중적으로 가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3편부터는 경찰과 범죄자의 쫄깃한 대결 자체보다는 마동석이 졸라짱쎈 주먹으로 나쁜 놈들을 쳐부수고 웃기는데 초점을 맞춘 시원시원한 액션물이 되었죠.

그러나 <범죄도시2>가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의 프로토타입으로서만 기능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다음부터는 사라져버린, 사건을 다루는 끈기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 주변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가 담긴 (현재까지는) 마지막 작품이죠.
손석구의 연기가 너무나도 흉흉한 나머지 또 보고 싶진 않지만 이 적당한 짜임새와 사건을 전개해나가는 템포는 좀 그리워질 것 같네요.
<범죄도시2>
맹수 생포 대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