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도시3 리뷰:
- 장르: 액션, 범죄, 스릴러, 코미디
- 감독: 이상용
- 출연: 마동석, 이준혁, 아오키 무네타카
- 개봉: 2023년 5월 31일
목차

도장찍기 시스템
어떤 콘텐츠를 만들 때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일정 패턴을 반복하는 건 편리한 선택입니다. 일단 만들기도 쉽고,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전개와 재미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범죄도시> 시리즈는 시작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메인 빌런의 잔인한 범죄를 보여준 이후 영화 로고가 떠오릅니다. 시그니처 오프닝. 그리고 그 직후엔 항상 주인공 마석도가 길거리의 싸움에 휘말리고 이를 간단하게 제압하는 장면을 보여주죠.
처음 보는 관객도 이 장면들은 주인공과 빌런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직관적으로 알려주고, 영화의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걸 시리즈마다 반복하면 관객들이 이제 오프닝에서 벌써 편안함을 느낍니다. ‘나 범죄도시 보러왔구나’라는 걸 실감하면서 영화관(혹은 집) 소파에 등을 기대고 몸을 푹 파묻죠.
하지만 뭐든 너무 편해지면 지루해지기 마련. 영화 전체가 A패턴+B패턴+C패턴+D패턴으로 이루어져 다 비슷비슷한 전개가 되면 관객의 집중도는 크게 떨어집니다.
<범죄도시 3>이 딱 이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마석도, 똑같은 방식의 말장난, 이름은 다르지만 행동은 비슷한 피래미 빌런, 최종 보스의 발악... 다 아는 얘기인데다 나름 수사 과정이나 캐릭터 묘사에 힘을 들였던 전편에 비해 모든 것이 훨씬 가벼워져서 집중력이 붙어있을 구석이 없습니다.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뻔히 보이는 것들을 ”하이퍼다.” “찾았다.”라고 말해주는 바보같은 대사들도 덤.

쏟아부은 개그, 날아가는 액션
1편에서는 아주 가끔 피식하게 만드는 양념에 그쳤던 개그는 2편을 거쳐 3편에 이르자 영화 전체를 지배합니다. 말하자면 1편의 개그는 설탕 대신 배를 갈아넣어 은은한 단맛을 낸 불고기같은 느낌이었는데, 2편부터는 설탕을 붓기 시작하더니 3편에선 쏟았습니다.
(참고로 4편은 반성했는지 설탕량을 약간 줄이긴 함)
전개가 촘촘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그로 상황의 무게나 디테일을 뭉개지 않고는 진행이 안됩니다. ‘정보를 가진 피래미가 마석도에게 쳐맞고 마지못해 협력한다’는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데, 이 와중에도 자꾸만 실없는 개그를 치느라 샛길로 샙니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개그가 상당히 직관적이고 생각없이 봐도 웃기긴 하지만 이게 하도 이절삼절뇌절을 하다 보니 이제 단물이 빠져서 덜 웃기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마석도와의 결전에서 증거물 봉투나 전편 대사(5:5)를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장면 등은 명백하게 상대가 아니라 관객을 향해 웃으라고 하는 말이라서 오히려 작중 몰입도가 확 떨어지기도 합니다.
액션 측면에서 보면, 더욱 화려해졌지만 역시 무게감은 줄었습니다. 3편의 마석도의 액션은 1,2편과 명백하게 다릅니다. 이전에는 힘으로 우악스럽게 조폭들을 제압하는 실전형이었는데, 이제는 휙휙휙 스텝으로 피해가면서 펀치를 꽂는 복싱 동작을 화려하게 피로합니다. (이를 위해 작중에서도 “복싱하다 그만뒀다”고 언급했죠.)
한편 마석도의 액션은 파워업했는데 빌런들의 처절한 반항은 그대로라 빌런의 가오(?)가 조금 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주성철과 리키는 캐릭터적으로도 세지 않은데 액션까지 상대적으로 싱겁게 느껴집니다.
일본도를 활용한 리키의 액션은 인상적이긴 하지만, 킬 빌도 존 윅도 아닌데 대한민국에서 일본도 들고 날뛰는 광경에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듭니다. 게다가 일본도를 어깨에 걸치고 “여어-“하는 야쿠자가 멋있게 보이기는 정말, 정말 정—말 쉽지 않습니다.
빌런: 이것은 까리인가 허세인가
3편의 주요 빌런은 주성철과 리키 둘입니다. 둘이나 되는데 포스가 2배가 되기는커녕 절반이 되었다는 게 아이러니. 3편에서는 약간 의도적으로 빌런 둘을 1,2편과 확 다르게 만들었는데, ‘통제할 수 없는 맹수같은 살인자’인 장첸, 강해상과는 달리 주성철과 리키는 둘 다 조직에 속해있고 부하들과 함께 움직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시리즈 중에 이 둘이 객관적으로 위험도가 가장 높아요. 주성철은 경찰이면서 아예 부하들을 이끌고 마약 밀수와 살인을 저지르는 부패 카르텔이고, 리키는 일본 거대 야쿠자 조직의 살수입니다. 범죄의 규모를 따지면 최고 수준.
하지만 주성철이나 리키가 가장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일단 영화 전체가 너무 안이한 전개로 이루어져 있어서 수사 과정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지고, 빌런들도 각자 떠맡은 일을 처리하느라 산만해서 카리스마를 보여줄만한 장면이 몇 없어요.
주성철이 부패 경찰이라는 것은 이미 관객들에게 뻔히 알려진 사실인데, 주성철이 이걸 잘 숨긴 것도 아니고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추리 과정도 매우 빈약해서 서스펜스가 없습니다. 또 연출 때문에 그의 설정만큼 지능적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놓고 다 때려부수거나 누가봐도 팀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어놓은 건 포스를 크게 깎아먹는 부분.
다른 편과 비교해보면 강해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친놈이어서 막 나갔고, 경찰서에 들어가 살인까지 한 백창기는 그러고도 안 잡힐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인데…
물론 백창기가 cctv에 찍히면서 얼굴도 제대로 가리지 않았다는 건 4편의 취약한 개연성 문제지만, 본인이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고 또 그런 짓을 하고도 공항 보안 검색까지 멀쩡히 통과했으니 작중에서 ‘실책’ ‘실수’로 다뤄지는 느낌은 아닙니다.
이에 비해 주성철은 작중에서 성공적으로 뭘하는 장면보다는 뒷수습을 하거나 계획이 틀어져서 난장을 피우는 게 대부분이죠.
수년 동안 헤쳐먹었는데 고작 약쟁이 하나 때문에 일이 틀어져서 화가 났겠지만, 그 ‘이전의 완벽함’이 잘 드러나지 않으니 그의 폭주가 너무 가벼워보이고, 그를 몰아넣는 과정이 싱겁습니다. 또 정예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모습이 포인트인데 리더십도 잘 드러나지 않는 건 덤.
리키 역시 마찬가지로, 야쿠자 노인네의 우리 애 자랑과 다른 똘마니들의 “헉! 리키다!”라는 반응 외에는 그의 입지를 튼튼하게 해줄만한 행동이나 액션이 별로 없습니다. 일본도를 사용하는 것은 유니크한 포인트지만 하지만, 리키 본인의 포스<<<일본도라 “야 걔 있잖아 범도3에 일본도 들고 나오는” 이라고 말하면 다들 알긴 하는데 정작 리키가 뭘했는지는 잘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비주얼적인 면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성철과 리키 둘 다 다소 화려한 양복을 차려입고 있는데, 양복을 입고 피를 튀기는 건 두가지 결과로 이어집니다.
잘하면 까리한 거고.
못하면 허세만 쩌는 거고.
이번엔……….흠. 뭐 허세뿐이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묵직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건 아닙니다. 이준혁은 잘생겼지만 무게감이 살짝 부족하고, 일본도를 어깨에 걸치고 히죽거리는 리키는 멋있다거나 무섭다기보단 만화 속에서나 볼법한 인상.
그리고 둘 다 눈을 희번덕 뜨고 막 웃는다고 해서 다 무서운 건 아닙니다. 연기력이 없는 배우들이 아닌데 화를 내거나 협박할 때의 연기가 너무 판에 박힌 패턴이라 미묘….

서러운 셋째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범죄도시 시리즈는 1>>2>4>>>3. 근데 심심해서 한번 더 본다면 4편.
<범죄도시3>은 2편의 갈림길에서 더욱 대중적이고 가벼운 방향을 선택한 결과물입니다. 전작들에서 호평받은 구석만 쏙쏙 빼서 패턴으로 만들고, 개그나 액션은 더욱 가볍고 눈에 띄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선택이 범죄수사물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긴장감이나 현실성을 떨어뜨렸고, 익숙한 오프닝부터 유치한 엔딩까지,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범죄도시는 캐릭터빨을 크게 받는 영화인데 이번 작의 빌런 둘이 매력적이고 치명적인 것도 아니라 더욱 미묘합니다. 다른 빌런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읊으라고 하면 꽤 줄줄이 나오는데 (조직, 일본도, 양복 등등) 그만큼 임팩트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
……….뭐, 쓴소리를 이렇게 잔뜩 하긴 했지만, 비오는날 빈백에 앉아서 포카칩 먹으면서 TV로 보기에는 적당하다 못해 완벽한 영화입니다. 그러라고 있는 시리즈지.
<범죄도시3>
개그와 세련됨은 늘 과유불급의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