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2021)
- 감독: 류승완
- 출연: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 장르: 액션, 스릴러
- 개봉: 2021년 7월 28일
소말리아에 고립되었던 남북한 대사들이 협력해 귀국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굳이 실화였다는 점을 말하지 않아도 모든 짜임새와 완성도가 매우 탄탄하다. 클리셰도, 신파도 없이 이렇게 멋진 액션 영화가 탄생할 수 있다니.
★★★★

목차

줄거리
1991년, 대한민국이 UN 가입을 위해 대 아프리카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시기.
주 소말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의 한신성(김윤석) 대사와 강대진(조인성) 참사관은 소말리아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북한의 공작으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노력한다.
그러나 결국 반정부 시위대에 의해 내전이 촉발되고, 남한 대사관은 통신마저 끊기고 소말리아에 고립된다. 그들은 무장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대사관에 머문채 구조를 기다린다.
한편 반군의 연줄을 통해 소말리아를 탈출하려던 북한 대사관은 반군 정보원에게 배신을 당하고, 북한 대사 임용수(허준호)와 참사관 태준기(구교환)는 사람들을 이끌고 거리로 나온다.
그러나 그들은 피신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남한 대사관을 찾고, 한 대사는 고민에 빠지는데…..

세련된 사람이 만드는 영화
언제나 깔끔한 영화를 완성해내는 류승완 감독답게, 이번에도 흠잡을 데 없는 솜씨를 발휘한다.
생각보다 액션 영화라기보단 <아르고>같은 드라마/스릴러에 가까워서 좀 예상 밖이긴 했지만. 격투 신도 너무 쫄깃하고 좋았는데 그후로 없어서 흑흑… 이럴 거면 맛이나 보여주지 말든가… 그래도 숨가쁘게 달려가는 클라이맥스의 카 체이싱 신이 볼거리를 책임져주며, 액션이 적더라도 영화가 워낙 능숙해서 한번도 긴장감과 몰입도가 낮아지는 구간이 없다.
본격적인 사건 전의 초반 빌드업도 재밌고, 주요 캐릭터들도 잘 짜여 있다. 남한의 한신성-북한의 임용수 대사, 남한의 강대진-태준기 참사관은 비슷한 듯 다른 듯 밸런스가 무척 좋다.
두 대사들은 현실적이고 신중하며 책임감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고. 참사관들은 의심이 많고 서로를 결코 믿지 않는데, 하는 짓은 거의 대칭이지만 강대진은 거침 없으면서도 다소 영악한 면이 있고 태준기는 그냥 앞뒤 생각 안하고 노빠꾸로 들이박는 성격이라 역시 좋은 대비를 이룬다.
이렇게 균형감이 있으니 이야기 전개는 (혼란스러운 작중 상황과는 별개로) 매우 스무스하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는 덤. 이해가 되지 않는다거나 무리수인 행동이 없고, 확실하게 전개된다. 여기에 ‘노린 듯한’ 게 아니고 예상치 못한 순간 툭툭 내뱉는 은근한 개그까지 즐겁다. 역시 사람이 세련되어야 농담도 세련된 법이야.

깻잎을 떼어주는 사이
소말리아의 내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우리나라의 통일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화는 혼란스러운 시대 배경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모가디슈>가 특이한 점은, 굉장히 정치적인 배경과 플롯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질척거리는 한민족 감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밥상 신을 주목해 볼 만하다.
밥그릇에 선뜻 손을 대지 못하는 북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한신성 대사가 밥그릇을 바꿔서 먼저 퍼먹는 모습, 젓가락이 자꾸 같은 반찬에 겹치거나 깻잎을 떼어주는 장면은 아무런 대사 없이도 남북한 사이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분명하게 그리고 있다.
깻잎조림은 혼자 떼어먹기 어렵고, 누군가가 깻잎을 떼려고 할 때 젓가락으로 눌러주는 것이 암묵적인 배려라는 것은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다. 국그릇을 앞에 가져다 주거나 깻잎을 떼어주는사소한 장면이 여기 모여 앉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문화적 뿌리를 지닌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인식시킨다.

그러나 영화는 같은 민족이니까 돕고 살아야 한다는 식의 말은 전혀 꺼내지 않는다. 임 대사가 “아이들을 구해달라”고 청하고, 한 대사가 “연설을 하지 말고 대화를 합시다”라고 한 말은 협력과 교류가 정치가 아닌 것에 바탕을 두겠다는 선언.
강대진은 태준기를 때리려다가 몇 번 참는다. 다같이 있을 땐 외교 문제 될 까봐 참았다 해도 한바탕 구르고 태준기를 제압한 다음에도 한대 치려다 마는데, 이건 딱히 그의 동포애가 높아서나 둘 사이에 우정이고 나발이고가 있어서가 아니다. 이미 도착했을 때부터 피투성이에 한쪽 눈을 거의 뜨지도 못하는 만신창이인데 이걸 더 때려서 뭐하나. 아오 씨… 더 때릴 데도 없어서 내가 참는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건 인간이 인간에게 가지는 어떤 기본적인… 도리랄까. 사람이 눈 앞에서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어떡해. 일단은 들여보낼 수 밖에. 애들이 굶었다는데, 밥은 먹여야지. 저새끼 그냥 확… 죽일 순 없잖아.
절제된 연출이 오히려 관객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감정을 이끌어낸다.

신파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
이 영화가 입소문을 탄 이유는 “재미가 있는데 신파는 없다” 였다. 한국 대형 상업 영화에서 무려 남한과 북한이 힘을 합치는데 신파가 없다는 점과, 이 점을 대중들이 환영했다는 사실은 둘 다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많은 영화들이 써먹었던, 동포애와 사연팔이에 의지한 감동의 유효기간이 슬슬 끝나간다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거리는 10년, 20년, 30년 전보다 점점 다 멀어져 왔다. 솔직히 요즘 세대에게는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말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 이제 민족주의는 촌스럽고 상봉할 가족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다.
‘관념’이 아니라 ‘현실’로서.
빨갱이나 헤어진 가족, 동포라는 관념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사람, 우리와 비슷하게 생기고 말이 대충 통하고 같은 반찬을 먹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과 나름대로 협력하고 생사를 함께 했음에도 제대로 된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서로를 돌아보지도 못하는 모습에 분단이라는 현실을 뼈아프게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관객들의 마음에 굉장히 효과적으로 심어놓는다.
그러니까 신파는 필요 없다. 이제는.

피는 물보다 진한가
다만 이 깔끔한 영화에도 고르지 못한 부분은 있다. 영화에서 신파나 지나친 애국주의의 느낌은 나지 않지만 그건 감독 특유의 건조한 스타일 덕분이고, 내용을 따져보면 꽤나 편향적이긴 하다. 특히 남한과 북한 사이는 상당히 세련되고 깔끔하게 묘사한 반면 소말리아는 극단적인 배경만을 위해 존재한다.
못미더운 북한 사람들도 알고 보면 다들 착한데, 작중 등장하는 소말리아인들 중 어린 아이부터 대통령까지 포함해서 대가리에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물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말리아 사람들은 야만적이고, 부패했고, 멍청하고, 배신자이며, 심지어 총도 더럽게 못 쏜다. 처음에는 비참한 소말리아의 상황과 전쟁의 비인간성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지만 편향적 묘사가 계속 쌓이다보니 나중에 가면 그냥 당장 빠져나가야 할 지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또 중심 인물, 그러니까 주연 4명을 제외하고는 다 이름없는 짐짝이고 특히 여성들이 대체로 짜증난다. 깔끔함을 위해선 쓸모없는 부분을 쳐내야 하지만, 그 쳐내는 손길이 너무 거침없어서 괜찮게 피어날 수도 있는 작은 새싹까지 싹 다 베어버린 느낌.

종합평: ★★★★
상업 액션 영화에서 관습적인 신파나 클리셰 없이 탄탄하게 완성된 작품은 정말 드물다. 그러면서도 독특한 매력과 깔끔한 뒷맛을 남기는 작품은 더더욱.
<모가디슈>는 복잡한 시대를 배경으로 ‘생존과 탈출’이라는 간결하고도 강력한 힘으로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쓸모없는 장면도, 과한 대사도, 빈약한 스토리를 가리려는 헛한 액션도 없이. 남북한이 만났는데 서로 고향 얘기를 줄줄이 털어놓거나 “우린 같은 동포 아닙니까”라는 대사도 없다. 라이벌끼리 서로 치고박고 하더니 ‘훗 너도 제법이다’ 라며 서로를 인정하고 우정을 쌓는 장면도 없다.
오히려 그러지 못했던 것이 강렬한 아쉬움으로 남아 여운을 길게 끈다. 어쩌면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고 같이 술 한잔 했을 수도 있는데. 이런 시대가 아니었다면. 이런 사이가 아니었다면.
민족, 통일, 한가족 뭐 이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생각하게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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