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2026) 리뷰 :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살아가는 법

FILM, REVIEW

나홍진 호프 포스터

목차

  1. 줄거리
  2. 호? 불호?
  3. 뻔뻔함에 대처하는 자세
  4. 표면의 세계
  5. 표면의 세계 II
  6. 갈고 닦은 악취미
  7. 엔딩

줄거리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호포 출장소의 소장 범석(황정민)은 친척인 성기(조인성)의 연락을 받고 습격을 받아 죽은 소를 조사한다. 사냥꾼들은 호랑이라고 생각하지만, 곧 정체불명의 괴물이 마을을 덮치는데…

호프 황정민 조인성
영화 재밌게 봤는데 왜 그러셨어요…

호? 불호?

놀랍게도 극호.

극심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라는 것은 사실이고, 이 영화의 불호평은 모두 어떤 상식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재미있었지만, 아무에게도 추천하고 싶지 않다. 단단한 상식을 갖춘 누군가에게 추천해서 그 뒷감당과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

이 영화는 재난이어야 한다. 어떤 기대나 예상을 가지고 감상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백주대낮에 들리는 총성, 길 한가운데 널브러진 시체를 마주한 것처럼 대해야 한다.

호프 황정민 스틸

뻔뻔함에 대처하는 자세

일단 <호프>는 “이런 영화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규칙이나 대략적인 예상이 통하지 않는다. 크리처물의 패턴, 재난물의 상식, 한국 영화가 쌓아왔던 경험적 기법들을 모두 가볍게 무시한다.

시골 마을에 괴물이 나타나 쑥대밭이 된다는 것은 나름 평범한(?) 시작이지만, 갑자기 매드맥스마냥 총을 가득 실은 트럭이 나타나 할아버지들이 기관단총을 쏴재끼거나 숲 속에서 금속성의 구체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장면에서 느끼는 황당함은 앞으로도 인생에서 별로 겪어볼 일이 없는 경험일 것이다.

얼핏 보면 이 영화는 스토리의 ‘중요해 보이는 부분’을 대충 넘어가면서 매우 생각없는 것 같지만, 사실 생각이 없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호프>는 스스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작중에서 범석이 외치는 “마을에 이렇게 총이 많아?!”라는 외침이나, “쟤가 말을 너무 잘 타잖아”같은 대사는 영화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메타 인식 발언이다. <호프>는 알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마을에 너무 말도 안되게 총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조인성이 어떤 복선도 없이 비현실적으로 말을 너무 잘 탄다는 사실을.

다만 그런 대사들로 한번 짚고 넘어가면서, ‘그래도 우리는 설명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한다. 정말 뻔뻔하다.

하지만 그 뻔뻔함이 이 영화의 핵심이자 정수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중요한 부분’-이 캐릭터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이 일은 왜 벌어지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쌓아온 일반적인 상식과 교양(?)으로는 <호프>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호프 조인성 백마 스틸

표면의 세계

작중 인물들은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당장 눈 앞의 재난을 피하는데만 급급하다. 일단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긴 하지만 그래도 대책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도망칠 기회가 있음에도 무조건 총들고 직진하며, 인물들의 소시민적 행보와 일관성 없는 행동 역시 돋보인다.

특히 범석이 실수로 사람을 쏴놓고 급한대로 두루마리 휴지로 지혈을 하며 마구잡이로 환자를 옮기려고 하는 장면은 빛나는 블랙 유머이자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행동 원리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착각과 임기응변, 무책임과 생존본능.

그때그때 ‘괴물을 쫓는다’, ‘도망친다’ 등의 단기 목표만이 존재하고, 인간들은 눈앞의 괴물을 쫓는 것이 전부다.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괴물이 왜 나타났는지, 모른다. 약간의 설명-어쩌면 괴물이 자신의 아기를 찾아 헤맨 게 아니었을까-이 제시되긴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다. (나중에 작중에서 나오지만 그 설명도 틀렸다.)

외계인과는 말이 안 통하고, 양배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벌인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앎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호프 영화 정호연 스틸

(1) “뭐라는 거야”

일단, 그저 보이고 들리는 것이 다인데 그 보이고 들리는 것이 정확한지 여부를 아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트럭에서 낙오된 범석에게 다른 일행이 와서 다짜고짜 총을 쏘는데, 화를 내는 범석에게 남자가 “바로 뒤에 (괴물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범석은 이를 전혀 몰랐고 뒤늦게 돌아보아도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후반부에 양배가 갑자기 핸들을 꺾어 성기를 추락시킨 다음 “고양이가 튀어나와서 그랬다”고 변명하는 장면 역시 그렇다. 정말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서였을까? 양배의 수상쩍은 인물상을 생각해보면 이는 매우 의심스럽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

작중에서 소통 자체가 잘 안되는 장면도 많다. 특히 달리는 차안이나 격한 폭발음 속에서 서로에게 소리를 질러대는 장면이 여러번 나오는데 목소리 자체도 안 들리고, 앞뒤 맥락 없이 자기 할 말만 하느라 알아들을 수가 없다. 

작중 후반부 말을 타고 있는 성기에게 사람들이 얼른 경찰차로 뛰라고 소리지르는 장면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는데, 주변 소음도 시끄럽고 각자의 목소리가 얽혀서 뭐라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가 않는다. 들린다고 해도 어떻게 달리는 말에서 달리는 차로 뛰라는 건지 모르겠고 범석이 덥썩 다리를 붙잡는데, 뾰족한 방법도 없고 오히려 잘못하면 엄청나게 위험해질 뻔 했다.

이게 순전히 운이 좋아서 결과적으로 잘 끝났다는 것은 범석의 오발 사건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2) 한국인은 씨발씨발하고 웁니다

영화가 얼마나 표면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는지는 대사와 캐릭터의 활용에서도 볼 수 있다. 작중 “씨발”은 백여 번쯤 나오고, 작중 인물의 인상적인 대사도 “씨발” 외에는 생각이 안 날 정도다.  단순히 욕이 많이 나오는 것과 별개로 대사 수준도 “와 씨발 미친 우주선” 급으로 형편없다. 특히 성애의 대사들은 하나같이 민망할 정도로 일차원적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80년대 비무장지대의 산골이고, 등장 인물들의 교육이나 생활 수준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며 사냥같은 험한 일에 익숙하다는 설정을 보면 비속어와 수준낮은 표현이 난무하는 것은 어떻게든 납득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캐릭터의 심리나 성격도 거의 표현되지 않는다. 혹은 표현되더라도 별 의미가 없다.

범석은 어린 외계인의 시체를 보고 연민과 분노를 느끼며 양배에게 쌍욕을 퍼붓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배를 격리하는 것도 아니고 외계인과 사이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범석은 여전히 외계인을 만나면 아묻따 총질을 해댄다. 성기가 동료들이 모두 죽고 갑자기 악에 받치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닌데, 작중에서 그 심리를 구체적으로 표현해주지 않고 대사는 “드루와 이 씨발 새끼야” 정도다.

영화 전체에 논리적이고 명료한 문장이 전멸한 상황이지만, 각본가가 능력이 없어서 대사를 ‘씨발’로 채운 건 아니다. <호프>에 씨발이 난무하는 이유는 작중 인물들이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단순화되기는 했지만, 그들의 소통 능력 부족은 주제를 분명히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물론 이를 단순히 등장인물들이 무식해서라고 탓할 수만은 없다. 앞서 말했듯 최소한의 환경적 핍진성은 갖춘데다가 흉측하게 입을 벌리고 네 발로 다다닥다가닥 뛰어오는 외계인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씨발!!!!이라고 소리칠 수 밖에 없을 테니까.)

영화 호프 음문석 양배 스틸컷

표면의 세계 II

이렇게 소통과 이해의 부재는 <호프>의 근간을 이룬다. 

낙연은 경석이 살아있다고 했지만 정말 그럴까? 해술이 본 괴물은 셋인가 넷인가? 양배는 대체 왜 그랬을까? 양배에게 외계인의 시체를 사겠단 사람이 정말로 있었던 걸까? 왜 성기를 구하러 온 사냥꾼들은 외계인을 보고 하나도 놀라지 않았을까?

이 모든 궁금증은 우리의 이해 너머에 있다. 작중 등장인물들도 답을 모르고, 관객 역시 그저 빈약한 근거를 기반으로 한 추측이나 직감으로 때려맞출 수밖에 없다.

사람끼리도 말이 안통하는데, 하물며 외계인과 지구인은.

범석은 상처입고 도망치는 괴물(바미기르)과 눈이 마주친 순간, 무언가를 느끼며 총을 쏘는 것을 주저한다. 성기를 보는 외계인 패스벤더의 그윽한 눈빛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뿐이고, 더 이상의 이해로는 나아가지 않는다. 결국 서로를 죽일 때까지, 그리고 죽인 후에도 오해는 끝나지 않는다.

범석은 괴물이 아이를 찾아 헤맸다고 추측하며 “눈이 마주친 순간 막 뭔가 느껴졌다”고 난리를 치고, 관객도 그를 충분히 이해한다. 괴물은 정말로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딩에서 밝혀지듯이 괴물은 자신의 아이를 찾던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범석이 (그리고 관객도) 느낀 것, 느꼈다고 생각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

하지만 범석이 착각했다고 해서 그의 잘못인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아마 잘못이 있다면 이 세계에 있겠지. 

만약 총을 버리고 손을 들었으면 외계인이 인간들을 살려줬을까? 외계인이 평화롭게 해결하자고 제스처라도 했으면 인간이 그걸 알아 들었을까? 어림도 없지.

이 답답하고 절망적인 과정이 영화의 ‘해답’이다.

우리는 원래 이 세계의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세상을, 타인을, 다른 존재와 소통할 수 없다.

심지어 전기톱으로 상대의 몸을 열어젖혀도 그 안에 있는 것은 무지다.

나홍진 감독의, 철학이라고 할까. 세계를 보는 시선은 이렇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치고 상당히 담담해서, 어딘가 안도감이 있기까지 하다.

이는 범석 일행이 겨우 살아남아서 터벅터벅 걷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범석은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분석하려는 성애의 말을 거부한다. 성기를 잃고 울거나 슬퍼하지도 않고, 원수인 양배를 때리지도 않고, 살아남았지만 그리 시원스럽지도 않고, 그저 “그냥 마음이 이상해.”라고 하는 그의 애매한 표현은 겨우 그게 다지만, 그것이 전부다.

호프 스틸

갈고 닦은 악취미

이 영화를 선뜻 추천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그 수위다. 본격적인 고어…까지는 아닌데. 아니지. 아닌게 아닌가?

사람이 휙휙 날아가 머리통이 깨지거나 곤죽이 되어 팔다리만 남아있고, 피와 살점이 화면에 튄다. 지긋지긋하게 총을 쏴대고 추풍낙엽처럼 다 죽는다. 4D로 본 것도 아닌데 영화관에서 나와서 약간 어지러울 정도였다. 

음, 하지만 이것은 쾌감보다는 공포다. 말하자면 롤러코스터와 비슷하다. 2시간이 넘는, 300번 넘게 떨어지는 롤러코스터.

노련한 연출과 촬영 기법은 쉴 새 없이 관객을 몰아붙이고, 해부씬이나 냉동고씬처럼 별 거 아닌 장면에서 자꾸 의미심장하게 변죽을 올리는 것도 솜씨도 과하게 좋다.

그리고 정말 악질적이다.

특히 외계인을 해부하기 위해 톱으로 마구 썰어대는 장면은 정말 감독의 취향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징그럽고 역겹고, 눈을 뜰까봐 겁이 나기도 하고, 아무리 괴물이라지만 이렇게 잔인하게 톱질을 해야하나 싶고, 보는 사람의 마음을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 악취미는 아주 오랜시간 동안 공들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보통 사람이 ‘그냥 무섭고 충격적으로 만들어야지!’라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연구와 고집과 집착과 자만심과 자부심이 뭉쳐서 만들어진 악취미다.

그래서 불쾌함에 눈을 감고 싶어지면서도, 결국 눈을 똑바로 뜨고 경악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미친놈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낸 끔찍한 결과물은 찬란하기까지 하다.

…역시, 행복하게 사는 보통 사람에게는 권할 만한 물건은 아니지만.

호프 우주선

엔딩

영화가 마지막 10분에 접어들면 그동안의 모든 당혹스러움도 뒤엎는 진정한 당혹스러움이 찾아온다.

처음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는 엔딩이 매우 불쾌했는데, 집에 와서 내내 곱씹으며 왜 그렇게 불쾌했는지 생각해보았다.

왜냐하면 나는 관람 내내 표면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호프>에는 재난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안경 척하고 숨겨진 외계 문명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 학자가 없다. 괴물의 생태나 외계인 문명에 대해서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외계인이 내지르는 말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작중 인물들의 답답함을 공유하며, 눈을 감고 코끼리를 더듬듯 표면만을 겨우겨우 인식해 세계관을 짜맞췄다.

그런데 엔딩의 10분은, 그렇게 힘들게 짜맞추던 사람을 발로 차면서 갑자기 “이건 코끼리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가 직접 자막으로 해석될 때, 그것은 더이상 표면이 아니게 된다. 그건 전지적 시점의 ‘앎’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태까지 쌓아올린 영화에 대한 나의 인식과 세계관을 깨뜨렸다. 그런 점이 일종의 배신이나 불쾌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집에 와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수수께끼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외계인들 역시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돌이켜보면 그들이 하는 말도 “어떻게 이런 일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지구, 자기들이 죽인 지구인이나 사라진 동료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도 불가해한 세계에 당황하며 그냥 눈앞의 일에 급급한, 또다른 생명체일 뿐이다.

내가 열심히 어둠 속에서 코끼리를 더듬고 있던 동안 코끼리 역시 나를 더듬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지, 나와 외계인들은 둘 다 더듬는 입장이고, 세계라는 같은 코끼리를 만지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건 조금 무섭고, 한편으로 많이 안도되는 일이기도 했다.

영화는 딱 여기에서 끝난다.

이후 감독이나 배우가 여러가지 설정을 풀어주고, 온갖 유튜버와 블로거들이 해석과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답답한 무지를 해소하기 위해 그런 정보를 열심히 찾아보는 것도 감상법의 일종일 것이다. 물론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전부 알 수없고, 어차피 이해는 못한다.

혹은 그냥 더 만지작거리지 않고 냅둘 수도 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재난, 이해할 수 없는 세계. 무지로 이루어져 있는 우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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