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테랑2
- 장르: 액션, 범죄, 스릴러
- 감독: 류승완
- 출연: 황정민, 정해인
- 개봉: 2023년 9월 13일
1편이 주었던 단순한 ‘통쾌함’은 없고, 열받는 현실을 영화에서도 보게 되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사이다도 시리어스도 아닌 애매한 느낌이 찝찝.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을 지적하는 게 이 영화의 의도다.
정말 깡다구가 넘치는 일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시원한 액션과 정해인이 보여주는 강렬한 연기는 그나마 숨통 트이는 순간들.
종합평 : ★★★★
*이 리뷰에는 <베테랑2>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테랑2 줄거리
오늘도 몸을 날려가며 범죄자들을 잡아들이고 있는 서도철(황정민)과 강력범죄수사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심신 미약 등의 이유로 터무니없이 낮은 처벌만 받고 풀려난 범죄자들이, 그들이 피해자에게 했던 방식과 똑같이 살해되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대중들은 이를 정의 구현이라 떠들며, 옳고그름을 가리는 전설 속의 동물을 본따 범인을 ‘해치’라고 부른다.
해치 사건 때문에 수사 인력 부족으로 고생하던 서호철은, 지구대 순경 박선우(정해인)가 흉기를 든 위험 인물을 단번에 제압하는 것을 보고 그를 강력범죄수사대에 스카우트하는데….

‘고능함’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보면……..뭐랄까. 진짜너무 똑똑한 사람의 일처리를 볼 때의 만족감 같은 게 느껴진다.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주 또렷하게 인식하고 확실하게 표현하는 사람만이 가지는 선명함.
정말이지 모든 장면이 다 깔끔하고 세련되기 그지없다.
시작부터 비상계단을 이용한 씬이나 개돼지들이 쓴 인터넷 댓글들이 화면에 글자 형태로 나타나는 화려한 연출은 알아채기도 쉽지만, 그 외에도 모든 화면이 다 의식적으로 공을 들여 만들어 놓은 것들.
예를 들어… 처음 회식하는 장면에서, 서도철을 유심히 관찰하는 박선우의 얼굴이 계속 거울에 비춰진 채 나온다. 카메라는 서도철을 찍고 있는데 반대편에 있는 박선우의 얼굴도 같이 찍히는 구조. 이런 화면에서, 관객은 서도철의 말을 들으면서 동시에 그를 관찰하는 박선우를 관찰하게 된다. 아무런 암시 없이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연출.
그리고 조명 활용이라든지.
박선우가 전석우를 데리고 나올 때 문을 사이에 두고 전석우는 빨간 조명, 박선우는 파란 조명을 받고 서 있다. 시뻘건 빛이 전석우 역을 맡은 정만식 배우의 강렬한 마스크를 정면으로 비추면서 매우 인상적인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한편 빨간색은 악, 파란색은 정의라는 일반적인 상징을 통해 은근슬쩍 박선우가 정의를 집행하는 것처럼 암시한다.
그런데 나중에 마약굴에 들어갔을 때, 박선우가 서도철에게 “적극적으로 대응해도 됩니까(=죽여버려도 되냐)”라고 물었을 때 서도철은 녹색 조명 아래 서 있고 박선우는 골목 옆에서 붉은 빛을 받고 서있다.
막판에 박선우가 서도철을 터널로 유인한 후 그의 앞에 나타났을 때에도 새빨간 조명.
한편 진짜로 선한 인물인 서도철은 그 붉은 조명을 한번도 받지 않는다.
그 외에도 박선우의 눈에 광채가 없어 죽은 눈처럼 보이는 연출도 그렇고 (반면 클로즈업된 서도철의 눈빛은 언제나 초롱초롱함), 어떤 장면을 딱 찍어서 봐도 치밀하고 정교하게 계산된 결과다.

그리고 무엇보다 액션이 너무너무 찰져.
메인이 되는 박선우의 UFC 기술은 물론이고, 남산에서 벌어진 파쿠르 도주신, 짧지만 강렬한 차량씬 등 다채롭기도 하다. 게다가 이런 액션 신들이 개그였다가 시리어스였다가 아주 오락가락하는데, 그 템포를 조절하는 솜씨도 역시 너무 능숙하다.
특히 비가 쏟아지는 옥상에서의 전투씬은 영원히 안 끝났으면 좋겠다 싶었을 정도로 좋았다.

대중은 언제나 살인을 원한다
얼핏 해치는 우리 모두가 꿈에 그리던 ‘법이 못 잡는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다크히어로’ 같다. 그가 죽인 놈들이 워낙 인간쓰레기고, 그 놈들이 했던 방식 그대로 되갚아주는 방식도 통쾌하다.
그러나 해치는 정의가 아니다.
그리고 박선우는 자기가 정의라고 한 적도 없다. “난 내가 해치라고 한 적 없는데?” 라고 하잖아. 해치라는 이름도 정의부장이 붙인 거고, 실제 박선우는 자신의 범행에 대해 어떤 성명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범죄자를 골라 죽이는 것도, 굳이 그놈의 범행 방식과 똑같이 죽여버리는 것도 연쇄살인범 특유의 ‘시그니처’일 뿐. 말하자면,하필이면 그가 죽이는 타깃들이 범죄자일 뿐이라는 거다.
그러나 대중들은 그가 정의라고 멋대로 믿고 그가 다음 사람을 죽이기를 기대한다.
박선우가 이기적이고 질나쁜 관종 살인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 초중반 악독한 범죄자들이 ‘정의 구현’ 당하는 장면들은 짜릿하고 해치를 응원했는데, 실은 내가 멍청했고 렉카에 놀아났을 뿐이라는 걸 인정해야 하니까.
밥 먹을 때마다 렉카 채널이나 커뮤 댓글을 보는 게 취미인 사람이라면 더 그렇겠지.
영화는 의도적으로 관객이 해치를 응원하도록 유도했다가 해치에 대한 환상을 박살냄으로써 충격을 준다.
세상에 그런 정의는 없어.
그리고 원론적인 근거 외에도 (실제로 해치가 정말로 정의를 위한다는 신념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도) 투이처럼 억울하게 누명을 쓰거나 정의부장같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점도 지적한다.
다크히어로를 바라는 대중을 비웃는 건 상당히 과감한 행동이다.
…물론, 과감성에는 거부라는 대가가 따르는 법.
일단 많은 관객들께서는 ‘정의 구현’ ‘사이다’ ‘명절용 영화’를 찾아 오셨을 텐데 거기다 대고 “정의 구현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라며 상을 엎어버린 셈이니까.
유쾌하고 발랄한 오프닝에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끔찍한 범죄 사건의 요약 방송은 갑자기 냉방병에 걸릴 듯한 온도차로 떨어진다.
영화는 사이버 렉카, 성폭력, 범죄에 비해 턱없이 가벼운 처벌, 해외 이주 여성, 마약 범죄, 학교 폭력 등 요새 문제가 되는 사건사고 중 안 다루는 게 없을 정도로 다 훑는다. 현실에서 다 어디서 한 두번씩 본 것 같은 범죄들이라 작중 뉴스 화면을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그런 걸 처단하는 정의의 세력(그게 해치든 경찰이든)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게 애매해져 버리니 영화에는 통쾌함이 없다. 서도철이 박선우와 치고박을 때, 솔직히 말하면 박선우보다 정의부장을 참교육시키고 싶은 게 모두의 심정 아닌가.
…그리고 그 마음은 딱히 정의감이 아니라는 사실을, 영화가 끈질기게 지적한다. 니가 인정하든 인정하기 싫든 간에.

무심한 정의
그러나 <베테랑2>가 묘하게 허망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정의가 아닌 주제에 정의인 척하는 것들은 깨부숴줬지만,
진짜 정의에 대해서는 얘기를 너무 대충한다는 거.
끔찍한 범죄들과 이를 처단하는 해치의 행보, 박선우의 광기 등 악한 쪽에 대한 묘사는 충실한데 그 반대편은 거의 날림이다. 황정민이 특유의 쫀득한 연기로 서도철 형사에게 이입하게 만들지만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박선우의 쾌락 살인보다 불분명하고 희미하다.
서도철은 확실한 정의관을 가진 경찰이다. 강력 사건을 다루는 형사로서 폭력에 익숙해져 있고, 욱하는 성격이지만 결코 선을 넘지는 않는다.
그가 범죄자들을 보고 “확 죽어버리지 그랬냐, 내가 죽여버린다”라고 말하는 것은 흉악한 범죄에 대한 분노와 아들 일 때문에 감정이 고조된 상태가 뒤섞여 홧김에 나온 말이다. “좋은 살인 있고 나쁜 살인 있냐”면서 크게 혼내는 장면이나, 선우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하는 장면이 그의 진심.
절대로 살인은 안돼. 경찰이니까.
그러나 그의 올곧은 신념은 입체적이거나 세심하게 묘사되지 않아서, 그가 해치를 응원하다가 갑자기 탈룰라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나쁜 놈이 저지르는 짓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게 해놓고, 주인공은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 한 마디로 넘어가는데 이거 밸런스가 너무 안 맞는 거 아니에요?
특히 아들의 학폭 문제와 관련된 신은 좀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사건 수사 도중 번번이 아들 일 때문에 산만해지는 것도 다소 흐름을 끊어먹는 요소인데다 솔직히 관련 장면 다 쳐내도 스토리에 별 영향이 없음…
학폭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오히려 박선우인데, 여기에 대한 고찰도 없고 이 사건이 박선우와 서도철 사이의 관계에도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박선우가 서도철을 신경쓰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치고 정작 관계가 깊게 구축되는 것도 아니라 둘의 케미는 그냥 공중분해… 아이고 아까워라…
게다가 아빠가 아들과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는 ‘인질로 잡힌 아들을 아빠가 구해준다’는 촌스러운 전개고, 훈훈한 일상성을 핑계로 댄 얼렁뚱땅 가족 판타지로 영화를 마무리하는 건 특히 실망스러운 부분.
묵직한 주제와 날카로운 지적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후반부는 평면적인 정의에 통쾌함도, 깊이도, 매력도 빼앗겨 버렸다.

맑은 눈빛의 광기
<범죄도시> 시리즈가 살벌섹시중년남들을 패는 모아놓은 마동석의 보석함인 것처럼 <베테랑>은 소년미있는 빌런들을 수집하는 중.
(불행하게도 1편의 그는 얼굴 가지고 언급하기도 민망한 범죄자가 되었지만)
말랑순진 강아지같은 인상의 정해인이 어떤 악역이 될지 꽤 궁금하고 기대가 되었는데, 결과는 정말 깜짝 놀랐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타깃을 빤히 쳐다보거나 긴박한 순간 해맑게 웃을 때 무심코 헉, 소리가 날 정도로 강렬한 반전을 선보인다.
특히 남산에서 활짝 웃으며 용의자를 떨어뜨리는 척하고 겁을 주거나 상가 마약굴에서 ‘안녕’이라고 입모양으로 말하는 장면이건 애드립이었다고!) 등은 단연 강렬…

정해인의 캐릭터 해석도 좋았고, 영화 자체가 박선우에게 위험한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다. 이 유도 작전이 상당히 교묘하다.
‘시원시원하고 화려해서 눈이 즐거운데 그 자체로 과도하고 위험한 액션 스타일’ 자체가 박선우라는 인물을 그대로 표현한다.
특히 남산 추격전이나 마약 소굴에 들어갔을 때 박선우의 액션은 정말 흉흉해서 영화관 안의 관객들이 겁 먹을 정도. (영화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흐읍! 허억!)
트라이앵글 초크가 위험하기도 위험하지만 약간 쇼잉하는 듯한 인상도 있어서 특유의 관종끼를 드러내기도 하고.
다리로 목을 조르는 기술은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나오지만, 보통 여성이 체격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쓰거나 상대를 간단하게 제압하는 일이 많지 기절할 때까지 목을 조르진 않음….
다만 이렇게 캐릭터성을 치밀하게 빌드업한 것 치고 결정적으로 좀 허술한 데가 있는데, 가끔 너무 큰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영화 후반부가 다소 허무해지는 경향이 있다.
…뭐, 그런 허술한 점도 특유의 애샛기스러움을 살린다고는 생각하지만.

종합평 : ★★★★
‘정의 구현 사이다’를 찾으려고 <베테랑2>를 본다면 분명히 실망하게 될 거다. 제작진 쪽에서 속편을 향한 기대를 모르진 않았을 텐데도 일부러 이랬다는 점에선 의도가 확실하게 느껴지는 부분.
그리고 사실 영화가 너무 현실적으로 깝깝한 사건들을 다뤄서 목이 타는 건 맞음…
그러나 유치하고 쉬운 길(ex.<범죄도시> 시리즈)을 택하지 않은 미움받을 용기를 리스펙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살인자ㅇ난감>도 ‘정의’라는 근본적인 주제에 대해선 좀 도망갔다는 느낌이 있는데, 정의 구현과 참교육을 찾는 대중 앞에서 이 정도로 정면에서 손가락질하는 건 거의 깡의 영역.
물론 서사가 묘하게 어설프고 양쪽이 원하는 만큼 ‘사이다’도 ‘시리어스’도 아니었다는 점에선 아쉬운 부분이 남는다. 하지만 도전적인 소재와 감독 특유의 깔끔한 기술, 액션 신과 정해인의 악역 연기는 볼 가치가 있다.
..뭐, 시원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추석 영화’라고 보기엔 문제가 좀 많지만. 실제로 영화관에서 “사이다가 없잖아”라면서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었다는.
이 영화의 관람객평이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 자체가 대중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