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2025) 리뷰 : 치밀하지 못한 망상

FILM, REVIEW


목차


넷플릭스 계시록 스틸 류준열 목사

계시록 줄거리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개척 교회를 이끌고 있는 성민찬 목사(류준열)는 어느날 교회를 찾아온 낯선 남자 권양래(신민재)에게 차를 내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권양래의 발에 있는 전자발찌를 본 민찬은 당황을 애써 감추고 교회에 올 것을 권유하지만 그는 급하게 자리를 뜬다.

다음날 민찬은 자신의 어린 아들이 갑자기 사라져 유괴를 의심하고, 권양래를 범인으로 가리키는 신의 계시를 받는다. 그리고 그를 단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게 되는데..

한편 권양래의 예전 범죄로 인해 여동생을 잃고 죄책감과 환영에 시달리는 형사 이연희(신현빈)는 권양래가 출소한 후 그의 근처를 멤돌며 그를 감시한다.

이윽고 실종 신고가 접수되고 권양래가 용의자로 떠오르자 그녀는 범인을 찾으러 나선다.

계시록 류준열 목사

하나님께 책임전가하기:
신의 계시 혹은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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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찬은 권양래가 자신의 아들을 납치했다고 착각하고 그를 죽이게 (실제론 안 죽었지만) 되는데, 신묘한 우연이 상황과 맞아 떨어지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 여기게 된다.

자신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만 하는 것이며, 자신이 저지르는 짓이 범죄가 아니라 사명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그래도 권양래를 산 아래로 밀어버린 것까지는 그의 실수이자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찬은 안절부절 못하고 자수를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새로 생긴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맡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의 태도는 완전히 변하기 시작.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은폐하는 공작이 범죄자를 처단하는 정의로운 사명으로 둔갑하고, 자신은 신의 뜻대로 하는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특히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라는 대사는 궁극의 책임 전가. (하나님: ?????)

백번 천번 양보해서 성범죄자에게 고통을 준 게 적절한 정의구현이었다고 쳐도, 그를 죽이면 소녀가 갇힌 곳을 영영 알 수 없는데 여기에서 민찬은 소녀는 이미 죽었다고 뇌피셜을 돌린다.

처음엔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이라며 범죄자도 받아주고, 아영이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기도회를 열자던 그가 사탄의 자식은 죽여야 한다고 외치고, “아영이는 이미 천국에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민찬이 완전히 미쳐버렸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엔딩에서 아영이가 살아있다는 연희의 말을 듣자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아영이가) 죽었다고 그랬는데”라고 하는 민찬에게 연희가 “누가 그랬어요?”라고 묻자 민찬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자기가, 자기만이 한 일이니까.

계시록 파레이돌리아

민찬이 광기로 물드는 과정은 종교(의 악용)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도 하다.

민찬이 본 ‘계시’는 사실 구름을 보고 사람 얼굴을 떠올리는 기초적인 착각(파레이돌리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의 광기가 얼마나 짜치는 것이었는지 드러난다.

개신교가 정말 개쓰레기처럼 나오긴 해서 교회 다니는 사람에겐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음….애초에 막 주변에 그리 추천하고 싶은 작품까지도 아니지만

비신도들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이라는 개념에 다소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뿐더러 세습 교회의 폐단, 목사들의 개소리나 무아지경에 빠지는 신도들의 모습은 정말 비호감 그 자체.

종교 자체에 대한 비난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나약함에 초점을 맞춘 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쪽 입장에선 조금 억울하긴 할듯. 하지만 할 말은 없겠지.

계시록 줄거리 결말

악마에게 책임전가하기:
트라우마와 죄책감

책임을 전가하는 건 민찬만이 아니다. 책임을 전가당하는 것도 하나님만이 아니고.

권양래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다 과거에 받은 학대 탓으로 돌린다. 성민찬은 하나님 탓, 권양래는 괴물(아빠) 탓.

잔혹한 학대를 받아 정신이 나간 것까진 그렇다 치는데, 다른 피해자를 학대한 주체는 다름아닌 본인이라는 사실은 쏙 빼놓는다. 까놓고 말해서 괴물이 성폭행하라고 칼들고 협박한 거 아니잖아.

트라우마와 정신병이 그의 범죄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는 논의할 여지가 있어도, 기억도 의식도 멀쩡한 상태에서 지가 범죄를 저질러 놓고 이를 괴물이 그랬다며 회피하는 짓은 빼박 자기합리화.

계시록 신현빈 연기

한편 연희 역시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외부의 탓으로 돌린다.

‘악마’에게.
권양래의 정신질환에 대해 증언한 정신과 의사에게.
동생의 귀신에게.
그리고 (동생을 지키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에게.

물론 이는 민찬보다는 훨씬 개연성 있는 책임 전가고 실제로 그녀가 피해자인 것은 맞다. 그러나 자신의 죄책감과 분노를 동생의 귀신으로 투영시키고, 범죄자를 악마화하는 행위로 인해 그녀 자신의 멘탈은 더욱 나락으로 간다.

“악마 아닙니다. 그냥 인간입니다.”

정신과 의사가 하는 말은 완벽한 정론이다. 이는 범죄자를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 아니며, 그가 안타까운 과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실드도 아니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데에는 이유가 있고, 권양래 역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일 뿐. (그게 불쌍한 과거든 싸패적 성향이든 간에)

연희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권양래를 결코 이해할 수도, 알고 싶지도 않은 악마로 규정한다. 그저 한없이 증오하기 위해서. 그러나 권양래를 용서하거나 동정할 필요는 없어도, 그가 과거와 트라우마를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연희는 결국 아영이를 구하기 위해 권양래가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의 과거를 찾아 다시 의사를 찾아온다. 이것이 그녀가 권양래나 성민찬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분기인데…

연희는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해야할 일에 집중한다. 동생의 원혼이 자신의 환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기 파멸적인 복수보다 살아있는 아이를 구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자기 기만과 합리화에서 벗어남으로써 유일하게 구원을 받게 되는 것.

계시록 드라마 스틸

여전히 아쉬운 전개,
필요한 얘기는 2분

사실 <선산> 이후로 연상호 감독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었는데 그 작품들 중에선 꽤 괜찮은 편… 그러나 장점도 단점도 여전하다.

<계시록>은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를 초중반까지 긴박감 넘치게 풀어낸다. 교회를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 색채도 꽤 재미있는 부분.

하지만 여전히 주제가 얄팍하게 드러나고 전개가 작위적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연상호 작품들은 뭔가 그럴듯한 로그라인 한 줄만 가지고 시작하는 느낌.

‘컨셉’이나 ‘주제’만 있고 이것을 탄탄하게 받쳐줄 기반은 매우 빈약하다. 이러니 후반부로 갈수록 뒷심이 부족해서 뻔한 전개만 나오지.

개연성도 별로 없어서 환각까지 보는 형사가 멀쩡히 복직하고 강력계로 배속된 건 어이가 없고, 수사 과정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경찰들의 은은한 발연기는 덤.

그나마 배우들의 열일로 그럭저럭 감정과 긴박감을 전달하기는 했지만, 중반부터는 뻔해지기 시작하면서 긴장감이 팍 사라진다.

무엇보다 진중한 주제에 비해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매우 단순무식한데, 정신과 의사는 연희의 오랜 트라우마를 2분 만에 치료시키는 경이로운 실력을 보이며 심지어 이 작품의 주제를 그냥 한 줄로 요약해준다.

이 시점에서 결말까지 정말 흔해빠진 스토리가 되어버림…

여기에 덧붙이자면, 거창한 주제치고 주제에 대한 심도깊은 고찰은 없고 기본적인 구도 자체가 뻔하다.

권양래가 당한 학대는 매우 축소되어 표현되고, “악마가 아니고 인간이다.”라던 말이 무색하게 작중 그의 행동은 거의 완벽한 악마로 묘사된다. 그의 학대와 정신병에 대한 것은 정신과 의사의 무미건조한 소견으로만 등장하고, 그의 과거가 불쌍하다고 동정하는 것조차 연주를 자살로 몰고간 나쁜 짓이 된다.

이러니 인간이니 뭐니 해도 별 설득력이 없지. 아주 그냥 죽여달라고 난리를 치는걸.

게다가 피해자 여성의 고통(만)을 적나라하게 전시하는 저열한 연출도 불쾌하기 짝이 없다.

까놓고 말해 권양래의 과거 장면이라도 넣었다면 적어도 공평하기라도 했겠지. 그의 상처는 “정말 끔찍하죠?”라는 대사로만 대충 때우고 성범죄 여성 피해자의 고통만 집요하게 묘사하는 행태는 씹스러운 건 물론이고 주제를 빈약하게 만드는 데에도 한몫한다.

결국, <계시록>에는 하고싶은 말이나 번뜩이는 순간적인 아이디어는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짜임새가 없다.

그리하여 남는 것은 다소 공허한 파레이돌리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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