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끝낼까 해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 원작: 이언 리드 <이제 그만 끝낼까 해>
- 장르: 드라마, 스릴러
- 감독: 찰리 카우프먼
- 출연: 제시 플레먼스, 제시 버클리 외
- 공개: 2020년 9월 4일

목차
*이 리뷰에는 <이제 그만 끝낼까 해>의 전반적인 줄거리, 엔딩 및 구체적인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줄거리
‘제이크’는 사귄 지 얼마 안 된 여자 친구 ‘루시’를 데리고 부모님을 만나러 드라이브 여행을 떠난다. 루시는 내심 제이크와의 관계를 이제 그만 끝낼까 생각하지만 미처 말을 하지 못한다.
조금 어색한 분위기에서 도착한 제이크의 집. 하지만 그곳에서 점점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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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의 스토리는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일단은 장르가 스릴러라고 되어 있고, 모호하게 불편한 초반 분위기 때문에 긴장하게 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호러/스릴러식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일단 루시와 제이크가 차를 타고 가는 장면부터 왠지 좀 연극적인 데가 있고, 도로고 나발이고 그냥 눈밭 위에 뚝 떨어진 듯한 집도 이상하다. 중간중간 뜬금없이 학교 복도를 청소하는 노인 청소부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기괴한 제이크네 부모와의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저녁 식사부터다. 제이크의 부모는 뭔가 좀 불안한 행동을 보이고, 화제는 불편하다. 대화의 아다리가 안 맞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보는 사람까지 체할 것 같다.
그 와중에 여자 친구의 이름은 루시, 루이자, 루시아 등으로 바뀌고 저녁 식사 동안 옷차림이 달라지거나 전공, 직업조차 달라진다. (하지만 루시 본인조차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저녁 식사가 끝나자 갑자기 제이크의 부모가 갑자기 늙고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순간 이건 뭐지 싶다.
영화 자체가 좀 초현실적이고 복잡해 보이는 것과 달리 진실은 의외로 그리 복잡하진 않은데, 그 진실 한 줄을 깨닫는다면 그 다음부터 영화 감상은 전혀 다르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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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해석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고등학교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나이든 제이크(일명 관리인)이다. 영화 중간중간 복도를 청소하는 나이든 관리인이 바로 제이크의 실제 모습이며, 영화 속의 거의 모든 일-즉 루시와 제이크가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과정은 모두 그의 상상인 것이다.
작품의 처음부터 내레이션을 하는 것은 루시이고 루시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헷갈릴 수 있는데, 루시 역시 관리인의 생각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정확히 말하면 제이크가 함께 하길 바랐었던 이상적인 여자친구를 투영한 환상.
그러나 그의 상상 속에서조차 루시는 제이크와 헤어지려고 한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관리인이 어떻게 살아왔고 그가 왜 상상에 몰두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대사로 직접 설명되지 않는다. 사실 본체인 관리인의 모습이 나오는 것도 10분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화면에 나오는 모든 것이 그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한 인간의 내면 심리를 모두 화면에 풀어헤쳐 놓은 광경이라고 할까.
이 점을 짚고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데, 묘하게 올드한 루시의 스타일링부터 가족 모임의 연극적이고 어색한 분위기, 자꾸만 서로의 말이 엇나가는 것 등등 모든 것이 다 이유가 있다. 다 관리인의 상상이니까.
그리고 한 인물이 상상한 풍경은 그의 내면을 투영하는 법이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관리인의 취향과 어렸을 적 좋아한 TV 광고와 가족 관계와 트라우마와 희망과 직장 환경과 꿈과 좌절을 반사하고 있다. 시종일관 무겁고 불안한 영화의 분위기는 관리인의 내면 세계가 이미 매우 우울하다는 뜻.
맨 처음에 루시가 제이크의 차를 타는 딱 한 순간, 잠시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그 때를 제외하고.
관리인은 가상의 여자친구를 상상했지만, 가족 만남은 빈말로라도 좋게 끝났다고 보긴 어렵다. 관리인은 그런 결말을 상상해내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젠 ‘집(현실)’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농장을 떠난 후 분위기는 유독 어두워진다. 이전까지는 남자친구와 헤어질까 말까 고민하는 루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이상한 말과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제이크가 탐구의 대상이 된다.
제이크는 루시의 집에 돌아가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다소 두서없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초반과 비교하면 거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우리 사회엔 그런 친절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아. 타인이 발버둥칠 때 이해하려는 의지같은 것도.”
“늙어가잖아… 청력이나 시력도…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아. 잘못된 길에도 많이 들어섰지.”
“그 모든 거짓말…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것, 결코 늦지 않았다는 것, 신이 당신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어둡다는 것, 모두 제 짝이 있다는 것.”
제이크가 그렇게 나이들어 보이지 않지만, 이 대사를 말하는 인물은 매우 늙고 외롭고 괴로운 사람이다. 사실상 이 부분에서 관객은 제이크의 실체가 관리인이라는 것을 거의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동안 있었던 숱한 복선들을 다 지나쳤다면)
엔딩의 의미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들이 잠시 음료수를 사러 들르는 장면과, 루시가 제이크를 찾아 고등학교 건물로 들어가기 시작한 부분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까지는 실제로 (관리인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각 장면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1. 루시가 가게에 들르는 장면 / 관리인을 만나는 장면 분석
제이크는 음료수를 사러 잠깐 가게에 들르자고 했으면서, 가게의 여종업원과 대화하기 싫다는 이유로 루시에게 음료수를 사달라고 부탁한다. 대놓고 제이크(와 루시)를 무시하는 금발 여종업원들은 실제로 그가 여성들에게 가진 피해 의식과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루시는 이야기가 통하는 점원에게 주문을 하는데, 이 점원은 “꼭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그럴 마음만 먹으면 여기에 머물러도 된다”고 말한다. 루시에게 사실상 돌아갈 곳이 없으며, 더 나아가면 파멸을 맞이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하는 대사.
<매트릭스>의 파란약을 권유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루시는 거절하고 제이크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나는데, 제이크 때문에 집이 아닌 고등학교(모든 것의 막을 내릴 장소)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학교 안에 들어가버린 제이크를 찾아헤매던 루시는 관리인(원래 제이크)을 만난다.
루시가 남자친구를 찾는다는 것을 듣고 관리인이 그가 어떻게 생겼냐고 묻자, 루시는 돌연 그의 생김새가 기억조차 나지 않고 제이크와의 첫만남부터 별로였다며 제이크를 마구 깎아내린다.
루시의 존재 자체가 관리인의 상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관리인은 이제 포장이나 상상으로 희망을 갖는 것조차 포기했으며 적잖은 자기 혐오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식 있고 독립적인 루시가 관리인의 이상적인 여자친구라는 점은 꽤 의미심장하다. 그는 루시를 꽤 존중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기가 상상 속에서 위안을 얻고자 루시를 이용했다는 점을 알고 있고, 그런 자신에 대해 혐오감을 품고 있는 이중적인 면을 볼 수 있다.
한편 루시가 관리인의 슬리퍼를 거절하고 떠나는 장면은, 관리인과 제이크를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던 루시가 이제 자유를 찾는다는(=관리인이 자기 위안거리로 삼았던 그녀를 놓아준다는) 의미를 갖기도 한다.

#2. 춤을 추는 커플의 드림 발레
그 다음엔 뜬금없이 학교 복도에서 좀 더 젊고 발랄한 버전의 제이크와 루시가 나타나 함께 춤을 추는 시퀸스가 펼쳐진다. 여기에서 제이크와 루시는 결혼을 하는데, 갑자기 관리인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제이크를 죽이고 루시는 도망친다.
이는 1930년대 뮤지컬 <오클라호마>의 ‘꿈의 발레’ 장면으로, 원작에서도 젊은 커플이 서로 사랑을 하지만 여자를 쫓는 남자가 나타나 위기를 겪는 장면이다.
뮤지컬 장면을 자기 자신으로 대입하는 과정에서 관리인이 상상하는 자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 루시와 서로 사랑하는 젊고 이상적인 청년 제이크
-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당 노인
1번의 경우 관리인이 상상을 통해 진정으로 이루고 싶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번이 1번은 죽이는 것은, 관리인의 꿈과 이상을 죽이는 것이 자기 자신(의 현실)이라는 뜻이 된다. 루시와의 대화에서 엿보였던 자기 혐오가 더욱 크고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

#3. 제이크의 공로상 장면과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
그리고 화면이 바뀌고, 제이크는 물리학자로서 성공한 삶을 살았으며 많은 관중들 앞에서 영예로운 상을 받는다.
특이하게도 평생 공로상을 받을 때의 그는 관리인이 아니라 젊은 제이크가 나이든 모습으로 나온다. 즉, ‘제이크’ 배우가 노인 분장을 하고 나온다. 이는 관리인이 상상하는, 그가 살지 못했던 그의 모습이다.
(이 장면의 모든 것이 ‘가짜’이기 때문에 관중석의 모든 인물들도 다 그가 아는 사람들이 노인 분장을 하고 있다.)
또 수상 후에 갑자기 그는 뮤지컬 <오클라호마!>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뮤지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가사를 듣고도 무슨 뜻인지 다소 모호할 수 있겠다. 일단 부르는 곡은 ‘외로운 방’으로, 삐꺽이고 낡은 헛간의 비참한 환경에서 자신이 꿈꾸는 여성을 찾아 손에 넣기 위해 나아가겠다는 결의에 찬 곡이다.
대충 생각하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랑하는 여주인공을 찾아 떠나겠다는 결심이 담긴 것 같지만, 문제는 <오클라호마!>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남주가 아니라 여주를 쫓아다니는 반동인물 ‘주드’이며, 그가 가진 비참한 환경을 스스로 인식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목표로 삼는 장면이라는 점.
<오클라호마!>의 남주(컬리)와 여주(로리)는 위의 발레 씬에 나온 그 커플이고, 그들을 방해한 게 주드다. 그리고 <오클라호마!>에서 주드는 끝까지 로리한테 질척거리다 컬리한테 칼맞아 죽는다. 그리고 ‘외로운 방’ 전에는 컬리가 농담조로 주드에게 자살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도 있다.
즉 관리인은 뮤지컬의 비참한 악역에 자신을 대입하고, 악역이 자신의 현실(낡은 헛간)을 깨닫고 울부짖는 노래를 자신의 마지막 곡으로 선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꾸는 꿈
관리인은 죽었다. 아마도 심장 발작이나 저체온증 혹은 인생 그 자체 때문에.
“이제 그만 끝낼까 해.”라는 대사는 처음부터 약간의 자살일 가능성을 암시하며(최소한 수동적인 의미로라도), 그가 옷을 다 벗고 돼지를 따라 학교로 들어가는 장면부터는 죽기 전의 환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구성이 다소 난해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이 영화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일 수 있으나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일목요연해서 가슴이 아프다. 지나치게 공감이 가고 이 심리적 기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어서 거의 좌절스러울 정도다.
<이제 그만 끝날까 해>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는 시간적 기록이라기보단 어떤 한 인간의 마음 속 공간과 같다. 그리고 그의 발버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아주 살짝 노력하기만 하면 영화 자체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그 노력이 있다면 한 인간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공간을 거닐고, 대화를 듣고, 트라우마와 상처를 발견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누구에게 발견되지도 사랑받지도 못하고, 혼자서 외롭고 쓸쓸하고 괴롭게 나이든 인간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꿈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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