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랙 아담
- 감독: 자우메 코예트세라
- 출연: 드웨인 존슨, 노아 센티네오, 알디스 호지 외
- 장르: 액션, 판타지, 슈퍼히어로
- 개봉: 2022년 10월 19일
바닥없는 DC코믹스의 흑역사 중에서 이 정도면 봐줄만하다는 게 희망인지 절망인지.
종합평 : ★★
블랙 아담 줄거리
한 때는 화려한 고대 문명을 지니고 있었으나 현재는 외세의 침략에 속절없이 무너진 칸다크. 칸다크에는 악마를 불러들이는 ‘사박의 왕관’을 만든 폭군에게 대항한 영웅, 테드 아담에 대한 전설이 있다.
칸다크의 고고학자인 아드리아나는 사박의 왕관이 있는 위치를 알아내고, 막강한 힘을 지닌 왕관이 외적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다가 봉인되었던 테드 아담을 깨운다.
아담은 엄청난 힘을 발휘하여 군대를 몰살시키고, 아드리아나와 그녀의 아들 아몬은 그가 칸다크에 자유를 가져다 줄 영웅이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한편,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슈퍼히어로팀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의 일원인 호크맨은 아담을 위협적인 존재로 판단, 그를 구속하기 위해 칸다크로 향하는데…

스토리 따위는 장식입니다
시작부터 결론을 말하자면 <블랙 아담>에서 스토리는 그저 캐릭터들이 활약할 무대 바닥에 불과하다. 그것도 매우 대충 만든, 싸구려 재질의.
UN과 미군을 연상시키는 내정 간섭 문제, 독재에 대한 저항, 선과 악의 기준 등 나름 뭔가 이것저것 넣긴 했는데 스토리와 설정 관련해서 괜찮다고 쳐줄 만한 부분은 단 하나도 없다.
유치한 내레이션과 개연성 없는 연출로 점철된 오프닝부터 끔찍한 수준이며, 칸다크라는 배경에는 전혀 정이 들지 않고, 민간인 주인공인 아드리아나&아몬 모자는 헐리우드 영화를 통틀어 역대 최악의 민간인 캐릭터로 뽑을만 하다.
근데 애초에 영화 자체가 스토리로 뭔가를 하려고 노력을 안 해.
뭔가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잘 안되서 ‘응? 좀 생각해보니 이건 이상한데?’ 싶은 게 아니라 ‘와 진짜 얘(주로 아드리아나랑 아몬)지금 무슨 개쌉소리를 하는 거야’의 연속.
최소한의 개연성을 설명하려는 성의조차 없다. 그냥 놨어요.
근데 웃긴 건 스토리의 기본 설정과 관련된 과거 회상신은 연출도 어이없고 날림인데, ‘지금 현재’에 대한 건 꽤나 공을 들였다는 게 보인다는 거.
완전 B급 영화 수준의 오프닝 연출에 비해 블랙 아담의 서사에는 나름의 반전도 준비해뒀고, 마법사 의회의 빨주노초파남보 하이빔에 들인 성의는 정말 1도 없으면서 정작 연출이 더 어려웠을 호크맨이나 닥터 페이트는 번쩍번쩍하게 닦아놨다.
이 영화는 자기들이 나름 신경쓴 부분과 대충 만든 것을 매우 대놓고 티를 내고 있다.
“아, 칸다크의 해방 이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구요. 그 부분은 대충 넘기고 일단 드웨인 존슨이 크아아앙하고 울부짖는 것을 보세요.”라고 아예 대놓고 말하고 있는 거.
그렇다. 이 영화에서 스토리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 약간 <철권>의 철권 토너먼트같은 느낌인거지. 캐릭터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냥 우연히 만났다고는 할 수 없으니 대충 배경을 뚝딱거렸을 뿐.
그렇다면 이 작품이 스토리 말고 뭐에 신경을 쓴 걸까?

드웨인 존슨은 근육으로 말한다
내가 아는 블랙 아담은 M자 탈모에 어린애 괴롭히는 쩍벌남이라 더락이 역할을 맡았다고 들었을 때는 좀 ‘?’하긴 했다.
하지만 설정이나 포지션도 좀 많이 바꿨다. 코믹스의 블랙 아담을 영화로 끌고 왔다기보다는 더락에게 블랙 아담을 맡기려고 작업한 느낌.

칸다크의 과거와 얽힌 그의 서사 자체는 상당히 감정적이고 잘만 하면 좀 괜찮을 뻔 하긴 했지만, 영화가 칸다크를 공들여 묘사하는 걸 애저녁에 포기했고 더락도 그닥 인상적인 감정 연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의 블랙 아담은 ‘낯선 시대에 와버린 인간 흉기’라는 점에서 T-800의 판타지판 아종이라고 할 만하다. 캐릭터의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터미네이터>의 그것을 상당히 가져왔다. 블랙 아담은 시종일관 인상을 쓰고 대사도 많지 않은데, 이건 현대 사회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과 그의 초월적인 힘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자 진한 감정을 드러내기에는 살짝 부족한 배우의 연기력을 커버하기 위한 전략.
하지만 (역시 <터미네이터>의 슈왈제네거가 그랬던 것처럼) 더락이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는 아니라고 해도 그의 근육은 엄청난 설득력을 내뿜는다. 저 승모근을 보라. 헬기 프로펠러를 맨손으로 때려 부숴도 납득이 가지 않나.
이 영화는 외세에 침략당한 불운한 국가의 국민들이 용기를 내어 자유를 찾는 장면보다 드웨인 존슨이 맨손으로 사람을 찢는 장면이 더 개연성이 있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영화입니다.
그러니 중요하지 않은 건 대충 넘어가고 그냥 즐겨.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으니, 제가 이 영화에서 발견한 최고의 것은 더락의 근육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워너가 드디어 찾아낸 사금
그동안 워너가 만든 DC 코믹스의 실사영화는 실패가 더 많았다.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를 꼽자면 기라성같은 저스티스 리그 멤버들의 확실한 매력조차 살리지 못했다는 것.
그렇게 유명하고 인기많은 히어로들을 무매력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어려운 일을 우리의 워너가 해냈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이번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들은 저스티스 리그도 아닌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원래는 JSA, Justice Society of America) 소속.
JSA는 (현실에서의 등장이 1940년대 일 정도로) 찐으로 가장 오래된 슈퍼히어로 조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설정을 몇 번 갈아엎고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이 중심이 되는 ‘저스티스 리그’쪽이 더 유명해져서 코믹스 팬이 아니라면 잘 모를 정도.
탄탄한 설정을 가진 슈퍼맨과 배트맨으로도 말아먹었는데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히어로들을 잘 그릴 수나 있을지, 끔찍하게 수준 낮은 오프닝을 보면서 걱정이 들었는데.
아니, 그런데 이럴 수가.
……괜찮잖아?

영화 제목은 <블랙 아담>이지만, 이 영화를 그나마 굴러가게 만드는 건 호크맨과 닥터 페이트. 과묵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힘든 블랙 아담이나 헛소리를 지껄이는 아드리아나 모자와 달리, 이 둘은 확실한 행동 원리와 캐릭터로서의 매력을 가지고 이 영화를 계속 보게 만든다.
뭐 이들의 배경이나 심리 묘사도 사실 대충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 죄의식도 없이 쟤들 다 죽여달라는 소리를 하는 청소년에 비하면 ‘상대가 누구든 절대 살인은 안된다’는 상식적인 원칙을 고수하는 호크맨에게 관객이 몰입할 여지가 좀 더 많다.
호크맨은 저스티스 리그와 JSA의 핵심 멤버 중 하나지만, 설정이 워낙 왔다갔다 하고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이 나오질 못해서 날개 달린 병풍쯤으로취급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 느슨한 얼개가 오히려 그에게 숨쉴 틈을 준 것인지, 상당히 멋진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일단 비주얼적으로도 상당한 업그레이드.
코믹스의 야성적인 가슴털 코스튬은 화려한 갑옷으로 대체되었고 황금 날개는 블랙 아담보다도 더 신화 속의 존재처럼 보일 정도.
원작에서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헐벗은 탱커인데, 영화에서는 비행기 조종부터 전략까지 도맡는 까리한 리더로 나온다. 매번 구르고 깨지면서도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모습이나, 블랙 아담에게 매번 꼬장놓는 성질머리 등 코믹스에서의 고집과 맷집도 은근히 잘 반영되어 있고.
여러 히어로들에서 이런저런 요소를 다 따다가 합친 것 같은 인상은 적지 않게 있어도, 다 섞인 맛이 은근… 나쁘지 않아…
블랙 아담과의 혐관, 닥터 페이트와의 우정, “너 이따가 나 좀 보자.”로 요약되는 스매셔와의 관계 등 다양한 캐릭터 사이의 케미도 일품.

그리고……….제가 닥터 페이트는 원래부터 좋아했어요. (수줍)
사실 코믹스에서의 닥터 페이트가 DC 코믹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한 히어로 중 하나라는 걸 생각해보면 영화에서는 파워가 엄청나게 너프된 거지만 대신 피어스 브로스넌이라는 미친 버프를 받았다.
영화에서의 닥페는 미래 예지라는 초월적인 힘보다 인간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온화한 할아버지 같으면서도 평소에도 뭔가 ‘각’이 살아있는 노련미가 제대로… 007은 영원히 007이다…

한편 사이클론과 아톰 스매셔는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어린 멤버’라는 기능적인 요소가 크지만, 그래도 어쨌든 맡은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사이클론의 비주얼은 꽤 멋지고, 스매셔의 대사와 동작 하나하나는 전부 좀 뻔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도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다. 사실 이 둘은 원작 코믹스에서 인지도가 (호크맨이나 닥페하고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낮은 편인데, 그래서 오히려 캐릭터의 기존 설정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나름의 깨알 매력을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영화는 이 4명의 배경 설명에 대해서도 거의 생략했고, 블랙 아담과 호크맨 사이의 갈등도 뭔가 거창하고 깊이있게 다룰 것 같더니 도중에 그냥 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스티스 소사이어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아웃풋 중 하나.
이게 재밌는 나, 비정상인가요?
솔직히 다 보고 나니까 너무 당황스러웠다. 오프닝에서 너무 어이가 터져서 기대를 내려놓고 봤는데, 아니 이게 의외로 볼만하네…? 근데 이게 나름 재밌었다고 생각하는 내가 쪽팔려.
개인적으로는 <샹치>나 <수어사이드 스쿼드>보다는 아주 재미있게 봤고, ‘대놓고 유치한 걸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정면 돌파하는’ 걸로는 <아쿠아맨>과 비슷한 느낌. 전반적으로 <아쿠아맨>의 질이 훨씬 높긴 하지만.
배대슈보다는 높게 쳐줄 수도 있음. 내가 호크맨과 배트맨 사이에서 호크맨을 선택하다니 이건 진짜 DC 잘못이다….

하지만 독자적인 연출이나 구성이라곤 단 한 장면도 없고 <터미네이터>, <맨 오브 스틸>, <블랙 팬서>에서 <앤트맨>, <헝거게임>까지 온갖 영화들을 다 짜깁기한 것은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무 일차원적으로 베껴서 장면장면마다 레퍼런스 원판을 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
슬로모션을 남발해 대는 액션신이나 음악에 맞춘 킹스맨식 연출 역시 신선미라곤 한 톨도 없다. 이 부분만 아니었다면 적어도 남한테 부끄러움 없이 추천은 할 수 있었겠는데….
종합해 보면, 성의없는 스토리 구성과 부족한 감정 전달, 여기저기서 무단으로 가져온 조잡함 등 잘 만든 부분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블랙 아담>이 DC의 흑역사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흑역사가 셀 수 없이 너무 많아서
뭐라고 할까, 정말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이 ‘근데 별 생각없이 보면 좀 볼만은 하네?‘라고 중얼거리게 만듭니다.
이게 기적인가? 마법인가? 아직 DC코믹스의 실사 영화판이 멸망할 운명은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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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했는데 2년이 지나 디씨는 다시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