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는 Reptile로 뱀, 거북 등 파충류를 뜻하는 말. 한국 넷플릭스에서는 <렙타일>과 <탈피>라는 제목을 둘 다 쓰고 있는데, 작품 속에서의 의미를 생각하면 ‘파충류의 탈피’도 맞긴 하다.
렙타일 (탈피)
- 감독: 그랜트 싱어
- 출연: 베나치오 델 토로, 저스틴 팀버레이크, 알리시아 실버스톤
- 장르: 범죄, 스릴러
- 개봉: 2023년 9월 22일
뭔가의 흔적만 남았다.
종합평 : ★★
렙타일(탈피) 줄거리
부유한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윌 그레이디(저스틴 팀버레이크)는 부동산 중개인인 서머(마틸다 러츠)와 사귀는 사이. 윌이 서머와 약간의 말다툼을 한 다음날, 윌은 서머가 고객에게 소개하기로 한 집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사건을 수사하게 된 톰 니콜스(베나치오 델 토로) 형사와 그의 파트너 댄 클리어리(아토 에산도)는 윌, 서머의 전남편, 그리고 윌에게 적의를 가진 스토커를 용의자로 좁혀나간다.
그러나 사건은 점점 그들의 예상을 벗어나는데…

텅 빈 껍질
먼저 이 영화는 약간 오싹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무섭지는 않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피해자가 끔찍하게 살해당하긴 했지만 그 범죄 행위 자체에 대해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는다. 영화는 경찰인 톰의 수사와 인물의 내면(트라우마와 고뇌)을 다루는 데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텅 빈 집을 비추는 담담하고 건조한 카메라, 느릿하게 흘러가는 수사 과정, 클로즈업을 바짝 당겨서 보여주는 경찰의 고뇌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세븐>을 연상하게 한다.
확실히 초반엔 ‘뭔가 있어 보인다‘. 꽤 기대했다고.

하지만 솔직히 중반부의 늘어지는 템포는 질리고, 있어보이는 겉모습에 비해 알맹이는 별로 없다. 심지어 영화를 다 보고 잠깐 되짚어보면 스토리에 상당 빈틈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척했지만 전혀 나오지 않은 단서들, 그저 분위기 조성용에 그친 몇몇 떡밥과 상당히 허무한 수사 결론 과정, 설득력이 없는 인물의 행동들.
게다가 주변 캐릭터의 개성도 너무 뻔하고 전형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의 눈
그래도 이 영화를 보면서 지루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오롯이 베나치오 델 토로 덕분. (사실 그 때문에 보기 시작했지만)
그의 눈빛과 손짓과 말투와 행동, 그 모든 면에서 피로와 트라우마가 느껴진다. 과장해서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경찰 같음…. 지치고 둔중해 보이지만 날카롭고, 유머 감각도 있지만 무섭고.
그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묘하게 빠져들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에게 의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 스포일러 주의

제목 ‘탈피’의 의미
얼핏 보면 제목과 작중 범죄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 서머가 죽기 전에 집 구석에서 뱀이 탈피한 껍질을 발견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파충류에 대한 언급도 없다.
하지만 ‘탈피’는 작중 거의 모든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슬픔에 잠겨있던 윌은 금방 새 여자를 만나 멀쩡한 표정으로 돌아다니고, 톰의 친구이자 믿음직한 동료들은 사실은 탐욕스러운 부패 경찰이었음이 드러난다. 즉 영화의 제목은 겉으로 보이는 기존의 모습을 벗고 본모습을 드러낸다는 의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톰은 그들로부터 같은 편이 될 것을, 그러니까 ‘탈피’를 강요당한다. 훈장도 받고, 그동안 했던 고생도 잊고, 같은 편이 되자 이거지.
그러나 톰은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다. 훈장도 받고 좋게좋게 사건을 종결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아서 수사를 계속 진행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그는 더욱 양심적이고 강인한 경찰로 거듭난다.
그 역시 탈피했지만, 동료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주디가 톰의 손을 왁스에 담갔다가 뺀다. 이는 작중에서 톰의 손 부상을 치료하는 요법이기도 하고 제목의 의미를 명확하게 암시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하면, 이 영화가 상당히 깊이있는 주제를 의욕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앞서 말한 베나치오 델 토로의 압도적인 연기력과 더불어 흥미로운 볼거리가 될 수 있을 뻔..
하지만 그 주제에 감탄하기에는 영화의 실질적이고 세심한 부분들이 너무 후달린다. 볼 수 있는 것은 반투명한 빈 껍질뿐, 본체는 어디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