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TV

스노우 걸(2023) 리뷰: 보기 불편한 것을 보라

넷플릭스 스노우 걸 포스터
넷플릭스 스노우걸 줄거리

스노우 걸 줄거리

스페인 말라가의 축제 도중 부모가 잠시 손을 놓은 사이 5살짜리 소녀 ‘아마야’가 납치당한다. 신문사의 인턴 기자인 미렌은 아마야의 부모가 딸을 찾기 위해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몇 명의 용의자들을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몇 년 후, 미렌 앞으로 살아있는 아마야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가 배달되는데….

스노우 걸 미렌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스페인 드라마는 뭐든 좀 감정이 펄펄 끓는다는 인상이 있는데, <스노우 걸>은 오히려 차분하고 텁텁한 톤을 유지한다. 미렌의 감정적 몰입이나 벨렌 경위가 아마야를 찾기 위해 헌신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건을 다루는 시선은 상당히 담담하다.

또 사건의 전개도 다소 현실적이고 느린 편으로 드라마는 9년에 걸친 시간대를 서로 교차시키면서 이야기를 촘촘히 쌓아나간다. 아마야가 실종된 2010년, 그리고 2016년, 2019년이 번갈아 나오는 구성. 

이런 구성은 범인을 잡지 못하고 단조롭게 흘러가는 시간에 약간의 흥미를 불어넣는다.

불안하고 서툰 대학생 인턴이던 미렌은 2016년 이후엔 꽤 당당하고 능력있는 기자가 되어있고, 아나와 알바로는 결국 딸을 잃어버린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이혼한다.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한 사건의 피해자와 그 주변 인물들,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 기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다룬다는 점에서 약간 다큐멘터리스러운 느낌까지 있다.

하지만 <스노우 걸>이 담백하고 냉정한 드라마인 건 아니다.

담담한 화면에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를 통해 묵직한 감정적 무게를 더하는데, 특히 딸이 살아있다는 것을 처음 확인한 부모의 반응이나 삶을 갈아가면서 사건에 매달리는 후배인 차파로가 대신 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 과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파고드는 연출이 돋인다. 

또 무엇보다 주인공인 미렌은 대단히 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으며 그 고통이 배우의 섬세하고 강한 눈빛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된다. 정말 끊임없이.

스페인 넷플릭스 스노우 걸

여자로 살기 좆같은 세상

<스노우 걸>은 아마야와 미렌이 당한 범죄를 다루면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로 문제를 확장시켜 나간다. 

미렌은 성범죄 피해자다. 처음에는 은근한 암시와 복선으로만 표현되지만 점점 그녀 본인이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하는데, 미렌이 나이가 들고 더 당당해져도 과거의 악몽과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미렌의 엄마가 전화통화 속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미렌은 엄마에게 전혀 의지하지 못하고, 엄마도 딱히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사실 ‘과거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비쩍 마르고 창백하고 다크서클이 내려와 아싸스럽지만 매력적인 여주인공’은 범죄 스릴러물의 쌔고쌔고 쌘 클리셰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에선 그런 트라우마를 가볍게 다루거나, 그것을 짱 센 멘탈로 이겨내 범죄 해결에 헌신하는 동기 정도로 다룬다.

일반화하고 싶진 않지만 거의 모든 남성 작가들과 많은 여성 작가가 쓰는 대부분의 소설 속 여주인공이 가진 트라우마는 여주인공의 까칠한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일종의 모에 요소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걸 이렇게 몸서리치게 끔찍하게 드러내는 작품은 별로 없었다. 원작 소설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미렌의 상처와 트라우마에 초점을 강하게 맞추고 있다.

원작 작가는 남성이고 드라마 제작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에서 드라마의 각색이 얼마나 들어갔을지 대충 예상되긴 하지만.

미렌은 남자들의 시선, 가벼운(가벼운?) 성희롱이나 폭력의 위험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다. 심지어 대낮에 낯선 남자가 다크웹 사이트에서 그녀를 봤다며 갑자기 끔찍한 과거를 들추기도 한다. 

반면 남자들은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다. 길거리를 가다가 그녀를 쳐다보거나 면전에다 대놓고 불쾌한 발언을 하는 것은 물론 아동 성폭력범이 자기 딸이 보고 싶다고 징징거리질 않나, 피해자 앞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나 네가 찍힌 불법 동영상 봤어.”라고 말하기까지.

차라리 미렌에게 사적인 감정 1도 없고 그저 속물인 수르 신문사 편집장이 작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남자일 정도;

이것은 미렌이 겪는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 공포나 불쾌감은 감상자에 의해 사회 현상으로 확대된다. 

그 정도와 심각성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비슷한 두려움을 느껴보지 않은 여자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며, 반대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드라마는 미렌의 지독한 트라우마를 내내 집요하게 다루고, 미렌의 표정이나 긴장감 있는 연출 때문에 보는 사람 마음이 불편하다. 특히 사건에 대한 정보를 듣는 대가로 변태 새끼한테 사진을 찍혀야 하는 장면은 정말 고통스럽다. 

성범죄 트라우마나 공포심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어서 관련 소재에 민감한 사람들에겐 추천할 수 없고,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편안하게 보기 힘든 작품인 것은 사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는 이 드라마가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할 듯. 거의 확신함…ㅋㅋ

하지만 불편하기 때문에야말로 정면으로 쳐다봐야 하는 것도 있는 법. 

시선은 그 자체로 무기가 될 수 있다. 범인이 아마야를 찍은 CCTV 화면은 그 자체로 폭력이지만, 반대로 수많은 시민들이 공개된 그 영상을 보고 아마야를 돕기 위해 이런저런 정보를 제보한다. (벨렌 경위는 영상을 공개할 때 “수많은 눈이 필요하다”라고 언급) 또 성범죄자들은 카메라로 미렌을 찍고 그녀를 학대했지만 미렌이 그들을 죽인 무기 역시 카메라였다. 

이름과 인격을 잃고 사라지는 피해자들을 찾아낼 수 있는 건, 그걸 불편해하고 모른척하지 않는 시선뿐. 

그러니 다들 정말, 정말로 많이 불편해 했으면 좋겠어.

스페인 넷플릭스 스노우걸 결말

5화의 문제점

드라마는 6화중 4화까지는 매우 천천히, 느릿느릿하게 전개된다. 몇 명의 용의자가 나오고 몇 번의 실패를 거친 후 다시 아마야의 행방은 오리무중인 상태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러다가 5화는 갑자기 통째로 납치범의 시점에 할애하는데….

.

.

.

.

.

스노우걸 결말 범인

아마야를 납치한 범인은 바로 아마야의 엄마인 아나가 운영하는 산부인과에 다니던 불임 환자 이리스. 이리스는 아이를 가지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망하는데, 남편과 함께 축제를 지나가다가 아빠와 헤어져 울고 있는 아마야를 발견한다. 아마야가 아나의 딸이라는 것도, 바로 옆에서 부모가 애타게 아이를 찾는 것을 들으면서도 이리스는 그대로 아마야를 납치한다.

이리스는 아마야를 어르고 달래며 수년 후 결국 아마야가 친부모를 잊게 만들고, ‘훌리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한다. 제법 행복한 가정인 척 보이지만 실상은 “바깥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있다”며 훌리아가 바깥에 나오거나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하게 하고 방에 카메라를 달고 감시, 감금하고 있는 상태.

그러나 수년이 지나서도 미렌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아마야 실종 사건을 파고들고 아나가 딸의 생사를 걱정하는 방송을 본 이리스는 안심시킬 요량으로 아마야(훌리아)의 영상을 미렌에게 보낸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수사는 오히려 집요하게 계속되고, 대출 상환 독촉을 하러 온 은행 직원이 집안의 수상한 정황을 눈치채자 이리스는 그를 쏴버리고, 부부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이리스의 남편은 경찰에 자수하려고 하나 경찰서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

그리고 미렌은 영상을 찍은 아날로그 VHS를 추적해 이리스의 집에 찾아온다. 이리스는 훌리아를 숨기지만 미렌은 이리스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고, 차를 타고 떠나는 척 집을 감사한다.

그날 밤 이리스는 훌리아를 차에 태워 도망치다가 자신을 따라오는 미렌을 보고 자살을 결심, 낭떠러지에 차를 갖다 박고 사망. 그러나 다행히 훌리아는 살아남고, 미렌은 경찰을 불러 그녀를 구출한다.

… 말하자면 아마야의 납치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웃집 아동 성범죄자 및 그의 더러운 인터넷 친구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다소 허망할 수는 있어도 뭐 이 사실 자체는 납득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5화의 존재에 무척 실망하긴 했음.. 

미렌을 중심으로 여성 문제에 진지하게 몰입하다가 갑자기 알고 보니 미친년이 범인이었고 그 동기마저 너무나 뻔하고 ‘가정적’이니 솔직히 김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동안 계속 강조해 왔던 어떤 사회적인 메시지도 이리스의 광기와 세뇌된 훌리아의 모습에서 매우 희미해지고 만다.

……. 다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소설이 드라마화되면서 약간 강조하는 부분이 달라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긴 함.. 그렇다면 좀 아다리가 안 맞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하고.

스노우 걸 결말 줄거리

‘스노우 걸’의 의미

뭐, 그래도 엔딩에서 아마야와 미렌의 문제를 엮으려는 시도를 하긴 하지만. 제목의 의미도 여기에서 밝혀진다.

사실 작중 배경인 말라가는 겨울에 눈도 오지 않는 아름다운 스페인 남부 지역이라 ‘눈 속의 소녀’란 제목이 매우 뜬금없었다. (아마야가 납치된 것도 한겨울인데 등장인물들의 옷차림이 우리나라 겨울의 그것이 아님)

드라마에 눈이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기도 하고.

엔딩에서 아마야 사건으로 책을 쓴 미렌은 출간 행사에서 직접 책의 일부분을 낭독한다.

미렌이나 아마야나 모두 폭행당하고 어둠 속에 끌려간 여성으로, ‘스노우 걸’은 하얀 배경에 덧없이 사라지는 눈처럼 실종되어 버린 피해자들을 뜻한다. 

그리고 미렌에게 또 다른 ‘스노우 걸’의 사진이 배달되면서 이러한 피해자들은 아직도 너무나 많고 앞으로 또 미렌이 계속 찾아나갈 것임을 암시하면서 끝난다.

… 눈과 관련한 암시가 너무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갖다 붙이기라는 인상은 지울 수 없지만. 

스노우 걸 결말 주인공

종합평: 보고 불편해하라

종합해 보면 <스노우 걸>은 (원작의 의도인지 드라마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된 건지는 몰라도) 단순히 여성을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깊고 무겁게 그리는 보기 드문 스릴러다.

수위 자체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담담한 화면에 잘 정제된 연기로 보는 사람에게 더없는 불편감을 안기는데, 한편으로는 자극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불편해도 마주해야 할 현실이라는 사실을 함께 전달.

그러나 정작 본 사건의 얼개는 조금 어설프고, 미렌의 과거를 다루는 무게감과 아마야 사건의 진실이 조화롭게 어울리지는 못한 느낌. 범인을 찾아나가는 과정도 매우 지리멸렬해서 수사물로서의 재미는 덜한 편.

요컨대 스릴러, 범죄 수사물로서의 재미만을 찾는다면 그다지 추천할 만한 작품은 못된다. 그냥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절대.

…뭐, 완전히 사회 비판적인 작품은 아니지만 (특히 여성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불편함을 후벼 파는 듯한 연출이 있기 때문에 관련 소재에 민감한 사람은 주의할 것.

솔직히 그냥 적당하게 시간 때우려고 고른 스릴러인데 ‘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주말 대낮부터 이렇게 불편한 걸 보고 있나’같은 생각이 안 들었던 건 아니지만, 결국 눈을 돌리지 않고 후루룩 다 보긴 했다.

….. 이건 부귀영화의 문제는 아니니까.

댓글 남기기

Cabinet of Wonder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