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Film

블랙폰(2021) 리뷰: 아이야, 스스로를 구하라

블랙폰 포스터
블랙폰 스틸

블랙폰 줄거리

1978년 덴버 시 외곽. 마을에서 소년들이 하나씩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유약한 성격으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피니 역시 가면을 쓴 남자에게 납치를 당해 지하실에 갇힌다. 

그런데 지하실에 있던 전화선이 끊긴 전화기가 울리더니, 전화를 받은 피니는 똑같은 납치범에게 살해당했던 소년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

한편 엄마로부터 특이한 영감을 물려받은 피니의 여동생 그웬은 실종된 소년들의 꿈을 꾸고, 오빠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블랙폰 그래버 에단 호크

얼마나 무서울까?

복고풍 배경과 어린아이가 주인공인 호러물이라는 조합은 스티븐 킹의 <그것>을 연상시키는데,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위 자체는 <그것>이 높은데 <블랙폰>이 더 쫄림…

감독인 스콧 데렉슨은 <닥터 스트레인지> 외에 <인보카머스>, <살인 소설>같은 호러 영화로 유명…. 물론 그의 전작들에 비하면 이번작 나름대로 매우 매우 매우 순한 맛이긴 하다. 오히려 감독의 악명을 믿고 쌩호러를 보고 싶었다면 실망하게 될 정도.

하지만 짬바에서 나오는 쫄깃한 연출력이 일품이며, 상당히 단순하고 뻔한 줄거리임에도 내내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피니가 납치범이 잠든 틈을 타 자물쇠를 열려는 장면이라든지, 녹이 슬고 낡은 지하실 벽을 스으으윽 훑는 카메라 워킹이 진짜 말도 안 되게 쫄린다. 실제로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뭔가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을 주는 방식이 대단히 노련함…

또 전화 속의 소년들이 그래버의 행동이나 자신들이 시도한 탈출 방법을 알려주는 설정은 잘못하면 유치하고 안 무서워질 수도 있는 부분인데, 효과적인 대사 사용과 능숙한 연출로 완급을 조절하면서 계속 긴장감을 유지한다. 

특히 그웬이 꿈을 통해 납치되었던 소년의 기억에 아예 들어가는 장면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꿈과 현실이 뒤섞이는 연출이 무척 인상적.

다시 공포도에 대해 논하자면 <그것>이나 <23 아이덴티티>보다는 무섭고, 초-본격 호러물, 예를 들면 감독의 전작 <살인 소설>이나 뭐 <애나벨> 시리즈 같은 작품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에 색다르게 다가오는 면이 있으며, 성장물에 호러를 끼얹은 느낌. <그것>이 성장물 80+호러 20이라면 <블랙폰>은 성장물 30+호러 70 정도 됨…

영화 그것

<그것>과의 비교

<그것>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기본적인 컨셉이 비슷한 두 작품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초자연적인 존재인 미친 삐에로에게 말려들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로, 작중에서 ‘그것’은 아이들의 두려움을 즐기며 초능력을 이용해 온갖 공포스러운 상황을 조성한다. 작품의 판타지적 요소는 인위적인 대결 구조를 더욱 강화하며 아이들의 성장 서사를 분명하게 만들어준다.

좀 거칠게 말하면, 그것은 작품 내에서 주인공을 성장시키기 위한 장애물이다.

한편 <블랙폰>의 그래버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는 그리 무섭지 않다. 에단 호크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써야 할 정도니까. 가면이 좀 흉측하긴 해도 뭐 이 정도면 견딜 만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유령이 된 피해자들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고문 장면은 생략함으로써 필요 이상의 압박감을 주지도 않는다. 

그래버가 공포스러운 존재인 것은 그의 이상한 마스크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규칙보다는 애를 냅다 패고 납치해 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폭력성에 기인한다. 

그가 피니 이전에 납치한 소년들이 운동선수, 덩치가 크거나 뛰어난 격투 실력을 가졌다는 걸 생각해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 어떤 되바라진 아이라도 그를 해치려고 작정한 어른에게는 이길 수가 없다. 

이 엄청난 힘의 불균형이 <블랙폰>의 공포 근간을 이루고 있다.

어른에게 위협받는 아이들.

부모에게 맞는 자식들.

블랙폰 그래버

아이들에게 부과된 공포

그래버가 상징하는 건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그 모든 부모다.

자신에게서 도망치려 한 ‘나쁜 아이’에게 벌을 주는 그래버의 행동은 딸이 말썽을 피운다고(심지어 오해였음) 냅다 허리띠로 때리는 테런스의 행동과 똑같다.

게다가 지가 납치해놓고 일부러 문을 열어둠으로써 아이가 탈출을 시도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심하게 악질. 

그래버가 허리띠를 들고 앉아있는 장면에서는 어른이 아이를 때리는 것은 아이를 가르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냥 먼저 패고 싶은데 건수를 기다릴 뿐이라는 섬뜩한 은유가 성립한다.

참고로 그래버는 얼굴에 분을 칠하거나 마스크를 쓰는 등 맨얼굴로 나오지 않는데, 후반에 자신의 맨얼굴이 드러나자 크게 당황하는 것을 보면 얼굴을 가리는 행위에 뭔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맨얼굴의 에단 호크는 무섭지 않으니까 그렇겠지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가정 폭력을 행하는 부모가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신을 합리화(“네가 잘못했으니까 맞을 수밖에 없다”)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부끄러움을 감추는 게 아닐까..

…. 혹은 저 마스크의 모양대로, 악마 같은 존재라는 상징일 수도 있고.

그래버 역시 예전에는 가정 학대의 피해자였다는 묘한 뉘앙스가 있는데 작중에서 그의 과거나 심리는 거의 다뤄지지 않아서 캐릭터로서의 깊이가 없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던 점. 

그래버는 가정 폭력, 조금 더 폭넓게는 아이에게 가해지는 어른의 폭력을 인간화시킨 것에 가깝다.

그래서 엔딩에서 아버지가 남매에게 무릎을 꿇고 울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장면은, 단순히 표면 그대로의 장면이 아니라 용서를 빌어야 할 부모와 사과를 받아야 할 아이들의 구도를 명확하게 상징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낀 지점은, 아버지가 용서를 빌지만 셋이 얼싸안고 한 가족으로 결합하는 뻔한 할리우드식 엔딩이 나지 않았다는 점. 

테런스가 적어도 갱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다행이긴 하지만, 피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웬은 피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모습은 여전히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그들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블랙폰의 주인공 남매

너희 스스로를 구하라

<블랙폰>은 어린아이가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 중 하나를 다루고 있으나 아이들을 단순히 연약한 피해자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있지만, 분명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피니는 소심하고 유약해 보이는 것치고는 의외로 결단력과 운동 신경도 조금 있는 것 같음. 제법 강투수라고 칭찬받기도 했고, 그래버를 매섭게 노려보거나 납치당할 때 그래버의 팔을 긋는 등 나름의 저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억눌리고 수동적인 상태입.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이나 학대하는 아버지를 볼 때 (어차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전혀 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화 속 소년들의 말을 듣고, 특히 친구였던 로빈의 조언으로 힘을 얻고 맞서 싸울 결심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심경의 변화가 좀 갑작스럽고 뻔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그나마 배우가 잘 커버해 낸다. 왜냐하면 사실 피니는 눈빛 때문에 처음부터 별로 그렇게 연약해 보이진 않거든.

“넌 원래 싸울 수 있어!”라는 말은 갑작스럽게 복선도 없이 나오는데 왠지 설득력이 있단 말이지. 수동적이면서도 신중하고, 내면에는 억눌린 투지가 있는 캐릭터를 완성시킨 건 순전히 배우의 몫.

그리고 피니의 여동생인 그웬은 무척 귀엽다.

피니는 그웬이 아빠한테 맞을 때 동생을 구하고 싶으면서도 나서지는 못하는데, 그웬은 반대로 피니가 일진들에게 맞고 있을 때 냅다 짱돌을 들고 달려든다.

아주 당찬 성격이면서도 오빠를 찾게 도와달라며 예수님께 기도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입술을 꾹 깨무는 게 정말 짠하고 사랑스럽다. 믿을 수 없게 감동적인 배우의 연기력도 한 몫하고.

에단 호크가 맡은 그래버는 오히려 캐릭터성이 너무 얕아서 별 감명을 남기지 못하고, 어린 배우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영화 자체가 아이들의 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피니가 결국 그래버를 죽이고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에 죽어간 소년들 모두의 도움 덕분이었다. 그들이 전화를 통해 해준 조언이 하나하나 쓸모를 발휘했으니까.

그리고 소년들이 피니에게 원했던 것이 다음 아닌 ‘그래버의 죽음’이라는 사실은 꽤나 무섭고도 통쾌한 포인트. 

아이들의 궁극적인 대항이 학대자를 죽여버리는 것이라는 결말은 꽤나 과격하지만, 한편으로는 호러 영화답기도 하고 좋다고 생각해.

힘의 불균형을 완벽하게 깨버리는 결과.

영화 블랙폰

종합평: 호러+성장물의 미묘한 간극

영화 자체만으로 보았을 때 <블랙폰>은 그냥 호러/스릴러로 보기엔 무섭지 않고 훈훈한 성장물이라고 보기엔 좀 우악스러운, 중간에 낀 느낌이긴 하다. 

일단 전개가 매우 뻔한데 가정 폭력이라는 프레임을 강하게 의식하지 않으면 그다지 공포에 이입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피니가 단번에 전화를 받고 이야기를 믿는 것, 그웬의 꿈 이야기를 듣고 경찰이 열심히 출동해 준 것이나 다소 작위적인 함정 전개 및 아버지의 갱생 등 핍진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부분.

단순무식한 호러 아래에 숨겨진 맥락을 흥미롭게 풀어나갈 수 있었는데 그 레이어가 깊지 못하고 마무리가 허술한 게 아쉽다. 이 포텐셜로 좀 더 막 나갔어도 되었을 것 같은데 펼치다가 만 느낌.

그래도 인상적인 어린 배우들과 노련한 연출, 꽤나 진지한 소재 접근, 호러+성장물이라는 독특한 조합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런 어중간한 시도, 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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