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의 밤
- 장르: 스릴러, 범죄
- 감독: 장항준
- 출연: 강하늘, 김무열
- 개봉: 2017년 11월 29일
흥미로운 플롯과 날선 연기력이 초보적인 연출 때문에 빛이 바랬다. 사실은 반전이나 사건의 진실보다도 주연 두 명을 보기 위한 영화. 이거 대학로의 2인극이었으면 기깔났을 텐데.
종합평 : ★★★
※ 이 리뷰에는 <기억의 밤>의 전반적인 줄거리, 엔딩 및 구체적인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억의 밤 줄거리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과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온 삼수생 진석(강하늘). 진석에게는 뭐든지 잘하고 다정한 형 유석(김무열)이 있고, 두 형제의 사이는 무척 좋다.
진석은 처음 와보는 집이 왠지 낯익다고 느끼는데, 밤중에 잠긴 문 너머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계속 누군가에게 고문당하는 악몽을 꾼다.
비오는 밤 유석과 함께 산책을 나간 진석은 유석이 웬 남자들과 싸움을 벌이다 차 안으로 끌려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형이 사라진 후 19일 째, 유석은 홀연히 돌아온다. 그러나 그는 납치되었던 동안의 기억은 전혀 없는 상태.
진석은 돌아온 유석이 왠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가 진짜 형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스포일러 없는 리뷰
플롯 자체는 꽤 인상적이고, 특히 엔딩 부분에서 두 주연의 연기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둘 다 뮤배 출신이기도 하고, 왠지 약간 2명 중심으로 돌아가는 소규모 극같은 느낌도 난다.
다만 치밀한 설계와 반전 스릴러를 기대했다면 약간 예상과는 엇나가는 것을 보게 될듯. 반전에 대한 단서를 대놓고 많이 남겨주기 때문에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진석보다 더 빨리 진실을 가늠할 수 있다.
후반부를 보면 사실 반전 그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단 진석과 유석의 관계와 심리가 포인트.

기억의 밤 전체 줄거리 &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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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석은 유석이 밤에 몰래 나가거나 사고를 당한 왼쪽 다리가 아닌 오른쪽 다리를 저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유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진석이 잘못 본 것이라며 넘긴다.
진석이 신경쇠약 때문에 복용하던 약을 깜빡하고 먹지 않은 날, 그는 공부를 하다 책상에 엎드린 채 잠이 든다.
유석은 그 옆에 가만히 서서 한동안 진석을 지켜보더니, 진석의 눈 앞에서 샤프심을 딸깍거리다가 눈을 찌르기 직전 샤프심이 떨어지자 샤프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간다. 사실 샤프 소리에 깼지만 계속 자는 척하고 있던 진석은 그를 뒤쫓아 나간다. 그리고 유석이 다리를 절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택시를 타는 것을 목격한다.
진석은 그를 따라 택시를 타고 쫓아가는데, 유석이 담배를 피우며 평소와 전혀 다른 말투를 쓰는 것을 보게 된다. 또 납치 사건 때 집에 찾아온 형사들이 유석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광경에 그들이 진짜 형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진석은 남자들에게 들켜 쫓기지만 간신히 숨지만, 곧 뒤에 있던 유석에게 붙잡혀 정신을 잃는다.
…….라는 꿈을 꾼 진석은 유석을 극도로 경계하며 지난밤 있었던 일을 묻는다. 하지만 유석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 대답하고, 진석이 약을 먹지 않아 심란한 꿈을 꾼 것이라며 달랜다.
유석의 말에 납득하고 사과하는 진석. 그러나 책상 아래에 떨어져 있던 샤프심을 줍고 어젯밤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택시를 타고 갔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유석이 이를 언급한 것에 의심을 품는다.
진석은 엄마에게 형이 진짜 형이 아닌 것 같다며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날 밤, 문 틈으로 엄마가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이 새끼가 눈치챈 것 같아.”란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엄마 역시 한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엄마가 인기척을 눈치채자 진석은 바깥 창문을 통해 방으로 돌아가지만 비에 잔뜩 젖어서 들켜버리고 만다.
부모님까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진석은 필사적으로 집에서 도망쳐 경찰서로 향한다. 그는 가족들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신고하지만 경찰들은 진지하게 상대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진석이 77년생이라 21살이라고 말하자 주변에서 다들 웃더니, 지금은 1997년이 아닌 2017년이라고 말해준다. 달력과 TV 뉴스를 보고 이를 확인한 진석이 거울을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폭삭 나이든 노인의 모습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진석은 유석과 부모를 마주하고, 유석은 그가 20년 전에 한 주택에 들어가 여자와 딸을 살해한 살인범이라고 알려준다.
유석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살인범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드디어 범인을 찾아냈지만 진석은 유석의 고문에도 자신의 살인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최면을 통해 진석이 심리적인 이유로 기억을 스스로 잊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유석은 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연극을 하기로 한다.
최면술 박사가 아버지, 아는 마담이 엄마, 그리고 자기 자신이 진석의 형이 되어 진석의 가족인 양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주택에 이사한 것처럼 꾸민 것. 진석에게 충격을 주어 기억을 되찾게 할 생각이었지만 진석은 끝내 기억하는 것을 거부하고 도망친다.
유석은 차로 진석을 쫓다가 전봇대에 추돌하고, 진석은 유석이 피를 흘린 채 쓰러진 것을 보고 다시 도망치려다 차에 치인다.
그리고 진석은 모든 것을 떠올린다.
1997년,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진석은 교통사고를 당해 부모님을 잃고, 진짜 형인 유석은 크게 다쳐 반년 동안 의식 불명인 상태. 형을 살리기 위해선 수술을 해야 하지만 IMF가 터져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았던 탓에, 진석은 인터넷에 돈을 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글을 올린다. 그리고 한 남자에게서 살인도 해줄 수 있냐는 메시지를 받는다.
“너는 돈이 필요하고 나는 너의 절박함이 필요하니까.”
진석은 고민 끝에 결국 남자의 지시대로 한 주택에 들어가 여자 한 명을 죽이기로 한다.
그러나 어린 아들과 자고 있던 여자를 본 그는 결국 마음이 약해져 돌아선다. 잠에서 깨어난 여자는 칼을 든 진석을 발견하지만 진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갈 테니 소리를 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여자는 입을 다문다.
그러나 위층에서 여자의 딸이 내려오다가 진석을 보고 비명을 지르고, 진석은 그녀를 쫓아가다 얼결에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그리고 뒤이어 온 여자마저 죽인다.
얼결에 두 명이나 죽이고 넋이 나간채 돌아가려던 진석은 방에서 나온 어린 아들을 만난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쓰고 100까지 열 번 세면 엄마와 누나를 데려와 주겠다.”고 말하고 집을 빠져나온다.
자신에게 여자를 죽이라고 지시한 사람이 여자의 남편(최원장)이었음을 눈치챈 진석은 그에게 가서 어떻게 가족에게 그럴 수 있냐며 따진다. 최원장은 아내의 사망보험금으로 병원을 살리고 아이들을 돌볼 계획이었다고 항변한다. 그는 진석이 지시와는 달리 자신의 딸까지 죽였기 때문에 돈도 줄 수 없다며 달려들지만, 몸싸움을 하다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그리고 다시 현재, 병원에서 눈을 뜬 진석.
그의 옆에는 유석이 기다리고 있다. 유석은 독을 주사해 진석을 죽이려고 하지만, 그 순간 진석은 그에게 “유가족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는 말을 한다.
진석이 기억을 되찾은 것을 확인한 유석은 직접 사과하라며 “1000까지 세면 엄마 데려온댔잖아.”라고 말한다. 그가 바로 진석이 죽인 일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인 어린 아들, 성욱이었던 것.
진석은 성욱에게 미안하다고 되뇌이고, 성욱은 그에게 살인을 지시한 사람이 누군지 묻는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 앞으로 보험을 들어놨다며, 아버지가 시킨 것이 아니냐고 캐묻지만 진석은 “나 혼자 했다”고 답한다.
그러나 성욱은 진실을 확인하고, 진석에게 “잘 살아라.”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난다.
병원 복도를 멍하니 걷던 그는 막다른 곳의 창문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같은 시각, 진석 역시 성욱이 놓고 간 주사기를 팔에 놓고 자살한다.
1997년 5월. 진석은 가족들과 차를 타고 떠나기 전 사탕을 먹고 있는 어린 성욱과 만난다. 성욱이 가족들과 화기애애하게 가는 모습을 보고 그가 계속 미소를 짓는 것으로 영화는 끝.

반전 영화가 아닌 반전 영화
포스터나 광고도 그렇고 반전 중심인 스릴러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실 그렇게 반전만 노린 작품은 아니다.
왜냐하면진짜 대놓고 단서를 주기 때문.
영화의 반전은 두 개인데, 하나는 진석의 가족들이 다 가짜란 것이고, 두번째는 지금이 1997년이 아니라 2017년이라는 것. 근데 어느 정도 눈썰미가 있다면 둘 다 금방 눈치챕니다.
일단 비오는 날 밤에 산책 가자는 형은 수상하잖아…
뜨듯미지근한 부모님의 반응도 그렇다. 큰 아들이 납치되었다는데 부모의 반응이 뭔가 좀 침착하고.
사실상 반대 단서, 그러니까 유석이 수상하지 않다는 증거는 안경 쓴 김무열의 진짜 착해보이는 웃음밖에 없음… 너무 연기를 잘해서 순간 ‘어 진짠가?’ 싶을 정도긴 하지만.
그리고 시대 배경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
당장 처음부터 이삿짐 센터 아저씨가 진석이 유석을 형이라고 부르자 이상하게 여기는 장면이나, 20대일 진석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도 금방 눈에 띈다. 또 작중 진석이네 집 인테리어와 차만 완전 레트로고 화면 때깔 자체는 묘하게 현대풍인 게 전반적으로 뭔가 엇나간 인상을 준다. 옆에 지나가는 차들도 다 2000년대 이후 차종이고 번호판도 마찬가지.
(특히 90년대 이전 출생이라면 강렬하게 위화감을 느끼게 되어 있음)
‘충격적인 반전’이 결말이 아닌 중간 부분에서 밝혀지는 것도 이 영화의 본질이 반전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반전이 밝혀진 이후가 영화의 본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석은 누구이고, 왜 진석에게 이런 일을 했는가?
진석은 왜 20년의 기억을 잃어버렸는가?

잊어야 하는, 잊을 수 없는 밤
‘기억의 밤’이라는 제목은 진석과 성욱 모두에게 해당된다. 각자에게 반대의 의미로.
진석은 그 밤을 잊어야만 했고, 성욱은 그 밤을 잊을 수가 없었고.
진석은 필사적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거부한다. 처음에 진석이 사람 죽인 적 없다고 뻗댈 때는 이 새끼가.. 싶지만, 밝혀지는 그의 회상을 보고 나면 상당히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 그 밤은 정말로 고통스러웠고, 잊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성욱은 진석에게 이를 악물고 “잘 살아라.”고 말하지만, 결국 기억을 떠올린 진석은 죽음을 택한다.
한편 진석에게 기억을 되찾게 하려는 성욱의 집착은 무섭다 못해 경이로울 정도. 보통 맨정신으로는 못하지? 이런 거.
반전을 알고 보면, 자기 집에서 자기 가족을 다 죽인 살인자가 “이 집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말을 할 때나 진석이 헛소리할 때 그가 옆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만으로도 착잡하다.
그가 살아온 이유는 오직 그 밤 때문이다. 그날 밤의 살인자를 찾아서 복수하는 것.
하지만 그 자신도 내심 진짜 범인에 대해서 짐작하고 있었고 복수할 대상이 없다=삶의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 역시 더 이상 살지 못한다.
둘의 관계는 굉장히 강렬하고, 주연 배우의 연기도 서로 밀리지 않는다.
사실 따져보면 기승전 최면에 의한 스토리의 진행이 약간 어설프고, 전후반부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 영화 내내 삐걱이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앞에서 반전 쓰느라 후반부의 동력이 모자란 느낌.
아예 그냥 1부는 진석의 시점, 2부는 성욱의 시점으로 가면서 둘을 합쳐버리거나.. 좀 더 서사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구성을 다르게 했다면 진짜 좋았을 것 같은데.

초보 감독의 스릴러
스릴러 장르인데 영화의 핵심이 등장인물들이 숨기고 있는 감정이라는 점과 서정적인 엔딩이 묘하게 <장화, 홍련>을 연상하게 한다. (동급이란 얘기는 아님)
하지만 스릴러적인 연출에서도, 심리 묘사에서도 한끗씩 부족하다.
음악이 너무 올드한데 이게 몇 년 전 영화라 그런지 아니면 그냥 구린 건지 헷갈림… 아니, 그래도 7년이면 무조건 세월 빨이라고 하기도 좀 그런데..?
잠긴 문이 끼이익 열리는 장면 같은 경우도 오케스트라가 너무 쿵쾅쿵쾅대서 오히려 긴장감이 덜해지는 역효과가 난다.
그리고 음악 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연출이 좀… 지나치게평범하다? 꽤 긴장감있는 설정과 매력적인 아날로그 배경을 가지고서 이렇게 평범한 건 오히려 평타 이하 아닐지.
특히 거의 모든 배경 상황을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는 건 좀 후지다… 영화가 중반까지 주요 서사를 내레이션으로 풀고 텅텅 빈 심리 묘사를 배우의 연기로 때운다.
진석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좀 어영부영 넘어가는 부분이 있고, 성욱이 오직 살인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에 받쳐 버텨왔을 시절도 암시만 된다.
ㅅㅂ 아니 근데 너무 연기를 잘해…
살인을 저지르고 멘탈이 제대로 터져서 “내가 소리지르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울부짖는 강하늘이나, 진석이 “나 혼자 했다”고 했음에도 진실을 짐작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김무열은 그냥 그 장면만으로 그 캐릭터를 다 보여줌…
병실 씬은 거의 2인극같은 느낌을 줄 정도.
그에 비해선 엔딩 연출이 상대적으로 다소 성의 없다고 느껴질 정도. 잘하는 배우들 데려왔다고 빈 곳을 연기로 땜빵하는 건 알겠는데 자꾸 이러면 영화가 버릇 나빠져요..

종합평 : ★★★
감독이 스릴러 초보인 게 은근히 티가 나는데, 충분히 팽팽한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설정이나 장면들이 좀 묘하게 밋밋하다. 특히 (지금이야 개봉한 지 꽤 되었지만) 개봉 당시에 ‘누가 누구를 속이는가’라며 광고했던 것치고는 더.
완전 ‘반전 영화’로서 즐기기엔 너무 쉽고 후반부의 감정선이 많이 무거운데, 그렇다고 쫀쫀한 관계성과 심리에 집중하기엔 묘사가 얄팍해서 좀 어중간한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플롯 자체는 흥미로웠고 배우들의 연기는 텅 빈 기억을 강렬한 감정으로 채운다. 비가 오는 밤에 보면 좋을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