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Film

추락의 해부(2024) 리뷰, 해석 : 낱낱이, 샅샅이

추락의 해부 포스터

추락의 해부

  • 감독: 쥐스틴 트리에
  • 출연: 산드라 휠러, 스완 아를로
  • 장르: 드라마, 범죄, 스릴러
  • 개봉: 2024년 1월 31일 (한국)

낱낱이, 샅샅이, 갈갈이 찢어지고 남은 여운.

2시간 30분은 결코 짧지 않지만, 다 보고나서 더 오래도록,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종합평 : ★★★★



추락의 해부 리뷰

추락의 해부 줄거리

알프스 산맥의 외딴 집에서 살고 있는 유명 작가 산드라(산드라 휠러)는 남편이 추락사하자 유력한 용의자로 몰린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 다니엘의 증언은 모호하고, 정황 증거들이 그녀에게 불리한 상황.

산드라는 변호사 친구인 뱅상(스완 아슬로)의 도움을 받아 재판을 받을 준비를 하는데…

추락의 해부

낱낱이 해부하다

2시간 30분짜리 영화라 그리 짧지는 않지만, 이게 한 인간을 갈갈이 찢고 살피고 헤쳐내는 해부에 걸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너무나 짧다.

산드라는 재판을 하면서 그녀의 삶을 다 폭로당한다. 그녀의 재산 상황, 성적 지향이 공개되고 부부싸움의 내용이 법정에 스피커로 빵빵하게 울려퍼지면서 그녀의 의도나 심리를 분석당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죽은 사뮈엘도 정신과 상담 내용까지 탈탈 털리고, 다니엘도 자신의 사고 때문에 부모가 다투고 엄마가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 가족을 산 채로(혹은 죽은 채로) 갈라서 안을 헤집고, 낱낱이 살펴보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

추락의 해부 변호사

조각을 확대하다

산드라가 남편을 죽였다는 명확한 물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재판은 정황 증거에 대한 검토가 주를 이룬다. 산드라는 전날 그와 크게 싸운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전체의 일부일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영화에서는 산드라와 사뮈엘에 대한 많은 ‘사실‘들이 나열되는데, 이 중 어느 것을 고르는지에 따라 부부의 인상은 전혀 달라진다.

검사는 산드라의 부정적인 면모를 끄집어내 그녀를 공격한다. 그의 말대로 전날 밤 산드라가 남편과 크게 다퉜고, 그녀가 예전에 외도를 했다는 사실에 집중하면 산드라가 정말 차갑고 믿을 수 없는 여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변호사나 산드라 본인의 변론을 들으면,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남편이 답답하고 낯선 나라에서 사는 것에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고독한 여자로 보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순전히 그녀를 보는 사람이 어떤 것을 선택해 판단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한 인간에게는 너무나 많은 일면이 있고 각각의 일면은 때로 서로 반대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는 보통 사물을 해체하고 분석하면 명백한 원인(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과학적이고 정밀한 부검이 이루어졌음에도 사뮈엘의 사인은 ‘사고 혹은 고의적인 충돌에 의한 손상’이다. 사고, 자살, 살인 뭐든지 될 수 있는, 사실상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진실. 그가 추락한 자리에 생긴 핏자국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도 마찬가지다. 핏자국은 이렇게도 생길 수가 있고 저렇게도 생길 수가 있다.

전문가가 하나의 명확한 물질적 증거를 샅샅이 살펴보는데도 그 결과가 이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한 인간에 대한 진실을 파악할 수 있을까?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산드라를 거의 모든 각도에서 지켜보도록 한다. 그녀를 이루고 있는 요소(독일인, 유명 작가, 시각장애 아들, 열등감이 있는 남편, 힘들었던 유년 시절, 차가운 성격 등)들을 낱낱이 해체하고 하나하나 보여준다. 그러나 산드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더욱 헷갈린다.

어느 정도 산드라가 결백하다거나 완전히 범인같다고 확신할 무렵 다른 결정적(으로 보이는) 단서가 나와 금방 의견이 뒤집히고, 왜곡과 반전은 작품 전반에 걸쳐 계속 불길하게 작용한다.

산드라는 다니엘에게 “엄마는 그렇게 괴물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그녀를 괴물이라고 취급할 수도, 피해자로 여길 수도, 살인자라고 확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그녀가 그런가?

결국 우리는 ‘판단’을 해야 하고, 진실이라 부를 수조차 없는 불완전한 결과에 다다를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다니엘이 그랬듯이.

추락의 해부 법정

법정 참관 수업

작중에서 산드라는 변호사 친구인 뱅상의 도움을 받아 재판을 받을 준비를 하고, 중반부터 펼쳐지는 법정 파트는 매우 길다.

보통 창작물에서 법정은 까리하고 깔끔한 논리의 결투장같은 느낌으로 등장하지만 <추락의 해부> 속 법정은 현실적이고 상당히 ‘지저분’하다. 재판에서 유리해지기 위해서 증언을 수정하는 연습을 하거나 증언의 세세한 말꼬투리를 잡는 등의 행동은 불공평하고 비열해보이기까지 한다.

변호사인 뱅상은 “재판은 진실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산드라가 ‘살인을 하지 않았다고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반대로 검사는 산드라가 살인자처럼 보이도록 공격을 전개하고.

“당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써야 한다.”는 뱅상의 말과 산드라가 객체화되는 장면들은 적잖이 비인간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애초에 이것이 재판인 것이다.

재판정은 진실을 밝히는 곳이 아니라 판단을 하는 곳이다.

그리고 이 의미는 산드라의 아들인 다니엘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재판과는 별개로(혹은 같이) 다니엘도 부모에 대해 판단을 해야 한다. 그가 분명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 대해, 완전히 다시.

타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판단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대로 우리는 판단당하는 자신에 대해 신경쓰지 않을 수 없고. 매일매일이 서로의 서로에 대한 재판인 것이다.

추락의 해부 아카데미
영화의 ‘비하인드 신’이 아님

불안의 기술

날카롭고 섬세한 촬영 기술이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에 불안의 그림자를 덧씌운다. 영화가 시작할 때, 산드라가 학생과 인터뷰를 하는 장면부터 불길하다.

산드라가 묘하게 자신에 대한 질문에 말을 돌리고, 낮부터 술을 권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그리고 사뮈엘이 위층에서 음악을 크게 트는 순간 불쾌감이 진동으로 느껴진다.

음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엔딩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 속의 음악은 편집으로 더해진 것이 아니라 모두작중에서 실제로 들리는 것들, 즉 사뮈엘이 작업하려고 크게 틀어놓은 음악이거나 다니엘이 치는 피아노 소리다. 이로 인해 관객은 영화와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또 증언 연습을 할 때나 법정애서는 기록용 카메라의 시점이 되는데, 이는 촬영물(증거)을 보는 느낌을 주면서 관객을 ‘판단하는 입장’ 그러니까 배심원으로 만든다. 완전히 영화 속 현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카메라는 가끔 인물을 멀찍이서 찍거나 갑자기 매우 가까이 클로즈업을 한다. 관객은 도저히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가 없다.

보통 클로즈업은 인물의 심리나 감정을 명확하게 표현할 때 쓰는 기법이지만 여기에서는 오히려 전혀 속을 알 수가 없다. 지금 산드라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뭔가 숨기는 건 아닐까? 불안해 하는 건가? 뭐지???

보통 타인을 판단하는 과정은 거의 순간적이고 무의식적이라 본인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야 쟤 좀 수상하다’라는 감이 오는 거지 거기에 줄줄이 이유를 갖다대진 않으니까.

그러나 <추락의 해부>는 이 판단의 과정을 잘게 썰어서 펼쳐보인다. (‘재판’이라는 행위 자체가 이런 것이지만) 오히려 하나하나 세심하고 명확하게 나온 수많은 증거들 앞에서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판단 과정 사이에 끊임없이 내적인 의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우리가 타인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허상이었음을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추락의 해부 아들

종합평 : ★★★★

그래서 결국 산드라가 남편을 죽였냐고?

글쎄.

<추락의 해부>에서 사고, 자살 혹은 살인의 진상은 매우 모호하다. 사실상 ‘스릴러’를 기대하고 봤다면 아주아주아주 잘못 고른 것. 게다가 분위기도 아주 뭉근하다.

그러나 영화는 아주 명확하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선.

하나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교하게 구성한, 그야말로 멋진 논변을 보는 듯.

영화를 보는 동안보다 영화를 다 보고난 뒤 끊임없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그런 영화는 드물다. <추락의 해부>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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