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4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전 6화
- 장르: 액션, SF
- 출연: 엘리엇 페이지, 톰 호퍼, 데이비드 카스타네다, 에이단 갤러거, 저스틴 민 외
- 공개: 2024년 8월 19일
시리즈의 팬으로써 오래 기다린 감상:
없었던 걸로 하자. 제발.
종합평 : ★
*이 리뷰에는 드라마의 전반적인 줄거리, 엔딩 및 구체적인 장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스포가 있든 말든 중요하지 않을 것 같네요.

엄브렐라 아카데미 시즌4 줄거리
시즌3 엔딩 이후, 세계가 리셋되어 종말은 막았지만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고 남매들의 능력 또한 사라졌다.
그리고 6년 후.
남매들은 바뀐 시간대에서 각자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CIA에서 일하는 파이브는 원래 시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비밀 조직인 ‘파수꾼들’을 조사한다.
그러던 중, 빅터가 납치당하는 사건이 벌어져 남매들은 다시 한 자리에 모인다. 빅터를 납치한 세탁소 주인은 ‘파수꾼들’을 언급하며 자신의 딸 제니퍼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남매들은 초능력의 원인 물질인 ‘마리골드’를 발견한다. 벤은 술에 몰래 마리골드를 타고 이를 나눠마신 남매들은 결국 힘을 되찾게 된다.
남매들은 얼결에 제니퍼가 있는 작은 마을로 향하지만, 갑자기 평화로운 작은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총을 꺼내고 공격해온다. 그리고 벤은 식당에서 만난 여성이 바로 그들이 찾던 제니퍼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객관적으로 개판
….일단,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좋아했던 마음을 접어두고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살펴보자.
마지막 시즌이라는 것을 발표한 이상, 시즌4는 이전 시즌들의 내용을 취합하고 복선이나 남은 수수께끼를 해결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지난 시즌의 큰 흐름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 시즌1: 개막장 하그리브스 집안 소개
- 시즌2: 모두 함께 시간 여행을 하며 남매들이 서로 힘을 모으기 시작함
- 시즌3: 세계관의 가장 가장자리(왜 늘 세계 종말이 일어나는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닿음
시즌 3개와 온갖 시간선을 넘나드는 스토리를 6화 만에 정리해야 하니 무척 바쁠텐데, 시즌4는 오히려 매우 게으름을 부린다.
‘파수꾼들’이라는 새로운 빌런 집단, 힘을 잃은 남매들의 ‘평범한 삶’과 능력을 되찾은 후의 차이점, 벤의 과거와 제니퍼와의 관계, 레지널드와의 대화, 파이브가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 등 처리할 게 정말 많다. 그러나 시즌 4는 매력적이지 않은 또라이 중년 부부의 댄스신이나 웃기지도 않는 유치한 말싸움과 저질 개그, 그리고 전혀 필요없는 로맨스로 시간을 낭비한다.
정작 중요한 사건 전개는 1화와 5화, 6화에서 대충 일어나고 후다닥 엔딩으로 달려간다. 그 과정에서 개연성이나 핍진성이 얼마나 부족한지 보는 내내 어이가 없다.
예를 들어 남매들은 ‘세탁소 딸 제니퍼를 찾아야 한다’는 것밖에 모르는데, ”내가 제니퍼다“라는 말만 듣고 모르는 여자가 무조건 자기들 목표라고 생각한다.
제니퍼 역시 평생 살던 마을 사람들과 자기 삼촌 대신 오늘 처음 만난 남자(전과범, 촉수남)를 따라간다.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과감한 전개가 이어지면서도 촘촘한 복선과 임팩트 있는 클라이맥스가 포인트였는데, 시즌4는 모든 게 어설프고 무성의하기 짝이 없다.
빅터가 세계의 종말을 일으키는 존재라더니 갑자기 빅터보다 더 짱세고 더 중요한 제니퍼라는 신캐가 갑툭하고, 여태까지 가족을 구하기 위해 분투했던 파이브의 지난한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어떻게든 마침표를 찍긴 했는데, 그게 예상 불가능하기도 않았고 즐겁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없느니만 못하다.

주관적으로, 더 개판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사랑하고 기다린 이유는 이 드라마의 꼬이고 꼬인 스토리가 흥미롭고, 비틀린 유머 감각이 재미있고,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며, 선곡 센스가 기가 막히다는 것이었다.
스토리가 망했다는 건 앞서 언급한 대로고. 이제 다른 부분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명장면들은 작중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도 유머 넘치는 삽입곡과 함께 해왔다.
시즌1의 첫 화에서 남매들이 집에 돌아와 각자의 공간에서 춤을 추는 장면(I Think We’re Alone Now)부터 이 드라마의 색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시즌2도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와 함께 하는 핵폭발로 시작했고, 망작 취급받던 시즌3에서도 1화의 Footloose씬만큼은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한 명장면.
드라마의 상황과 인물의 심리가 분명하게 드러나면서도, ‘약간 맛이 갔는데 웃기고 세련된’ 특유의 센스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시즌4에서는.
이런 거 없어.
없다고. 진짜 진짜 없어.
기억에 남는 삽입곡이라고는 기껏해야 아기상어 뚜룻뚜뚜 밖에 없다. 근데 그것도 그렇게 재밌는 신도 아니고 그냥 유치한데 기분 나쁘고 나중엔 더럽기까지 함…
시즌4의 선곡과 연출은 퇴화했다는 말로도 부족하고, 멸종했다.
앳된 외모의 파이브가 점잔빼며 어른스럽게 행동하거나 클라우스가 사이비 단체를 만들면서 이름을 ‘데스티니스 차일드’라고 짓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기민한 유머 센스는, 루서의 바지가 찢어지고 티팬티가 드러나는 것을 개그로 삼는 저급한 수준이 되었다.
작중 통틀어서 위트있는 대사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으며, 아기 상어 뚜룻뚜뚜를 들으면서 토하거나 루서의 티팬티로 개그를 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이 드라마의 시청자라는 게 너무 쪽팔린다.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을까? 시즌4는 대체 얼마나 잘못된 시간선에서 온 걸까?

우리가 사랑했던 문제아들
시즌을 거듭한 드라마에서는 캐릭터들에 정을 붙기 마련이다. 까놓고 말해 ‘스토리가 엉망이라도 캐릭터 보는 재미로 본다’거나 ‘얘네들 행복하게 해주세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시즌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남매들은 강렬하고 독특하다.
독선적이고 유치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루서,
열등감 덩어리의 하남자이긴 해도 미워할 수 없는 디에고,
이기적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앨리슨,
방탕한 트러블메이커지만 미워할 수 없는 클라우스,
파이브,
우울하고 자존감이 바닥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빅터.
그리고 여기에 통제가 안되고 제멋대로지만 미워할 수 없는 라일라와 쪼짠하고 삐딱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스패로) 벤이 추가되어, 총 8명.
서로 징글징글하게 싸워대고, 하나같이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어 모아놓으면 정말 답이 없는 콩가루 집안인데 그래도 좋았다. 엉망이지만 어쩔 수 없어, 우린 가족이니까.
그러나 시즌4에서는 모든 인물의 특징에서 ‘미워할 수 없는’이 빠졌다.
모두 멍청하고 한심하고 이기적이고 산만하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그래도 결국은 이 빌어먹을 형제들밖에 없다’로 귀결되었던 지난 시즌들이 무색하게 이전의 관계성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박살난다.
예를 들어 루서와 앨리슨은 어렸을 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복잡미묘한 관계였고, 이 둘의 관계는 시즌1부터 시즌3까지 다양한 형태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루서는 뇌도 없는 바보가 되었고 앨리슨은 그냥 아줌마가 됨.
또 클라우스는 이전 벤이든 다른 벤이든 가장 절친이라 할 만한 사이였는데, 이번 시즌에서는 벤과 대화를 하는 장면조차 손에 꼽는다. (애초에 클라우스는 이번 시즌에서 완전히 한심한 다른 캐릭터가 되었고)
철없이 나대는 디에고와 그를 애 다루듯 하던 파이브는…………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엔딩에서 “그래도 너희들이 있어 좋았다”로 퉁치는데, 이게 시즌3까지는 납득할 수 있지만 시즌4는 전혀 공감이 안 가는 수준에 이른다.
심지어 시즌4는 기본적인 캐릭터 설정조차 유지하지 않는다.
‘접촉한 남의 능력을 카피한다’는 라일라가 갑자기 눈에서 빔을 쏘고, 앨리슨은 ‘루머’ 능력 대신 갑자기 눈을 노랗게 뜨고 염력을 쓰기 시작한다. 심지어 루서가 타고난 능력은 괴력과 방탄 신체지 짐승의 몸을 가지게 된 건 후천적으로 혈청을 맞아서인데, 능력을 잃었다고 왜인지 털복숭이 몸으로 돌아옴….
벤의 마리골드 때문에 다들 맛이 갔다는 변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놓고 빅터와 파이브, 디에고의 능력은 건재함. 팬픽도 이것보단 설정 잘 지킨다 이것들아
결국 우리가 사랑했던 문제아들은 없다.

가장 심각한 ‘그거’
무엇보다 시즌4에 대해 모두가 지적해 마지않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물론 라일라와 파이브와의 관계다. 디에고와 결혼한 라일라가 파이브와 눈이 맞는다.
씨발
파이브가 상간남이라니!!!!!!!!!!!!!!!!!
이 미쳐버린 급발진은 디에고, 라일라, 파이브 모두에게 이미지의 극심한 손상을 입힌다.
좀 성장한 것 같던 디에고는 그냥 NTR당한 쩌리 남편이고, 한심하고 불쌍해서 눈물만 남..
통제불가능한 매력적인 광년이었던 라일라는 갑자기 청순한 생머리에 원피스에 가디건을 입고 딸기를 따면서 시동생과 바람을 피운다. 씨발… 진짜….
그래놓고 “나한텐 애들이 중요해”라며 집으로 돌아가 두 남자 사이에서 와리가리하는 혐오스러운 캐릭터가 된다. 나중엔 “너희 가족에 날 끼워줘서 고마워” 이러는데 솔직히 그냥 너만 없었어도 훨씬 나았겠다 싶음…
….물론, 가장 큰 문제는 파이브지.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인 파이브는 너무 낯설고 달라졌다. 폐허가 된 세계에서 혼자 50년을 버티고, 오만하고 독선적이지만 세상과 남매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온 그가 꼴랑(?) 6년 만에 멘탈 털려서 마음이 약해진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라일라에게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고, 디에고를 적대하는 모습은 도무지 그답지 않다. 파이브가 여자 하나 두고 형제와 싸우다가 모든 남매를 다 버려두고 혼자 런하는 장면은 머리가 띵해진다.
대체 이… 이 ‘사고’가 왜 필요했을까? 이 일로 인해
철없던 디에고가 성장하는가? No.
라일라와 디에고가 진실한 감정을 깨닫고 제대로 재결합하는가? No.
그럼 라일라와 파이브가 새로운 커플이 되나? No.
디에고와 파이브 사이의 형제 관계에 어떤 발전이 있나? No.
로맨스 케미가 좋은가? No.
둘의 관계가 스토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 Never.
라일라와 파이브가 6년 동안 한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냥 길을 잃어서 헤맸을 뿐이다. 도중에 벤과 제니퍼를 구하겠다는 당초의 목적은 홀랑 까먹고, 심지어 돌아와서도 신경쓰지 않는다. 파이브가 막판에 종말의 진실을 알게 된 것도 순전히 우연이고.
캐릭터도, 스토리에도, 로맨스 그 자체에도 아무런 좋은 영향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그 외에 벤도 연애 문제로 심각한 이미지 손상을 겪는데, 벤과 제니퍼가 서로에게 갑자기 죽고 못사는 건 정말 뜬금없고 공감도 안 간다. 벤은 이번 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데 제니퍼를 쫓아다니면서 오히려 스토리의 중심에서 이탈하고, 공감도 이해도 안가는 캐릭터가 된다. 그는 결국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일원이 되지도 못했고 허망하게 운명의 제물이 되었을 뿐.
시즌2에서 바냐와 씨시의 사랑은 바냐의 정체성을 찾고 스토리가 전개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클라우스-데이비드나 앨리슨과 루서, 레이의 관계는 감정적으로 충분히 공감가고 깊이 있게 묘사되었다는 것과 비교해보면 시즌4의 로맨스는 그야말로 폭망이다.
이딴 게 사랑이라면 사랑따윈 필요없어.

종합평: 아름답지 못한 마무리
마지막을 예고하고 이별하는 것은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일이지만,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그동안 드라마를 사랑했던 시청자들에게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단 10분도 재미가 없어.
진짜 너무 지루하고, 엉성하고, 실망스러움의 연속.
이런 걸 엄브렐러 아카데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동안 쌓아왔던 복선과 암시, 관계성, 그리고 빛나는 선곡 센스와 유머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데.
시즌4는 지리멸렬하게 전개되다 10분 만에 급하게 막을 내리는 허망한 엔딩 이후 제작진의 비하인드 사진으로 크레딧을 채운다. 하지만 이게 짠하고 감동적이긴 커녕 감성팔이에 의존하는 게 너무 안이하고 비열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냥 이건, 잘못된 시간선에서 온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아주 약간 닮은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게 좋겠어. 이 드넓은 우주, 수많은 가능성 중에 우린 지뢰 하나를 밟은 거야.
어딘가에선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엄브렐러 아카데미>가 계속 이어지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