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어 아너
- GenieTV 오리지널 시리즈 / 전 10화
- 장르: 스릴러, 범죄, 느와르
- 감독: 유종선
- 각본: 김재환
- 출연: 손현주, 김명민, 김도훈, 허남준
- 공개: 2022년 8월 12일
폭풍같은 전개 속도와 살벌한 연기로 쉴 틈없이 달리는 미친 드라마.
트렌디 스릴러같은 도입부와 자극적인 전개가 유행을 따르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의외로 고전 문학스로운 구조가 버티고 있어 엄청나게 무겁다.
그리고 무거운 것은 처참하게 부서지는 법.
종합평 : ★★★☆
*이 리뷰에는 <유어 아너>의 전반적인 줄거리, 엔딩 및 구체적인 장면에 대한 언급과 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어 아너 줄거리
공정하고 인간적인 판사로 명망이 높은 송판호(손현주)는 어느날 아들 송호영(김도훈)이 뺑소니 사고를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정의를 믿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왔던 송판호는 아들에게 자수를 권유한다. 그러나 자수하기 직전 호영이 죽인 뺑소니 사고의 피해자가 막강한 권력을 지닌 우원 그룹 회장 김강헌(김명민)의 둘째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증거를 인멸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김강헌은 둘째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뺑소니범을 찾기 위해 직접 나선다. 그리고 죽은 둘째의 이복형인 장남 김상혁(허남준)도 한국에 돌아와 대놓고 범인을 죽여버리겠다고 선언하는데…

나락으로 향하는 중력
고삐 풀린 듯 미친듯이 마구 달려가는 전개에, 강렬한 연기로 보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어떻게 여기서 더 ㅈ될 수가 있지?
응 더 ㅈ되게 만들어줄게
이게 반복됨… 영원히…
일단 시작한 지 5분 만에 문제의 사고가 일어나고 송판호가 열심히 은폐한 증거도 2화 만에 다 털린다. 국면은 매화 급변하며, 여기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이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최소 협박범에서 최대 다량살인범임….
사실 이렇게 너무 몰아치기만 하면 산만하거나 지칠 수 있는데, 묵직한 무게감으로 그걸 상쇄한다. 플롯의 바탕이 되게 고전적이고, 강렬한 연기력이 중심을 잡고 끌어간다.
전개상 다소 허술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닌데 그냥 미친 듯이 빠져들어 보게 되는 힘이 있다. 회차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도저히 답이 안 보여서 “그냥 다 죽자..” 싶은, 해피엔딩은 시작과 동시에 끝났고 이 끝이 처절한 나락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볼 수밖에 없는 그런 강력한 힘.

문학적 비유 :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목인 ‘Your Honor’는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는 뜻이면서 직역하면 ‘너의 명예’. 존경과 명예, 재판장이라는 단어 모두 작중에서 자주 쓰인다.
<유어 아너>는 말 그대로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는 your honor의 이야기다.
작중에서 이 의원이 송판호가 존경받는 판사라며 존경심을 논하자, 조 대표가 옆에서 대놓고 비웃는다. 이 의원은 송판이 “딱 한 번 실수한 거”라고 항변하지만 이미 깨진 것은 다시 붙기에 요원하다.

<유어 아너>라는 타이틀 글씨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점점 산산조각 나는 연출은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데, 드라마는 이런 식으로 상징과 비유를 자주 활용한다.
비유가 꽤 문학적이라고 할까…
예를 들어 송판호가 카센터로 가면서 구정물을 밟는 장면이나 거미줄은 더러움에 발을 들이게 되고 빠져나갈 수 없는 그의 처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잠자리에서 괴로워하며 악몽에 시달리는 장면이 침대에서 천장을 바라보는 구도, 천장에서 침대를 바라보는 구도로 나오는데, 이는 마치 심판자의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시점.
(경찰서에 자수하러 갈 때도 카메라가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등, 송판을 유난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가 많다)
또 송판이 오디오북으로 듣는 카프카의 <변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내레이션과 같이 화면에 깔리는 것도 매우 강렬한 연출.
이 세상에 언제나 폭포처럼 넘쳐났고
지금도 넘쳐나는 피
샴페인처럼 넘쳐흐르는 피
특히 선고 공판에서 <죄와 벌>이 길게 이어지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정말 인상적이었다.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대사가 나올 때 김상혁이, 순진한 둔야의 대사가 나올 때 은이가 비춰지는 것도 싱크로가 되지만, 또 <죄와 벌>의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와 가장 비슷한 건 송호영이거든. 소설의 내용을 서로가 나눠 가지면서, <유어 아너>만의 이야기 구조를 꽉 채운다.
그리고 10화는 진짜 고대 그리스 비극 구조 그 자체임….
사실 개인적으로는 엔딩신의 마무리가 약했고, 대사가 너무 직접적인 구석이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시즌2 만들 수도 있게 여지를 주라는 높으신 분의 외압을 받은 것처럼 마지막의 마지막에…. 힘을 살짝 빼버린, 그런 느낌.
특히 은이와 송판호가 대화하는 장면 이후로는 전개가 약간 맞물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고.
엔딩에선 긴 대사가 이어지면서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일부 시청자들에겐 ‘사이다’가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의 해변 신의 여운은 굉장히 깊게 남는다. 이 미친 듯한 무게감. 답답함. 멘탈 털림(ㅋㅋㅋㅋ)…. 그게 고전 문학 특유의 테이스트인데, 현대 드라마와 이렇게 잘 어우러졌다는 게 신기하고, 좋고, 괴로워…….

유자식 하팔자
두 남자를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것은 그들의 아들들이다.
한쪽은 개망나니고 한쪽은 법대 모범생이라는 전혀 다른 두 아들이지만, 어쨌든 둘 다 아버지에게 절망의 끝을 선사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거울이며, 아들이 저지른 짓에 아버지가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물론 크게 나가면 부모 양쪽이지만 극 중에선 사정상 아버지에게 초점이 맞춰짐)
아버지가 절망하는 지점도 단순히 아들이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그게 자기 아들이라서다.
자기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특히 우원 일가 쪽에서 이 점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상혁의 모든 행동 동기는 아버지에게 관심 끌고 싶어서/인정받고 싶어서/사랑받고 싶어서로 통한다.
‘나도 사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다’는 독백(여기서 포인트, 자랑스러움이 아닌 사랑스러운)에서 드러났듯이.
…물론 김강헌은 ‘나름대로’ 상혁을 아깐다. 미국으로 가라는 것도 보호를 위해서고, 아들이 결국 깜빵에 갔어도 교도소에서 불편한 것 없게 하라든가. 하지만 김강헌은 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전혀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혹은 알아도 무시하거나.)
상혁의 싸대기를 후려치면서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다 안다.”고 했지만, 그 상황 그 대사 자체가 그가 아들을 하나도 모른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게 큰 아이러니다.
그는 큰아들을 사랑했을 수는 있는데, 적어도 사랑을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둘이 닮았거든.
작중에서 김강헌과 김상혁은 하는 짓이나 담배 피는 습관, 심지어 외모까지 은근 닮아서 결국 피 때문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결국 이 모든 범죄는 바로 아버지의 잘못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상혁의 어린 시절이나 서사를 생략하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그의 행동이 용서되거나 이해받을 여지를 남기지는 않는다. 범죄자를 다룰 때 보기 드문 현실적인 태도라 인상적.)

한편 송 판사의 집도 문제가 심각하다. 사실 소통 안 되기는 이쪽도 만만치 않음…. 아니, 이 집은 매일 같이 밥도 먹는데 이 정도로 단절된 거면 더 심각한 수준 아닌가…
송판호는 끝까지 아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아이가 어리다”, “그럴 리가 없다”며 부정한다.
….끝까지. 끝의 끝까지.
호영이 어머니를 잃고 얼마나 사무치게 슬퍼했는지, 법이나 정의에 대해 얼마나 불신과 배신감을 느꼈는지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다. 그냥 자기 멋대로 호영이가 곧 나아질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 그리고 그 이기적인 행동이 아들을 더욱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가버렸다.
결국 이 모든 비극은 아버지의 잘못이이었다.
아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주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대가로 그들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것을 잃어버린다. 아버지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엔딩 신은 이 점을 짚어낸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오히려 그 운명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가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 나올법한 인과를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 넣은 것은 정말 묵직했다.

느와르: 겉멋으로 완성하는 장르
느와르라는 장르는 화면 분위기와 배우빨에 많이 기대는 장르다. 정의가 통하지 않고, 폭력과 욕망이 지배하는 비상식적인 세계로 관객을 강하게 끌어들이기 위해선 비주얼의 직관적인 힘이 필요하기 때문.
말하자면 겉멋이 든 장르인데, 겉멋이 들어야 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어 아너>는 극단적인 설정에 걸맞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화면에 잘 풀어냈다.

부두파의 살벌한 아지트와 고담시를 연상시키는 마천루의 야경, 거친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은 우원시라는 배경에 생기와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카메라도 시각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앞서 말했듯이 거미줄 같은 비유와 상징을 많이 사용하기도 하고, 화면 자체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그림자나 벽 등으로 화면 일부를 가려서 압박감을 선사하고, 내려다보는 구도를 사용해 긴장감을 더욱 꽉 조인다. 곳곳에 숨겨진 이런 장치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
후술하겠지만, 우원 그룹의 무서움과 악의 스케일을 강조하는 데에도 김강헌과 김상혁의 비주얼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환경에만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장 형사나 강 검사가 말하는 다소 원론적인 정의론과 희망 언급은 조금 붕 뜬 것처럼 느껴지는 점은 조금 아쉽다.
악은 깊고 풍성하고 다채로운데, 선은 다소 얄팍하고 평범하다. 말하자면 선과 악의 밸런스가 좀 안 맞음… 강 검사의 역할을 생각하면 약간의 아쉬운 점.

10시간 꼬박 연기차력쇼
사실 따지고 보면 투박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닌데, 무서운 연기가 빈틈을 채우고 극을 차지한다. 일단 손현주와 김명민이 정말 보는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다.
손현주 배우는 정말 고생을 많이 하시는데(…..) 시뻘게진 눈으로 허공을 봤다가, 겁을 내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울면서 무릎을 꿇고.. 보는 사람이 다 기가 빨림….
애끓는 부성애와 생존 앞에서의 다급함이 뒤엉켜 천천히 파멸해 가는 과정이 얼굴만으로 다 드러나는 무시무시한 연기 내공.

한편 김명민은 나올 때마다 숨이 꽉. 꽉. 막힙니다. 와 진짜 4화 넘어서 김명민이 차 타고 등장하면 돌아버릴 것 같음… 그냥 죽여줘…
김강헌과 우원 그룹의 행보는 비상식의 끝판왕인데, 그걸 납득하게 만드는 것이 김명민의 카리스마다. 배역을 위해 6kg을 증량했다고 하는데 다가오는 무게감은 그 열 배, 백 배 이상.
“내가 할 수 없는 건 없어.”라고 단언하는 그의 대사가 전혀 허세라 느껴지지 않는다.

여기에 젊은 배우들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발견이 아닐까 싶은 김도훈, 허남준. ‘와 얘넨 앞으로 진짜 잘될 거다’란 확신이 들었다.
둘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배우로서의 역량을 보여주는데, 김도훈은 감정 연기, 허남준은 캐릭터 소화력 부문 쪽으로.
김도훈은 눈빛 하나로 연약한 사슴과 싸한 놈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데, 감정을 숨기고 드러내는 장면의 디테일이 정말 좋았다.
‘어떻게 저렇게 온전하게 슬플까’라는 작중의 언급처럼, 처연한 슬픔이 그대로 떠오르는 얼굴.

허남준은 진짜 첫 등장부터 임팩트가 너무 강렬해서, 비중 자체가 많은 건 아닌데 극 중에서 내내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감을 발휘한다.
배우 인터뷰를 보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느낌과 불안한 정서를 외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 정말 한순간 보기만 해도 김상혁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 단번에 이해가 된다.
그리고 진짜 좋았던 소소한 디테일이 다 배우의 애드립이라 (장례식장에서 서있는 부하를 툭툭 치면서 “야, 야.”한다든지, 경호원을 잡아끌어 앞으로 던지는 장면이나 대충 외운거 읊다가 변호사에게 “뭐야?”라고 물어보는 장면 등) 깜짝 놀랐음…
그리고 부두파 조 대표를 맡은 백주희 배우의 앙칼진 서늘함도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아지트에 쳐들어온 김상혁과 마주하는 씬이 굉장히 좋았음. 화면에서 물씬 풍기는 그 비릿한 분위기와 조 대표의 느릿한 말투가 우원 시라는 공간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느낌.
그 외에도 많은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하나도 빠지지 않고, 이 비극에 일조하는 일원들.
강소영 검사 역의 정은채는 처음엔 약간 붕 뜬다 싶었는데(캐릭터도 그렇고) 후반에는 알아서 착붙.

지니티비는 반성해야 해
이 드라마의 가장 크고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단점은 지니티비 오리지널이라는 것. (추가: 지금은 넷플에서 볼 수 있음)
지리지널은 넷플릭스 같은 OTT에 배급되지 않았고, 채널 ENA가 안 나오거나 KT 셋톱박스를 쓰지 않으면 아예 볼 수 없다는 미친 제약이 걸려있다.
6화 무렵에는 지니티비 가입자가 아니라도 모바일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생겨서 불타 올랐는데 오류란 게 밝혀짐..(…)
본방을 사수하거나 재방을 찾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대를 역행하는 전략이 지리지널의 ‘포인트’인데, 그럼에도 큰 화제와 좋은 시청률을 기록하긴 했지만…. 문제는 그거라고.
지리지널임에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지리지널이 얼마나 드라마를 방해하는가를 보여준다. 일단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어야 재미있는 걸 알지 않겠냐고.
화제성과 입소문, 하다못해 드라마 캡쳐나 움짤 등을 활용한 ‘영업글’로 버징하는 것도 기본적인 시청자풀의 확보에 비례한다. 물론 <유어 아너>는 많이 화제가 되었고 시청률도 6%를 찍긴 했는데, 솔직히 넷플에 풀었으면 이거 배로 튀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서 더 아까움..
지니티비에 대해선 지리지널 드라마들이 퀄리티가 다 좋아서 더 빡친다. <악인전기>, <야한 사진관>, <크래시>같은 좋은 드라마를 꽁꽁 숨겨두는 거. 크래시는 그나마 디플로 풀렸지만..
그래서 이번에 <유어 아너>가 잘된 것도, 지니티비의 그지같은 전략이 계속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음…

종합평
드라마에 10시간은 전혀 길지 않지만, 이렇게까지 내내 기빨리게 무거운 드라마는 거의 없다보니 10시간도 좀 힘들다. 정주행 무리….너무 힘들다……………
요새 유행하는 마라맛 자극은 쌔고 쌨는데, 그에 비하면 <유어 아너>는 부글부글 끓는 훠궈 같달까. 정신이 번쩍드는 매콤함과 목 안을 태우는 묵직함.
잠깐 언급했듯이 세세하게 따지면 약간 작위적이거나 조금 불필요한 거 아닌가 싶은 자극적인 장면도 조금 있고, 완벽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무게감은, 정말 자주 볼 수 없다.
여기에 믿고 보는 배우들과 발견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은 단연, 이 드라마 최고의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