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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1899’ 리뷰: 수수께끼의 답은 수수께끼

넷플릭스 시리즈 1899 포스터

넷플릭스 1899 줄거리

1899년, 뉴욕을 향해 출항한 여객선 케르베로스호.

배 안에는 오빠를 찾고 있는 젊은 의사, 서로 사랑하지 않는 신혼부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형제, 불안해 보이는 일본인 모녀 등 각자의 사정을 가진 인물들이 타고 있다.

항해 도중 케르베로스호는 4달 전에 실종된 같은 회사의 선박 프로메테우스호의 통신을 받게 된다. 배에서는 왠지 미심쩍은 분위기가 풍겨오지만 선장은 구명정을 띄워 배에 오른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호에 타고 있었을 1,400여 명의 승객은 온데간데 없고 단 한 명의 소년만이 발견되는데….

거대한 퍼즐 배

전형적인 여객선 미스터리와 오컬트 호러, 심리 스릴러가 섞여 있는데 5화쯤 가야 명확한 장르가 윤곽을 드러낸다.
그 장르가 뭔지는… 흠. 일단 비밀. (아래 스포일러 단락에서 서술)

일단 드라마 전체가 거대한 퍼즐 박스같은 느낌을 준다. 

정신병원에 강제로 끌려가고 있는 것 같은 모라는 정말 제정신인 걸까? 오프닝에서 나온 ‘뇌과학’을 운운한 모라의 내레이션이 스토리와 관계가 있는 걸까? 왜 기모노에 게이샤 화장을 하고 있는 저 소녀는 일본인이 아닐까? 날티 나는 앙헬과 신부복을 입고 있는 라미로는 정말 형제가 맞나? 3등실의 이 사이비 같은 분위기는 뭐지? 프로메테우스호에서 홀로 살아있는 소년은 대체 누구인가? 

수수께끼의 소년 엘리엇

스토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수수께끼와 의심은 늘어만 가는데, 여러가지 가설을 세워가며 보는 재미가 있다. 이런 쪽의 장르, 뭐 <로스트>나 특히 제작자의 전작인 <다크> 등을 좋아한다면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다만 힌트 자체는 꽤 널려 있으므로 미스터리 좀 봤다면 이 작품의 진정한 장르는 금방 파악할 수 있는 편.

… 아, 한 가지만 말해두자면 설정상 약간 폭력적이거나 좀 선정적인 게 있긴 해도 직접적인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등급 분류에 ‘공포’ 딱지가 붙은 것 치고 별로 무섭지도 않다. 점프 스케어는 전혀 없으니 쫄보들도 안심하라구!

하지만 그럼에도 19세 이용가라는 빡센 등급이 붙은 건 은은하게 미친 설정들과 중반부에 어떤 대규모 장면 때문인 듯. 

넷플릭스 드라마 1899의 등장인물

바다 위의 바벨탑

대형 여객선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특히 다양한 언어를 활용한 연출이 돋보였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승객들이 섞여있어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않은 것을 스토리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요소로 활용한 것이 포인트.

앙헬이 대놓고 스페인어로 말하면서 “여기 사람들 우리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데 무슨 상관이냐”라고 하거나, 하얀 분칠을 하고 기모노를 입는 소녀가 광둥어를 쓰면서 이야기하는 것에서 일본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시청자는 단번에 그녀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등 상당히 다양하게 활용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그룹=과거와 출신을 서로 알고 교류하는 관계인 반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이(예를 들어 올레크-링이)는 새롭게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으로 그려지는 점도 흥미로운데, 서로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교감하는 과정이 꽤 몰입감 있게 그려진다. 

1899의 주인공 다니엘 모라 아이크
이야기의 중심 삼각형을 그리는 다니엘-모라-아이크

다만 상당히 개성 있게 소개된 각 인물들이 고루 활용되지 못한 건 아쉽다. 극 중 주인공은 모라고, 모라와 함께 퍼즐을 풀고 사건을 진행시켜 나가는 중심인물인 아이크와 다니엘이 비중이 특별히 큰 건 그렇다 치는데 그 외의 인물들이 너무 대놓고 ‘서브스러운’ 느낌. 

도중에 병풍 되는 인물들도 아깝고, 대체 왜 끝까지 남은 건지 의문스러운 인물도 있다. 일부 인물의 심리나 과거 배경 묘사는 상당히 깊이 있고 몰입감이 있었는데 그게 좀 더 적극적인 캐릭터성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고. 

어두운 프로메테우스호속 인물들
평소 화면 때깔이 이럼……….

소소하게 아쉬운 것들

어, 일단… 겁나 어둡다. 스토리도 그렇지만 화면이. 전반적인 색감이 매우 어두워서 대연회장조차도 침침할 정도. 

덧붙여 19세기 여객선이 배경이면 화려한 비주얼을 기대하게 되는데 그런 거 없고. 앙헬이나 클레망스, 버지니아는 제법 화려한 패션을 선보이지만 문제는 그 옷이 바뀌지가 않음… <알타 마르>같은 패션쇼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 

또 개인적으로 스킵이나 배속을 하면서 보는 걸 매우 싫어하고 경계하지만, 이 드라마는 정말 10초씩 스킵이 간절한 순간이 적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보여주는 방식이 좀… 굉장히 늘어진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평범한 사다리를 올라가서 문을 여는 장면도, 사다리를 올라가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준다. 굳이 이걸?

군데군데 생략하고 더 스피디하게 진행해도 상관없을 부분도 그대로 다 보여주고, 그래놓고 결국 후반부인 6,7화는 꽉꽉 우겨서 정신없이 진행했으니, 페이스 조절이 조금 아쉬움….

아, 그리고 음악의 활용은 개인적으로 완전 낙제점. 효과음 사운드로 복선을 깔아놓는 것은 좋았는데, 브금 선곡이 진짜 꽝이다. 특히 엔딩의 과감한 브금은 전혀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있던 긴장감을 반감시키기까지. 

사실 그리 화려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브금이 제일 아쉬웠다.

※스포일러 주의※

주인공인 모라가 진실을 깨닫는 장면

엔딩 내용 정리 & 설명

사실 이 드라마의 장르는 SF로, 이 모든 것은 다 시뮬레이션.

무려 2099년의 우주선에서 실행 중인.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시청자라면 시작부터 나오는 뇌과학 언급, ‘일어나’라는 소리, 중간중간 나오는 글리치 같은 효과나 묘하게 시대 배경과 어긋난 엔딩곡 등을 캐치할 수 있었을 듯.

아예 빼박인 건 다니엘이 손전등을 꺼내는 장면부터지만.

한편 모라는 다니엘의 아내이자 엘리엇의 엄마로, 이 ‘케르베로스’ 시뮬레이션을 만든 과학자. 

시뮬레이션의 목표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모라를 포함한 승객들은 모두 자신이 19세기 사람이라고 여기고 그에 걸맞은 가짜 기억을 가지고 있다. 8일을 주기로 승객들은 매번 같은 결정을 내리고 똑같이 죽음을 맞이했으며 그들이 모두 사망하면 배는 ‘아카이브’로 옮겨지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승객들의 본래 육체는 아직 우주선 안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죽지는 않았음)

모라는 이 시뮬레이션을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에 그녀만이 시뮬레이션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코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속의 모라는 실제 자신이 누군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다니엘과 엘리엇은 시뮬레이션에 들어와 모라를 깨우기 위해 노력한다. 언급하는 뉘앙스로 보면 그들은 이미 몇 번이나 루프를 돌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건 처음이라고.

참고로 다니엘이 가지고 있던 장치나 녹색 딱정벌레는 일종의 ‘코드’로, 벌레를 바닥에 놓으면 문이 자동으로 열리거나 찾는 물건이나 인물로 안내해주었던 것은 딱정벌레가 일종의 치트키 내지는 명령어 같은 것이었기 때문.

결국 엔딩에서 모라는 시뮬레이션에서 벗어나 우주선 안에서 눈을 뜬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까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굉장히 많다.

애초에 이 실험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고 엘리엇이 정말 살아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일단 가장 단순한 해석으로는 엘리엇이 실제로는 죽었지만 모라가 아들을 시뮬레이션에서 되살리기 위해 작업했다는 설이 있는데, 정작 그녀는 엘리엇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렸다.

게다가 모라가 그토록 애타게 찾던 오빠인 키아란이 우주선을 접수한 책임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끝나기 때문에, 다음 시즌이 되어서야 전말의 윤곽이 드러날 듯.

….했으나…..

넷플릭스 1899의 케르베로스호
그야말로 클리프행어에서 끝나버린 시즌1 엔딩…

시즌2의 행방

명백하게 다음 시즌을 암시하는, 아니 다음 시즌이 없으면 안되는 수준의 엔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가 시즌2 제작을 취소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안 풀린 떡밥만 1765432개고, 시즌2는 시즌1과는 거의 완전히 다른 배경과 분위기가 될 것이란 추측이 있었으니만큼 넷플릭스의 이런 결정은 아쉽다. 하… 이럴 거면 마무리라도 제대로 하게 하든가. 양아치 새끼들…

아무튼 이 <1899>의 모든 수수께끼는, 그저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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