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빙을 끊은 김에 극장판을 달리는 중…
명탐정 코난 극장판 22기 제로의 집행인
- 개봉: 2020년 8월 8일
오로지 아무로 얼굴값.
종합평 : ★
※ 작품 내용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로의 집행인 줄거리
도쿄 정상회담 개최 예정 장소였던 회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난다. 수사 결과 놀랍게도 현장의 지문과 증거가 모리 코고로의 것임이 밝혀지고, 코고로는 영문도 모른채 체포당하고 만다.
코난은 사건의 배후에 공안이 있음을 간파해 후루야 레이에게 찾아가 따지지만, 그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면서도 말해주지 않는다. 코난은 이번엔 그가 아군이 아니라 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걸 ‘진실 vs 정의’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
먼저 이 부분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 이번 편의 캐치프레이즈는 ‘진실 vs. 정의’이고, 작중에서도 정의가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지만 사실 그렇게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이건 정의가 아니니까.
경찰이 증거를 조작하고 가짜 용의자를 만들어 겁박하는데, 그걸 미화를 해버린다. 심지어 이게 무슨 느와르나 피카레스크물이라면 모를까 <명탐정 코난>이라는 게 문제.
후루야는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임무나 사명을 다할 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걸 스스로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사실 매력적인 캐릭터성이긴 하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부분이고. 근데 작중 등장인물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과 작중에서 ‘정의인 것’은 다르거든.
<명탐정 코난>이 후루야의 행동을 ‘정의’라고 부른 순간 작품 자체에 큰 결함을 떠안게 되었다. 경찰의 위법 수사를 편드는 것이 상당히 위험한 사상이라는 건 둘째치고도, 탐정/수사물 주제에 수사가 올바르다는 설득력의 기반을 잃었다고. 찝찝한 사상인 걸 떠나 순전히 창작물로서도 자신의 장르 기반을 무너뜨리는 악수라는 점에서 굉장한 아쉬움과 실망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작품이 어느 정도 중심을 잡고 정의의 상대성에 대해 논했다면 비록 어린이용은 아닐지라도 상당히 흥미로운 전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냥 그런 거 없고 후루야 미화에만 힘을 다하다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혐관인 듯 혐관 아닌 : 이건 귀하네요
이번 작의 포인트는 코난이 철저하게 궁지에 몰리는 쪽이라는 것. <명탐정 코난>에서는 상당히 보기 드물게 혐관…. 같은 혐관 아닌 혐관인 듯한 관계성이 포인트.

참고로 더빙판에서 그래도 끝까지 형이라고 불러주는 코난의 인성에 감탄함…. 솔까 도중에 야 이 새끼가 나와도 인정각이었음..
보통 코난에게는 완벽한 동료 아니면 철저한 적이라는 두 사이드밖에 없는데, 베르무트와 아무로(후루야)는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베르무트는 ‘적이지만 살짝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대’고, 아무로는 반대로 ‘아군이지만 그다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대’.
원작에서도 “넌 날 오해하고 있는 것 같구나.”라는 말로 코난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적이 있고, 코난도 아무로에겐 쉽게 도움을 청하거나 솔직하게 대하진 않는다.
비슷한 조력자 포지션인 아카이가 코난에게 거의 숨기는 게 없고, 늘 나서서 도와주는 것과는 꽤 다르다.

하여간 이번작에서는 그 특유의 은은하게 감도는 싸함과 수틀리면 무슨 짓을 할지 짐작이 안 가는 과격함이 마구마구 드러난다.
원래 성품 자체가 나쁜 건 아닌데, 어린애한테 무자비하게 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면서 시치미 뚝 떼는 모습은 진짜 못됐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지금 수사회의 도청하니?ㅎ”는 과장 보태서 거의 호러 수준.
심지어 후루야는 코난이 신이치라는 것도 모르는 상태니 진짜 초딩 상대로 막 대한 게 맞음… 신이치였어도 이미 10살 가까이 차이 나니까 애 괴롭히는 건 마찬가지지만…
하지만 우리 코난도 여기에 지지 않는 기존쎄라서 둘의 긴장감 있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꽤 흥미롭다. 초반부는 꽤나 서스펜스가 있어요. 민간인 사찰에 경찰 도청으로 대응하는 코난 참 기특하고 좋았어….
스토리라고 할 만한 건 그것뿐이었지만…..
수상쩍게 좋은 작화

이번 편 정말 아무로 작화에 진심임…
솔직히 저는 디지털 작화로 바뀐 20년쯤 전부터 코난 작화를 보고 감동한 적이 없는데 아니… 야 이건… 그림에 영혼이 담겨있잖아….. 찐으로 감탄하면서 봤다.
3D CG의 퀄리티는 썩 좋은 편이 아니고 오프닝이나 추리 연출도 요란하고 산만해서 별로지만, 아무로 얼빡은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진짜 모든 작화력을 아무로 나오는 컷에만 쏟아부은 제작진의 영혼과 집착이 느껴짐. 그냥 아무로 얼굴만 봐도 남는 극장판…. 아니 그냥 그것만 봐….
그러나 스토리의 가치는 제로
아무로를 위한 극장판이라는 존재 의의를 빼놓고 보면, 스토리나 구성 면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공안 미화를 둘째치고 스토리 자체의 완성도가 형편없어.
도입부에선 코고로가 과연 어떻게 될지, 후루야의 속셈이 뭔지 알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해 생기는 긴장감이 있다. 하지만 작중 내내 공안이란 뭐하는 곳인지, 위성은 어떻게 조종하는지 장치적인 설명만 하고 정작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는 너무 대충이라 인상을 남기는 게 하나도 없다.
범인을 추리하고 범인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정말 노잼 안물안궁….

또 공안과 정상회담장의 테러라는 매우 스케일이 큰 사건임에도 정작 진행되는 이야기는 소박하기 짝이 없다. 사실상 용의자도 둘밖에 없는 수준인데 그 얼마 없는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도 너무 빈약해서 울고불고하는 장면이 이해가 안가서 ?스러울 뿐.
오히려 범인의 동기 자체는 기존의 황당한 범행 동기들에 비하면 수긍하기 어렵지 않은데, 붕 떠버린 묘사와 유치한 해결 방식으로 인해 감정 이입은 하나도 안된다. 공안을 미화하는 주제에 범인이 공안에 대한 비판하는 건 꽤 합리적인 부분이 있어서 결국 뭐 어쩌라는 건지 싶기도 하고.
후루야를 제외한 다른 레귤러 캐릭터들의 묘사도 심히 문제가 많다. (그렇다고 후루야 묘사는 잘했다는 건 아니고 그냥 얼굴과 있어 보이는 대사만으로 홀렸다는 의미)
심지어 남편이 체포된 에리의 심리도 그냥 날림이다. 기소되면 유죄판결률이 90%라고 직접 이야기하면서도 걱정하는 기색도 없고, 뭔가를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신이치가 자료를 전달해줄 때까지 직접 조사해볼 생각조차 안 했다는 것도 캐붕이고, 혼자 어쩔 줄 몰라하는 란만 안쓰러울 정도.
아 그렇지만 하이바라는 귀여웠어. 진짜 귀여웠어……ㅠㅠㅠㅠㅠㅠ
이젠 그냥 즐겨야 하는 광기의 액션
코난 극장판 액션은 언제나 광기가 넘쳐 흐르지만 이번엔 그 주체자가 코난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 코난조차 식겁한 도라버린 차량 액션…. 설마 축구공보다 더한 임팩트가 나올 줄은 몰랐음.

그래도 코난은 실행할 수 없는 화려한 드라이빙 신은 꽤나 볼거리. 아카이가 등장하면 꼭 저격신이 나오듯 아무로는 운전 담당이 된 듯.
극장판이 갈수록 추리보다는 액션에 치중하고 그 액션도 너무 판타지인지라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하지만 이 화끈한 노선이 흥행에는 잘 먹혀서 그만둘 기미는 안 보이고 솔직히 보는 쪽도 이젠 익숙해져 버렸…
극장판의 정체성 중 하나로 자리 잡아 이제 없으면 아쉬울 정도.
그러니 어쩌겠어. 그냥 즐겨.

종합평
남의 나라 공안 미화를 보는 불쾌감과 어설픈 스토리 구성 등으로 전체적인 완성도나 호감도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로지 아무로 토오루(후루야 레이)를 위한 영화로서 그 목적과 존재 의의에는 매우 충실한 작품.
사실상 아무로 외에 다른 중요 인물이나 볼만한 플롯이 전혀 없는데도 일본 흥행 91억 엔을 찍었다는 사실은 그의 인기를 증명하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다만 아무로, 아니 후루야의 신념이나 내면을 심도 깊고 매력적으로 그려냈냐면 그건 또 아니고 그냥 얼굴이 좋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