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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2024) 리뷰: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탈주 리뷰 포스터

탈주

  • 감독: 이종필
  • 출연: 이제훈, 구교환, 홍사빈
  • 장르: 액션, 스릴러, 드라마
  • 개봉: 2024년 7월 2일

종합평 : ★★★☆

탈주 이제훈 홍사빈

줄거리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부대의 중사 임규남(이제훈)은 10년 만기 제대를 앞두고,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할 수조차 없는 북한을 벗어나 철책을 넘어 남한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오랜 시간 철저하게 준비하지만 부하인 동혁(홍사빈)이 그의 계획을 알아채고 먼저 탈주를 시도한다. 동혁을 말리려던 규남은 얼결에 함께 탈주병으로 체포당한다.

한편 조사를 위해 부대에 찾아온 보위부 소좌 리현상(구교환)은 어렸을 때부터 알던 규남을 탈주병을 잡은 영웅으로 만들고 사단장 직속 보좌 자리까지 마련해준다.

그러나 규남이 이를 거부하고 끝내 탈주를 감행하자 현상도 그를 철저하게 추적하는데…

탈주 이제훈

운명으로부터의 탈주

주인공이 북한 군인이고 그가 탈북하려는 이야기지만, 규남이 도망치려고 하는 대상은 북한보다 큽니다. 그리고 더 강력한 상대죠.

규남이 탈주하려는 건 운명 그 자체입니다.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고, 실패도 해볼 수 있는 자유를 위해.

그래서 규남은 현상이 나름 편하게 살 수 있는 자리를 제안(이라기보단 강제였지만)하는 것도 거부하고, 위험한 탈출에 목숨을 겁니다.

무려 탈북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가난한 북한의 사정을 적나라하게 비추거나 ‘생존 의지’를 강조하지 않는 게 이 영화의 독특한 점입니다. 규남의 목적과 의지는 생존을 넘어선 위치에 있기 때문.

꽤나 추상적인 주제를 가장 물리적인 장르인 액션 스릴러로 그려낸 점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매슬로의 5단계 욕구

매슬로의 5단계 욕구론에 대입하자면, 규남의 의지는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생리적, 안전, 사회적, 존경의 욕구 등 4가지 욕구의 가장 위에 있습니다.

규남은 아문센 탐험기를 읽으며 탐험가의 꿈을 키워왔는데, 직업 선택 자체가 자아실현의 일부이지만 그중에서도 탐험가라는 직업은 매우 진취적이며 이상주의적입니다. 북한에서는 (사회 체제의 성격상)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직업이기도 하고요.

현실적인 가난이나 계급 문제를 건너뛰어, 규남의 성격과 가치관 자체가 북한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질 수도 없고 규남도 이를 타협할 수 없습니다. 영화는 여기에 초점을 맞춥니다.

정해진 운명에 좌절을 느끼고 스스로 결정하고 싶다는 감정은 국적을 불문한 것이기 때문에 영화 내내 북한말이 난무하고(정확히 말하면 북한말밖에 안 나옴;) 작중 모든 등장인물이 북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규남의 이야기는 단순한 북한인의 탈주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북한 사람인 규남이 남한 노래인 <양화대교>를 들으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의지를 다지는 장면은 이 주제 아래에 남북한이 따로 없다는 걸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한편으로 추상적인 상위 욕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다소 낭만적으로 빠질 여지가 있고 후반부는 좀 그렇게 힘을 잃긴 했는데, 어쨌든 연료가 다 할 때까지 영화는 있는 힘껏 달립니다. 그저 앞으로만.

탈주 리뷰 후기 리현상 구교환

깔끔하게 사람 잡는 솜씨

일단 오프닝신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시작한 지 5분 만에 영화의 정체성이 분명하고 강렬하게 드러납니다. 주인공과 이야기의 목적, 연출력이 고스란히 집약되어 있으며….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뛰어가는 영화라는 사실이.

탈주와 추적을 다루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템포와 긴장감인데, “X됐다”를 외치게 하는 순간이 적절한 순간 자주 나옵니다. 재미있는 영화라는 뜻.

연출이 깔끔해서 규남이 통행증을 위조하거나 자동차를 찾는 장면 같은 건 스피디하게 후루룩 진행하면서 사소한 부분에서 들킬 뻔한 장면에 긴장감을 빡 몰아넣는데, 사람 쫄리게 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또 강조할 부분에 포인트를 찍으면서도 깔끔한 연출과 클리셰를 피하려고 노력한 것도 눈에 띕니다.

예를 들어 들판에 ‘인민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라고 커다랗게 쓰여있는데, 규남이 탄 차가 ‘행복’이라는 글자를 뚫고 나가고 나중에 사격으로 인해 다른 글자들이 무너집니다. 남은 글자는 ‘자유를 위해’입니다.

하지만 이게 풀샷으로는 잡히지 않습니다. …너무 뻔하니까. 이 풀샷으로 잡히지 않는 것까지가 미덕이에요.

또 이야기 전개상 ‘도망치는 주인공과 멍청한 추적자’라는 클리셰도 거의 통하지 않습니다. 북한군이 의외로 빠릿하고 눈치가 빨라서 단서를 잘 놓치지 않습니다. 리현상은 유능하고. 특히 한 손에 무전기만 든 채 지도를 보고 병력을 지휘하는 모습은 꽤나 신선했음.. 군대가 체질 맞는 거 같은데

탈주 리뷰 후기 송강

인물 탐구 영역

<탈주>의 가장 탄탄한 부분은 캐릭터로, 임규남과 리현상 두 인물은 무척 섬세하게 짜여 있습니다. 이제훈과 구교환의 연기에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 그걸 빼놓고 봐도 인물의 심리나 서사를 구질구질하게 풀지 않지 않는 연출이 좋았습니다.

예를 들어 규남과 현상의 관계는 바로 밝혀지지 않습니다.

현상은 규남과 아는 척하지 않다가 둘만 있을 때 ‘규남아’라고 부르면서 활짝 웃는 장면에서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다음엔 현상의 언급으로 규남의 아버지가 현상의 아버지네 운전수였다는 사실이 추가로 더해지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캐릭터의 미스터리가 단계별로 벗겨지기 때문에 따라가는 재미가 촘촘합니다. 

특히 리현상이 진짜 흥미로운 인물이에요. 립밤이나 핸드크림을 신경 써서 바르고,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을 두드리며 등장할 때만 해도 꽤 뻔해 보이는 악역 간부인데, 그에 대해 ‘알게 된’ 순간 꽤 강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무슨 배역이든 자기 걸로 만들어버리는 구교환 덕분도 있지만.

리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은 송강이 맡은 선우민입니다.

(스포일러 펼치기)

연회장에서 서로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부터 묘한 분위기고, 선우민이 대뜸 피아노 연주를 요청하더니 정작 현상의 연주를 듣고 혼자 자리를 떠버리는 등 둘 사이에 뭐가 있어도 많이 있다는 걸 짐작하게 합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리현상은 러시아에서 피아노 유학을 했고, 그때 선우민과 알게 된 것으로 추정되죠.

구교환은 인터뷰에서 선우민을 두고 “현상이 과거에 두고 온 꿈이나 유령같은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리현상에게 있어 선우민은 두고온 과거, 가질 수 없었던 미래, 정해진 운명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제일 쪽팔리는 순간이 언제일까요?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이 눈 앞에 나타났을 때거든요.

현상은 규남에게 “다들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냥 산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거의 당당하게 말하지만 정작 그 자신이 선우민을 보았을 때는 매우 불편해하는 티가 납니다. 선우민은 (틀림없이 예전같지 않을) 그의 피아노 연주를 요청하면서 일부러 현상을 곤란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가 현상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의 번호를 러시아어로 저장해 놓았을 정도로 미련이 철철 넘치는 건 덤이고.

말하자면 (피아노든 러시아든 선우민이든 뭔가를 포기한) 현상은 탈북을 포기한 규남입니다.

규남에게 내뱉은 “나라고 하고 싶었던 게 없는 줄 알아”라는 말은 확증이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규남을 쏘지 못한 것 역시 그의 심정을 뼈저리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 때문.

탈주 리뷰 스틸

연료가 떨어진 후반부

영화는 지뢰가 파묻힌 울퉁불퉁한 길을 솜씨 있게 운전해 가며 거침없이 달리지만, 안타깝게도 막판에 연료가 다 떨어지고 맙니다.

스토리상으로 털털거리며 맛이 가기 시작하는 순간을 거의 명확하게 짚을 수 있는데, 바로…. 그. 후반부에서 갑자기 신파가 나오기 시작하는 장면. 거기부터.

그전에도 북한군이 스톰트루퍼마냥 수백 발을 쏘는데 한발 스칠까 말까 하는 작위적인 구석이 있긴 했지만 대충 넘어갈 정도이긴 했는데, 딱 그 장면부터는 아예 난감할 정도로 정상적인 진행이 아닙니다.

매일 밤 꼼꼼하게 지뢰가 파묻힌 곳을 표시해 가며 준비한 규남의 노력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장면은 보는 사람이 다 아까울 정도.

그리고 막판에 규남과 현상이 대치하는 것도, 순전히 주인공 둘이 멱살잡고 마주하는 신을 뽑기 위해 만들어진 작위성 끝판왕인 장면.

어떻게 현상이 유령처럼 혼자 거기에 나타났나, 어떻게 앞서가는 규남에게 들키지 않았나 같은 기본적인 의문을 풀어주려는 최소한의 개연성조차 없습니다. 

다만 이 때쯤이면 영화의 퀄리티를 논하기 이전에 이제훈을 응원하는 마음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어찌저찌 넘어가게 되는 것. (….)

엔딩 역시 마찬가지로, 그동안 신파와 감성팔이를 자제했던 전반부에 비해 뻔하고 지루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압도적인 오프닝에 비하면 엔딩은 푸쉬식… 그냥 이것도 ‘이제훈이 행복했음 좋겠다’는 관객들의 따뜻한 마음씨에 의지하려는 나이브한 처사입니다.

………그래도, 뭐.

그렇죠.

행복해야죠.

탈주 이제훈 구교환 이미지

종합평 : ★★★★

고르지 않은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탈주>는 굉장히 깔끔하고 세련된 연출과 주제 의식을 향한 거침없는 뜀박질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액션 스릴러입니다.

보는 내내 콩닥콩닥한 긴장감이 일품.

디테일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어요. 절묘하게 상황과 이어지는 라디오 내용, 임규남의 과거와 심리가 <양화대교>에 덧입혀지는 장면도 그렇고 현상이 부하를 미친 듯이 팰 때 라흐마니노프 연주곡이 흘러나오는 등 음악을 뛰어나게 사용했으며, 배경음악과 사운드 효과도 꽤 좋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신이 몇 개 있는데.. 

오프닝도 그렇고, 고문당할 때 전등이 깜박거리거나 어둠 속에서 총소리만 들리는 등 어둠을 활용한 장면… 아, 규남이 물에 뛰어들고 나서 현상이 들여다보는 듯한 장면 전환 등 소소하고도 확실하게 센스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반부에 비해 뒷심이 부족한 것이 매우 아쉽습니다. 오프닝에 비해 엔딩이 많이 모자란 것은 사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입 안에서 굴려 가면서 뒷맛을 감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영화보고 돌아가는 길에는… 역시 <양화대교>를 듣자.

평가: 4.5/5

<탈주>

너의 운명에서 도망쳐,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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