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스트 오브 쓰시마 리뷰:
* 이 리뷰는 PS4 버전 기반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2020년 게임 발매 스케줄이 엉망진창이 된 데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가 핵폭탄을 떨궈서 민심이 흉흉하던 차에 스윽 나타난 <고스트 오브 쓰시마>.
발매 때부터 ‘서양 제작사가 쓰시마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라는 것으로 화제가 되었는데요. 바로 직전 독점작에 워낙 크게 데어서 걱정이 더 크긴 했지만….
그래도 써커펀치는 여전히 믿을 만하네요. <인퍼머스>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산뜻한 오픈월드와 손맛 있는 전투, 기초가 탄탄하고 은은하게 스며드는 특유의 매력을 발산합니다.
목차
스토리: 仁之道
몽골군의 쓰시마 침공, 압도적인 군세에 쓰시마의 사무라이들이 전멸한 가운데 간신히 살아남은 주인공 ‘사카이 진’.
적을 물리치고 잃은 것들을 되찾기 위해, 가장 소중하게 여겨왔던 사무라이의 정정당당한 명예와 신조를 저버리고 ‘망령’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데…
13세기 여몽연합군의 쓰시마 침공을 배경으로 한 게임으로,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긴 하지만 전개는 픽션. 참고로 작중에선 고려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습니다.
일본 배경이고 사무라이 정신 운운하는 언급이 자주 나와서 좀 부담스러울 수는 있지만 애초에 제목이 <고스트 오브 쓰시마>인 게임을 골랐으면서 여기에 뭐라고 하는 건, 불닭볶음면 시켜놓고 맵다고 항의하는 꼴 아닌가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일본을 찬양하기 위해 만든 게임은 아닙니다. 사무라이들이 다 꼰대라서…
게임에서 근본적이고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명예‘.

진은 누구보다도 명예를 중시하고 올곧은 성품과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씨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망령이 될 수밖에 없고 스스로 그 사실에 괴로워하죠.
상당히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꽤 뻔하게 진행됩니다. 하지만 수수하긴 해도 찬찬히 주제 의식을 쌓아나가는 것도 분명한 미덕이에요.
주인공인 진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복수극의 전형적인 성장형 캐릭터인데, 요새는 이렇게 착하고 지조 있는 주인공이 드물어서(….) 오히려 신선합니다.
진은 적이나 배신자에겐 가차 없고 엄격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무척 예의가 바르고 다정합니다. 타고난 기품이 태도에서 저절로 배어 나오는 것이 매력. 한마디로 가정교육 잘 받은 티가 난달까.
다만 갈등 요소가 너무 클래식한데 비해 심리 묘사가 충분히 섬세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
숙부는 진이 지나친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하지만 정작 유저는 “어, 그런가?” 싶습니다.
진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거의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쓰시마를 위해 가족도, 스스로의 신조도 저버린 그의 희생이 얼마나 큰지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무라이니까. …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서브 퀘스트나 조연 캐릭터도 나름 흥미로운 구석은 있지만 강한 임팩트를 주기에는 한끗 모자랍니다. 뭐 이건 써커펀치 전작들에서도 그랬지만요. 모에를 노리거나 과장이 없는 게 장점이긴 한데 좀 소소한 느낌을 주는 단점이….
연출에 매우 공을 들인 메인 퀘스트와는 달리, 서브 스토리에서는 인상적인 컷씬 하나 없고 연출이나 디테일 면에서 거의 손을 놓았습니다. 마사코 공을 제외하면 인물 관련 서브퀘는 그냥저냥 흘러가는 소소~무난한 정도.
참고로 메인과 주요 서브 퀘스트를 뜻하는 ‘仁之道‘은 미국 게임 주제에 영어로는 제대로 해석할 수 없는 뜻을 지닌 이름입니다.
인(仁)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덕목을 뜻하죠. 그리고 이 한자는 주인공의 이름인 ‘진’과 같습니다.
즉, 메인 퀘스트는 ‘인(仁)의 길’이라는 뜻이면서 ‘진의 길’로 읽히기도 합니다. 진이 망령이 되면서도 지킨, 아니 오히려 망령이 되었기 때문에 얻은 진정한 명예가 바로 인(仁)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죠.
전투 시스템 : 귀무자와 어쌔신 사이
전투 시스템은 정면 전투인 사무라이 액션과 암살 및 서포트 위주인 망령 기술 계열의 결합.

사무라이 액션의 기반은 가드 무너뜨리기.
발도, 튕기기로 타이밍을 뺏거나 상대의 무기에 따라 유리한 자세로 강공격을 가해 제대로 상대를 무너뜨리고 다음 공격을 구겨 넣습니다. 꽤나 단순하면서도 적당한 컨트롤을 요하는데, 패링에 익숙한 유저라면 어렵지 않겠지만 초보라면 타이밍을 잘 익히는 것이 필수.
하지만 아무리 패링을 잘해도 사무라이 액션만으로는 진행이 어렵습니다. 특히 초반부에 체력이 낮을 때는 전투의 난이도가 꽤나 빡빡한 편이라 망령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되는데요.
망령이라는 어감이 뭔가..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푹 찍 하고 사라지는 암살자라는 느낌이지만 사실은 ‘전부 죽은 줄 알았던 사무라이가 살아 돌아와 몽골군에게 복수한다’는 이미지 메이킹적인 측면이 더 강해서 실제로는 정면 전투도 꽤 있고 굳이 몰래 다녀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망령 기술 중에는 정면 전투시에 연막탄이나 쿠나이를 사용하는 게 있고, 심지어는 대놓고 대학살을 벌이는 ‘망령 자세’까지 있기 때문에, 망령 기술은 암살/은신뿐만 아니라 전투 서포트를 겸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므로 굳이 망령 기술을 정의한다면, 음… ‘사무라이답지 않은 모든 행동’…? 숙부님한테 혼날 것 같은 행동?
참고로 처음에는 진이 상대의 등 뒤에서 ‘비열하게’ 공격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데다 익숙하지도 않아서 암살이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기술 포인트를 모으고 단도를 업그레이드하면 점점 빨라져서 나중엔 0.5초 컷이 됩니다.
망령 기술의 성장폭이 크고 새로 배운 것들을 알차게 이용하는 것이 난이도를 대폭 낮추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망령에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망령과 사무라이 기술을 계속 같이 쓰다 보니 둘을 구분하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어지죠.
그리고 이는 어느 순간 진이 (베이스는 분명 사무라이 검술인데도) “사무라이는 저렇게 싸우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것과 연결되죠.

단, 보스전은 1:1 정식 사무라이 대결로 펼쳐집니다. 심지어 상대가 몽골군 장수일 때도! 이때는 명예를 걸고 하는 승부라 아이템이 아닌 기술로 승부를 봐야 합니다. 옛날 사무라이 영화에 대한 강한 오마쥬.
매번 똑같은 인트로 연출을 우려먹긴 하지만 연출 자체의 미장센이 뛰어난 데다 전투마다 각각 독특한 배경으로 차별점을 둬서 넘어갈 만합니다.
그래픽: 모노노아와레
* もののあはれ, 일본의 전통적 미학, 마음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적막하고 쓸쓸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슬픈 감정
무엇보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아름다움’. 근
래에는 뛰어난 그래픽을 지닌 게임들이 많지만 이렇게 플레이 도중 넋을 놓고 바라보는 건 오랜만이었네요.
갑주에 묻은 진흙 표현 등 기술적인 부분도 매우 뛰어나지만 고오쓰가 압도하는 것은 통일성 있고 구체적인 콘셉트입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미의식을 매우 잘 표현했고, 이 미학을 화면에만 펼쳐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로 하여금 직접 몰입하고 느끼도록 안내합니다.

이 게임에서는 목표 지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가이드 시스템이 바로 ‘바람’입니다. 맵에서 마커를 찍어두면 해당 방향으로 바람이 부는데 희끄무레한 바람결과 갈대와 나무가 스러지는 방향, 비나 눈발이 기울어지는 방향으로 알 수 있죠. 미니맵을 보거나 복잡하게 헤맬 필요도 없이 등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을 느끼며 말을 달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토록 직접적이고 아름다운 가이드 시스템이라니.
그리고 이 직관적인 가이드 시스템 덕택에 플레이어는 미니맵이나 목표 마커만 보는 것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을 관찰하게 됩니다.
퀘스트에서도 ‘푸른 꽃이 피어있는 절벽으로 가라’는 등 환경을 잘 관찰할 것을 유도하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주요 장소), 빛나는 나무와 여우(이나리 신사), 토리이(신사),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해방 지역) 등 주변 환경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들을 곳곳에 많이 배치해 놓았습니다.
덕분에 요 근래 빠른 이동 기능을 가장 이용하지 않은 게임이 아닐까….

배경뿐만 아니라 연출에도 대단한 공을 들였습니다. 특히 메인 스토리 퀘스트는 장면 장면이 그야말로 ‘영화 같은 연출’. 사무라이물에서 흔히 쓰이는 클래식한 구도나 연출 등을 멋지게 오마주하고 있습니다.
망령 자세를 발동할 때 흑백 화면 전환+레터박스는 뻔하다는 거 알면서도 심쿵당하는 포인트…
‘일본의 미학’을 내세우는 게임은 수도 없이 많고 이 콘셉트가 때로 촌스러운 방향으로 튀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고스트 오브 쓰시마>는 다소 과장된 미장센을 보여주면서도 품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게임 전반에서 꼼꼼한 연구와 정성이 느껴져요. 이런 비주얼은 단순히 그래픽 기술만으로 나오는 게 아닙니다. 훌륭한 미학적 콘셉트가 있고 게임 내의 모든 것이 그 콘셉트에 맞춰져 있을 때 완성되는 작품이죠. 이런 완결성이 있는 게임은 보면서 참 즐거워져요.
영어 vs 일본어 더빙
한글 자막을 두고 영어와 일본어 음성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진의 일본판 성우는 무려 나카이 카즈야. 사무라이 가문의 갑옷을 업그레이드하면 다테 마사무네의 투구라 음????????ㅋㅋㅋㅋㅋㅋ
배경이 일본이니만큼 당연히 일본어로 두고 플레이하는 게 몰입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자막 내용이 영어 음성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어를 알아듣는다면 자막과의 위화감 때문에 오히려 영어로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
묘하게 대사와 자막이 뉘앙스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사소한데 신경 쓰이더라고요…
그리고 영어 음성과 일본어 음성 사이에 약간의 캐릭터 해석 차이가 있습니다. 영어 음성은 좀 더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톤이라 젊은 청년 귀족의 느낌이 강합니다. 한편 일본어 쪽은 노련하고 지체 높은 영주님의 인상.
개인적으로는 영어 쪽이 맞지 않나 싶은데….
영어 음성의 경우 ‘센세’나 ‘하야쿠(빨리)’같은 몇몇 단어를 그냥 일본어로 써서 가끔 약간 요상하긴 한데, 익숙해지면 양키들이 만든 클래식 사무라이 영화를 감상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것도 나름의 맛이 있음….
디테일: 아깝게 흘려버린 사금
작품의 품새는 무척 정돈되어 있지만 디테일이 조금 아쉽습니다. 초반에는 게임 진행이 되지 않는 버그도 있었고.
스토리 전개가 뻔한 거야 복수극의 레퍼토리이자 사무라이물에 대한 오마주라고 쳐도, 앞서 언급했듯이 심리 묘사가 좀 날림인 점이 큽니다. 메인이야 그나마 신경을 썼다지만 서브 퀘스트에서는 인물들의 감정이 널을 뛰고 급발진하는 건 예삿일.
스크립트도 좀 엉성해서 서브 퀘스트 중에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거나,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가끔 있어요.
예를 들면 “(상대가) 자는 동안 죽여라”라고 해놓고 나중엔 “고통스럽게 죽였겠지?”라는 식. 뭐 어쩌라고…
전투 시스템은 탄탄해서 그다지 흠잡을 데가 없지만 넉백이 엄청나서 강공격에 맞거나 몸이 붕 떠서 날아가는데, 무게감 있는 액션에 몰입감을 깨뜨리기도 합니다.
종합평: ★★★☆

‘일본 배경의 <어쌔신 크리드>’라는 말에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야 게임의 기반 상당수가 어크에서 온 것은 맞지만 고유한 특색을 살렸습니다. 잘 다듬어진 전체적인 매무새는 요새 정체성이 와리가리하고 있는 어크보다 더 높게 쳐주고 싶은 부분.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정갈하고 깔끔한 돈가스 정식.
그 기원은 유럽의 커틀릿이지만, 이젠 커틀릿과 같은 것으로 취급할 수 없고 나름의 지역적 특색을 갖추게 된 결과물이죠. 스케일이 큰 것은 아니지만 한 끼 식사로는 약간 호사스러운 느낌도 드는 그런 느낌입니다.
사실 이 직전에 한 작품이…어… 마음에 큰 상처를 줘서, 정말 괴로워하면서 플레이했었는데. 쓰시마의 갈대밭을 달리면서 문득 ‘아, 이거지. 이런 게 게임이지‘란 생각을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를 내리라면 명작까진 아니고 평균 이상 정도겠지만 고오쓰는 정말로 소중하게 남은 게임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유저 스코어도 9점을 훌쩍 넘기는 건… 까놓고 말해서 라오어2 덕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고오쓰가 사랑받을 만한 이유가 있어요.
엄청나게 특출나거나 독창적인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뻔하다면 조금 뻔하고, 실제로도 조금 그렇지만. 그래도 게임기를 켜면서 기대감에 두근두근한 것. 게임을 하면서 그저 즐거운 것.
엔딩을 보고 나서 “아-재밌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것…
그런 게임이 너무나 하고 싶었거든요.
<고스트 오브 쓰시마>
아름답고 구원할 만한 섬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