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Film

‘서던 리치: 소멸의 땅(Annahilation)’ 리뷰

서던 리치 소멸의 땅 포스터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줄거리

어느날 운석의 충돌로 인해 빛의 벽인 ‘쉬머’가 해안 국립 공원에 나타나고, 쉬머 너머의 구역 안에서는 온갖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생물학자인 리나(나탈리 포트먼)는 임무를 수행하러 떠난 군인 남편 케인(오스카 아이작)이 실종되고 그의 빈자리를 실감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돌연 남편이 돌아온다.

하지만 똑같은 외모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낯선 분위기가 풍긴다. 남편이 쉬머를 지나 X구역을 탐사하는 비밀 임무를 맡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리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다음번 탐사에 참여하기로 한다.

리나를 비롯해 4명의 여성 과학자들로 구성된 탐사대는 쉬머를 지나자마자 뜻밖의 상황과 마주치는데……

스포일러 없는 영화 리뷰

일단 이 영화에는 외계인 비스무리한 것과 신비한 생물들이 줄줄이 나오지만, 미지의 세계를 탐방하는 모험물이나 생존물과는 전혀 다르다. 굳이 비교하자면… <콩: 스컬 아일랜드> + <라이프(2018)> 반반무마니에 <우주에서 온 색채> 한 스푼 정도?

원작부터 이야기하자면 <노변의 피크닉>과 <유년기의 끝>..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쉬머 움짤

영화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알록달록하면서 그로테스크한 미학을 자랑하는 화면.

기름 표면의 무지갯빛과 같은 오묘한 색깔을 띤 쉬머의 벽 안쪽에는 서로 다른 식물, 동물이 뒤섞여 일체가 된 신비한 생명체의 모습, 미술관의 그림처럼 피어난 지의류 등이 가득하다. 전반적으로 매우 암울하고 착 가라앉은 분위기인데 묘하게 설레고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다..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너무 끔찍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운 풍경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작중 배경 자체는 소설하고 좀 달라졌지만 ‘분위기’만큼은 가히 완벽. 

그러나 스토리의 깊이나 캐릭터의 밸런스는 무척 아쉽다. 특히 원작 소설을 읽었거나 좀 더 깊이 있는 내러티브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영화는 지나치게 단순한 면이 있는데, 쌩 일반 관객들은 너무 난하다며 이해를 못할 것 같음..

어쨌든 독특하고 인상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컨셉에 관심이 있고, 다소 고어하고 징그러운 것도 견딜 수 있다면 한번쯤 구경할 만한 작품이고, 한번 보면 뇌리에서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영화인 것은 사실. 

원작 소설과의 차이점

어제 원작 소설을 다 읽고 오늘 영화를 봐서 따끈따끈한 비교가 가능한 부분.

일단 주인공의 기본 설정(생물학자, 남편 때문에 탐사에 참여)이나 여성으로만 구성된 탐사대, X구역의 신비 등 커다 틀은 같다. 하지만 그 외에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부분들이 달라져서 결과적으론 꽤나 다른 느낌이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비주얼

전반적으로는 모든 것이 소설보다 훨씬 명쾌하게 각색되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의 보고서 형식의 글이고, 서술 트릭도 좀 들어가 있는데다 주인공의 성격이 성격인지라 인물에 몰입하면서 읽기는 조금 힘든 편.

게다가 원작 소설 자체가 과학적인 설명보다는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세뇌 요법이나 글씨 모양의 지의류 등 다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 건 덤.

하지만 영화에서는 소설이 가진 대부분의 모호함과 복잡성을 상당히 말끔하게 해치워버립니다.

예를 들어 소설에선 서던 리치라는 조직의 목적이나 하는 행동부터가 좀 미심쩍고 과거 탐사대의 목적에 대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많은데, 영화는 이런 부분들을 싹둑 잘라내고 X구역이 지닌 기이함과 공포에 초점을 맞춘다. 

다소 헷갈릴 여지가 있었던 소설의 ‘탑’을 대충 ‘등대’와 합쳐놓은 점이라든가, 소설에선 외모가 거의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던 짐승들이 꽤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각색 같은 것들은 오히려 꽤 좋았지만.

하지만 지나치게 모든 것을 쉽고 명쾌하게 만드려는 시도는, 때로 실패로 향하는 길로 이어진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는.

소설과 영화 엔딩 차이

엔딩도 다르다. (소설 1권 기준)

소설에서 주인공인 생물학자는 남편이 남긴 일지를 읽고, 그가 북쪽으로 끝없이 항해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집으로 돌아왔던 남편은 X구역의 복제였던 것.

생물학자는 남편이 이곳 어딘가에 있음을 느끼고 (꼭 살아있다는 게 아니라 다른 어떤 존재로든 이 구역 안에 존재한다는 것), 그처럼 자신도 자아의 독립성과 인격을 유지하는 사이에 계속 전진할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의 탐사 일지에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나는 열한번째 탐사대와 열두번째 탐사대의 마지막 생존자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한편 영화판에서도 리나는 등대에서 남편이 남긴 마지막 기록을 발견한다. 다만 여기선 일지가 아니라 비디오.

케인은 비디오 카메라 너머에 있는 사람에게 “여기서 나가면 리나를 찾아가”라고 말한 후 백린 수류탄을 뽑아들고 자살한다. 그리고 그를 지켜보고 있던 또 한 사람이 나오는데… 바로 케인과 똑같이 생긴 인물.

즉, 영화에서 초반부에 리나 앞에 나타난 케인 역시 X구역의 복제가 맞다. 소설과는 달리 병원에서 생명을 유지중.

그리고 리나는 등대 안쪽에 있는 구멍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수수께끼의 형체를 만나고, 그 형체는 리나가 하는 행동을 따라하더니 곧 그녀의 모습으로 의태한다. 리나는 형체에게 백린 수류탄을 쥐어주며 등대를 탈출하고, 수류탄이 터지면서 등대와 그 주변의 나무?들까지 모조리 불타서 잿더미가 된다.

그리고 다시 서던 리치로 귀환한 리나는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복제 케인과 다시 만난다.

“당신은 케인이 아니지?” 라는 말에 “그런 것 같다(=아니다)”라고 대답하는 복제 케인. 그녀는 그와 포옹하는데 복제 케인의 눈동자에서 노란 빛이 일렁이고 리나의 눈동자에도 일렁임이 생긴다

이미 X구역 안에서 상당한 수준의 변이가 일어난 리나 역시 예전의 리나가 아닌 것. 

잃어버린 신비

영화는 소설에 비하면 모든 것이 명쾌한 대신 원작 특유의 섬세한 신비로움은 소멸해 버렸다.

영화는 세포 분열과 암세포, 돌연변이 등에 대해 매우 직접적으로 설명해서 X구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거의 명확하게 전달한다. 정답은 모든 것을 굴절하는 이 구역에서 생물의 DNA가 바뀌어 기괴한 변이를 일으키며, 어떤 유기체는 인간과 똑같이 의태한다는 것.

하지만 영화는 기괴하게 변한 크리처에만 열중한 나머지 원작이 풍기는 복잡미묘한 뉘앙스를 모두 잃어버렸다. 공간 자체가 유기적이고 인간성을 시험하는 어떤 우주적인 심판대의 느낌마저 있던 X구역은 단순히 공포용 배경으로 전락해 버린다.

서던리치 소멸의 땅 주인공 리나 역을 맡은 나탈리 포트먼

또 캐릭터들이 너무 단순하고 얄팍해서 이야기 자체의 흡인력이 너무 없다. 까놓고 말해서 영화판은 비주얼만 꽤 많이 독특하고 나머지는 전부 그럭저럭인 평범한 SF물임. 배경이 정말 아깝다고 생각될 정도…

원작 소설에서는 주인공 외의 다른 인물들의 비중이 매우 적다. 애초에 주인공인 생물학자가 별로 남에게 관심이 없는데다 팀원들도 직업으로만 불리고, 서로 간의 교류도 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실상 주인공과 주인공의 남편 외에는 아무도, 혹은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그 기회를 이용해) 소설은 생물학자의 심리를 매우 깊게 파고든다. 그녀는 매우 내향적이고 복잡하고 폐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원래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사랑하는 남편과도 성격이 정반대라서 둘 사이에는 언제나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다.

과학자로서의 호기심도 매우 충만하다. 그녀가 탐사에 참여한 이유는 남편에 대한 감정도 있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기 위한 욕망도 컸다.

여기에 서던 리치에서 탐사 대비 훈련을 받는 동안 본인의 기억과 자아 인식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도 있다. 또 1인칭 기록인만큼 그녀의 관찰을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소설에서의 인물상과 그녀의 감정은 더욱 다채로운 빛깔을 띤다.

(생물학자는 후반부에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지 약간 망설이긴 하지만 자신이 기억과 남편의 존재를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길잡이로 삼는다.)

생물학자의 성격 자체가 좀 담담하고 폐쇄적이라 감정적인 물결이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그녀가 남편이 남긴 기록을 읽으며 뒤늦게 회한에 잠기는 장면은 정말로 아름답고 슬프다. 

그리고 그녀가 끝까지 나아가기로 결심하는 소설의 결말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과 고독의 궁극적인 수용이면서 결코 굴하지 않는 인간성의 독립(어쩌면 과학자 정신?)을 의미하면서 더욱 긴 여운을 남긴다. 

서던 리치 탐사대

하지만 영화에서는 각 인물이 지닌 깊이가 너무 얕아졌다. 탐사대는 5명으로 늘었고 각각 이름과 나름의 배경 스토리도 있는데 흥미롭거나 신선하다고 볼 순 없다. 숱한 크리처물에 나오는 독단적인 카미카제형 리더, 목소리 크고 날뛰는 민폐캐, 존재감 없어서 제일 먼저 죽는 캐, 조용한 막내 캐릭터를 답습했을 뿐이라서 벌써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군.

대원 간의 관계가 매우 무미건조한 소설과는 달리 서로 끈끈하게 유대를 맺어가는 느낌이라서 뭐 새로운 전개가 펼쳐지나 싶었는데, 그냥 뻔한 위기와 갈등을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 별 거 없다.

또 영화는 처음부터 리나의 탐사 동기가 남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리나의 성격이나 남편과의 관계성도 상당히 평면화되었다. 

까놓고 말하면 소설 주인공은 내향형 아싸인데 헐리우드(넷플릭스)에선 그런 여자에게 주인공을 내주긴 싫었는지 그냥 단순한 전직 군인1로 만들어버렸다. 리나 역시 생물학 박사가 맞지만, 총 잘 쏘고 잘 굴러다니는 전직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매우 강하다.  

생물학 지식 어필도 시료를 채취하는 시늉을 하고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찰하는 기초적인 수준에 그친다. 생물계에 대한 별 통찰이 없다보니 사실 그녀가 의학 지식이 있는 그냥 군인이었어도 전혀 상관없는 부분. 그리고 다른 대원들도 딱히 자신의 직업에 맞춰 뭔가를 조사하는 행동을 안 보임. 애초에 직업 왜 얘기한 건지…

게다가 영화에서는 리나의 동기가 그냥 남편을 사랑해서(+바람핀 게 미안해서) 찾으러 왔다는 식으로 설명된다. 아 정말 뻔하다… 영화판 놈들이란.

리나에게서는 생물학자를 통해 느껴졌던 깊고 풍부하고 기묘하고 아름다웠던 감정의 스펙트럼을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엔딩에서도 그녀의 생존 능력(?)에 감탄할 수는 있어도 뭔가를 함께 느끼기는 힘들다. 

종합평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엔딩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매우 아름답고 기괴하고 인상적인 비주얼과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평면적인 스토리가 결합한 영화다. 비극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망한 결과물인 것은 아니지만,원작 소설이 지닌 신비롭고 다채로운 스펙트럼과 주제 의식을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전반적인 설정은 원작 소설을 그대로 따왔는데 제대로 흉내를 못내서 어설픈 건 작중에 등장하는 크리처하고 비슷하군.

원작 소설을 읽을 때 영화의 비주얼을 문장 중간중간에 대입해가면서 읽는 건 꽤 재미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소설의 의미를 영화 장면장면에서 찾기는 어렵고. 

나는 언제나 책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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